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최후진술에 ‘개헌’ 언급 기대하는 보수의 계산
[김민하 칼럼]
[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이제 끝의 시작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의 11차 기일의 날이 밝은 것이다. 이날은 증거조사, 양측 대리인단의 종합변론, 국회 탄핵소추 위원장과 윤석열 대통령의 최후진술 등이 진행된다. 관심을 모으는 건 윤석열 대통령이 최후진술을 통해 어떤 주장을 할 것이냐이다. 이 내용에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걸린 듯한 상황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언론을 중심으로 보수진영은 윤석열 대통령의 최후진술 내용에 상당한 관심을 쏟고 있다. 보수언론은 지난 주말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최후진술 내용을 예상하기도 하고 자신들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제안하기도 했다. 적어도 두 가지 내용은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선 대다수의 관점이 일치한다.
첫째는 국민에 대한 진솔한 사과이다. ‘놀라게 해드려 미안하다’ 정도의 사과가 아니라, 불법적 계엄을 선포한 것 자체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다는 거다. 지금까지는 법적 방어권 행사라는 측면에 치우쳐 뻔뻔한 주장을 계속해왔을지 모르지만, 마음 속으로는 국민에 대한 미안함을 늘 갖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게 지도자로서 필요한 태도라는 것에는 이견을 갖기 어렵다.
둘째는 탄핵심판 결과에 대한 승복이다. 그간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 때문에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로 통칭되는 극우 지지층들은 필요 이상으로 격앙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들은 탄핵심판 결과에 대한 불복도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서울서부지법 사태에 준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지도자로서 이런 일은 막아야 한다. 결과에 대한 승복은 최저한이다.
그런데 보수진영은 이것 이상을 바라는 듯한 눈치다. 지난 주말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최후진술을 통해 임기단축 개헌 얘기를 할 것인지가 관심사라는 보도가 나오는 게 그렇다. 조선일보는 22일 토요일판 지면에서 탄핵 기각을 전제로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단축 개헌을 거론할 수 있으며 이 경우 구체적 하야 시점까지 언급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윤석열 대통령 측은 이러한 관측에 대해 긍정하지 않는 분위기인데, 보수언론은 굳이 긍정적 신호를 얻고 싶은 눈치다. 가령 중앙일보는 25일 윤석열 대통령 변호인단 중 한 명을 ‘최측근’이라며 인터뷰 한 후 이렇게 썼다.
“조기 퇴진과 개헌이 최후진술에 담기는지 다시 물었다. 이 측근은 ‘모르겠다’고 했다. ‘아니다’라고 딱 잘라서 부정하지 않았다. 최후진술에 조기 퇴진과 개헌을 언급할 수 있다는 뉘앙스로 들렸다”
“모르겠다”고 했는데 ‘아니다’라고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언급할 수 있다는 뉘앙스”로 해석한 것이다.
조기 퇴진과 개헌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윤석열 본인의 탄핵 기각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지만, 보수진영의 조기대선 대응 방식과 연결돼 있다는 점을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중도층에서 보수진영에 우호적이지 않은 결과가 나오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따라서 당내에서도 이제는 중도 공략으로 전환할 때가 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실정이다. 그러나 여전히 당내 다수는 그간 윤석열 대통령 방어에 치중해 온 관성을 버리지 못하고 가던 길로 계속 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당원 및 지지층의 여론 분포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이대로 가면 대선에서 보수 유권자층은 필연적으로 분열된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단축 개헌 등을 언급하면 탄핵 인용이나 기각 여부와 관계없이 개헌은 ‘유훈’ 비슷한 것이 된다. 그러면 지금까지 개헌을 고리로 이슈파이팅을 해온 오세훈 서울시장 등 중도적 이미지의 후보군이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 비슷한 포지션으로 이동하면서 중도와 강성 지지층 모두를 흡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더 이상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등에게 기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상대편인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의 경우 상대적으로 개헌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재명 대표 본인은 개헌에 대한 입장이 있지만, 국민의힘이 불법적 계엄 선포를 옹호하려는 목적으로 개헌을 거론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기에 장단을 맞추게 될 경우 자칫 잘못하면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결과가 될 게 우려된다는 취지의 설명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어쨌든 보수진영의 입장에서는 개헌을 선점한 자신들을 ‘개헌파’로 지칭하고 개헌에 소극적인 상대편 주자를 몰이 붙이며 ‘반이재명 전선’을 강화하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그런데 애초 개헌이란 이런 저런 한쪽 정파의 계산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다뤄서는 될 일도 안 된다. 전형적으로 안 되는 일을 벌여놓고 서로 남 탓만 하고 끝내는 방식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지금 보수진영의 태도 역시 개헌에 대해서는 진심이 아니라는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앞서도 지적했듯 윤석열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 탄핵심판 결과에 대한 승복을 요구하는 것이 먼저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심지어 계엄 막아 나라를 구했다는 구호를 앞세우는 친한계라는 사람들도 계엄 정당화 집회에 대해 광주에 가서 사과한 김상욱 의원을 단체 채팅방에서 내쫓듯이 했다. 경선부터 생각하는 것이다. 개헌이든 뭐든, 이런 눈 가리고 아웅식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정신부터 차리고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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