사랑에 왜 ‘실패’라는 단어를 써야 하나요

[주관적이고, 사적이고, 사소한 이야기] 눈부신 당신의 이십 대를 응원합니다

2025-03-09     김담이 작가

[미디어스=김담이 칼럼] 십 대 때는 이십 대만 되면 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믿었다. 세상은 내 편이고, 금방이라도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 같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뭐든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19세로 제한되어 있던 나의 한계가 마법처럼 풀어져 부모님의 간섭없이 마음껏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십구 년 동안 부모님의 보호 속에 온실의 화초처럼 살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나의 십 대를 매일 매일 더 힘들고, 고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집에서는 부모님이,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나의 삶을 억압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대학에 가면, 스무 살이 되면 간섭이 필요 없게 된다고 믿었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십 대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19세의 제한선이 풀리는 순간, 인생에서 공짜는 없어진다. 사고 싶은 것이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나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부모님의 원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일정액을 용돈으로 받을 수 있다. 부모님께 용돈을 받지만, 쓸 돈은 언제나 부족하다. 용돈을 받는 것도 대학을 다닐 때까지만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더는 부모님께 손을 내밀 수 없다.

십 대 때 머리를 쥐어뜯으며 했던 고민과는 차원이 다르다. 내가 원하는 곳에 취업하는 일은 하늘에 별 따기 같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만만치 않은 세상에 연애마저도 쉽지 않다. 세상의 반은 남자고, 여자인데 내 사랑은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나의 사랑을 찾아도 사귀는 단계로 들어가는데는 아주 애매하고 알쏭달쏭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애매한 단계를 썸이라고 하는데 사귀는 것도, 그렇다고 아닌 것도 아닌 간질간질하고 이상한 단계를 거친다. 썸을 넘어 이제 정식으로 사귀는 단계로 돌입하고 내 인생 최고의 꽃길만이 펼쳐질 것 같다. 하지만 행복은 짧고 내가 하는 사랑은 외롭고 고달프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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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십 대에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일도 아니고, 공부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사랑이다. 이십 대에겐 사랑이 가장 힘들고 어렵다. 마음을 다했는데 눈물뿐인 결말로 이어지면 마음뿐 아니라 나를 지탱하던 정신까지 무너지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싸우고, 멀어지고, 다시 만나고 헤어짐을 거듭하다 결국 이별한다. 이별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는 깊어지고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다.

‘내가 부족해서 사랑이 떠났어. 내가 못나서 이별했어. 그 사람이 애처로워 견딜 수 없어. 그 사람이 걱정되어서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어’. 내 마음은 무너진다. 사랑에도 경험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때는 모르므로 나를 지키며 하는 연애가 어렵다. 그래서 나를 망치는 연애를 하게 된다. 이별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되어도 비슷한 사람을 선택하고 비슷한 상황에 빠지고 아픈 이별을 반복하게 된다. ‘사랑에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나는 작아진다.

우리는 사랑하고 이별을 하면 사랑에 실패했다는 말을 쉽게 한다. 사랑이 도전 과제도 아니고, 사랑이 시합도 아닌데 ‘실패’라는 단어를 써야 할까. 

이별을 실패와 비슷한 말로 인식하는 순간 가뜩이나 힘든 마음은 좌절과 고통이 더해져 혼자서는 극복하기 어렵게 된다. 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 이십 대 상담환자가 많은 이유도 이 부분이 한몫할 것이다. 주위를 보면 생각보다 많은 이십 대가 사랑이 너무 힘들어서, 이별을 견딜 수 없어서 정신과의원을 찾아 상담을 받고 좋아져서 웃으며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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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잘하고 있다. 이십 대, 이제 겨우 나의 빛나는 인생에서 첫발을 떼었을 뿐이다. 게다가 이십 대까지는 내 운으로 사는 게 아니다. 부모님의 운이 나의 운이며, 나의 삶에서 많은 부분 부모님의 운이 작용한다. 이십 대까지는 부모님의 보호 속에 살 수 있는 나이이다. 실전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이십 대인 당신. 당신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아름답다. 사랑은 열병 같지만, 당신의 젊음은 깊어지고 여전히 눈이 부시다. 이십 대라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찬란하다. 다시 시작되는 봄날, 당신의 이십 대를 응원한다.

김담이,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2023년 12월 첫 번째 장편동화 『올해의 5학년』 출간.  2024년 11월, 소설집 『경수주의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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