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 외치며 구시대적 정치에 편승하는 한동훈
[김민하 칼럼]
[미디어스=김민하 칼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새 시대를 말한다. 구 시대를 닫고 새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 시대를 닫는 게 아니라 구 시대에 편승하는 것 같다. 그게 집권당인 국민의힘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우려가 크다.
한동훈 전 대표는 6일 서울 신촌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시국 강연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해프닝이 있었다. 한 참가자가 한동훈 전 대표가 법무부 장관이던 시절에 받은 싸인을 면전에서 찢어버린 것이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황당하다. 한동훈 전 대표를 ‘친중좌파’라고 생각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이 참가자는 국민의힘 지지자로 추정된다. 첫째로 그러니 법무부 장관 시절의 한동훈 전 대표 싸인을 받아 소장하고 있었을 테고, 둘째로 ‘친중좌파’라는 이유로 면전에서 싸인을 찢을 정도의 적대감을 표출하는 것도 최근의 정치적 상황을 볼 때 국민의힘 지지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전반적으로 아예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면 이 참가자를 혼자 특이한 생각을 하는 인사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요즘 상황을 보면 ‘친중좌파’ 어쩌구 하는 얘기는 극우 유튜브를 통해 국민의힘 지지층 사이에 흔히 전파되는 내용이다.
뒤집어 얘기하면 이 해프닝 자체가 최근 국민의힘의 상태를 보여준다는 말도 된다. 첫째, 한동훈 전 대표를 ‘친중좌파’라고 생각하는 그 판단의 원천이 어디서 왔겠는가를 따져봐야 한다. 한동훈 전 대표가 특별히 중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다거나 혹은 좌파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일이 없다. 한동훈 전 대표가 한 일은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에 협력하고 윤석열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선 것뿐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립하면 ‘친중좌파’가 되는 우격다짐식 논리는 ‘반대의 정치’와 그것이 겨냥하는 개념의 사슬 형성으로부터 도출된다. 현대 정치에서 정체성은 자기가 무엇을 추구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에 반대하고 있으냐로 규정된다. 사람들은 자기가 그러면 남들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날 진보란 보수를 반대하는 것이며, 보수는 단지 진보를 반대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특히 지난 문재인 정권을 거치면서 보수-극우 정치는 자신들이 반대해야 할 대상을 ‘중국-북한-권위주의 및 전체주의-문재인 정권-더불어민주당-진보-페미니즘-차별금지법’이라는 식의 연속된 개념 사슬로 엮는 작업을 진행했다. 가령 누군가 더불어민주당의 팬덤 정치식 행태에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면, 그러한 행태가 곧 전체주의-권위주의적 행태이며, 그것은 중국과 북한 정권의 행태나 다름이 없으며, 그것이 진보의 본성이며, 같은 원리에서 이들이 이 사회에 자유를 침해하며 강요하고 있는 것이 페미니즘과 차별금지법이라는 논리를 들어 앞서의 개념 사슬 전체에 반대하는 동맹으로 조직화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대선에서 당선된 이유도 이런 방식의 조직화가 효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상대를 전체주의-권위주의로 규정하고 자신을 그에 반대하는 자유민주주의로 자처하면서 착시 효과를 불러 일으킨 것이다. 이는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불법적으로 선포하는 것으로 본인이 그 누구보다도 전체주의-권위주의에 가까운 지도자였다는 점을 스스로 폭로하였다는 점에서 ‘구도 해킹’이었다고 할 만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도 자신의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를 정당화하기 위해 국회의 권한 남용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 역시 같은 방식의 ‘구도 해킹’을 시도하고 있는 거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여론조사상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상당하고 탄핵을 반대한다며 거리에 모이는 인파의 숫자도 무시하기는 어려운 이유도 이 해킹된 구도에 힘입은 점이라는 거다. 한동훈 전 대표 눈앞에서 사인을 찢는 일이 일어나는 것도 이 영향이다. 한동훈 전 대표는 왜 ‘친중좌파’인가? 단순히 ‘중국-북한-권위주의 및 전체주의-문재인 정권-더불어민주당-진보-페미니즘-차별금지법’과 싸우는 윤석열 대통령과 대립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립한 이유는 ‘중국-북한-권위주의 및 전체주의-문재인 정권-더불어민주당-진보-페미니즘-차별금지법’이라는 사슬의 고리 중 하나이기 때문 아닌가? 그러니 한동훈 전 대표는 ‘친중좌파’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보수 대권주자가 정말로 새 시대를 열려면 이 개념의 사슬부터 해체해야 한다. ‘친중좌파’라는 개념부터가 잘못됐다는 것을 설득하고 보수정치가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 지지자를 조직화 해서는 안 된다는 것부터 천명해야 한다. 그런데 한동훈 전 대표는 그게 아니라 ‘나는 친중좌파가 아니다, 왜냐하면 중국을 반대했기 때문이다’라는 논리를 댔다. 닭갈비를 먹으며 이러한 논리를 설파한 결과, 한동훈 전 대표에 적대적이었던 참가자는 설득이 되었고 결국 사인을 다시 받아갔다고 한다. 이걸 무슨 미담처럼 공유한다.
‘구도 해킹’의 유용성을 인정하면서 계속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거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엔디비아’ 발언에 대해 “그냥 화천대유 만들자는 소리”라고도 했다. 말이 안 되는 얘기면 왜 말이 안 되는지를 차분히 지적하면 되는데, 굳이 ‘화천대유’를 언급하는 이유는 뭔가? ‘나는 검사, 너는 피의자’ 구도로 몰고 가겠다는 것 아닌가? 물론 그런 선거 전략도 있을 수가 있다. 그런데 그게 새 시대인가? 그건 구 시대에 편승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 대권주자 중에 한동훈 전 대표는 그나마 말로라도 ‘새로움’을 어필하는 쪽 아닌가? 이러니 미래가 없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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