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철 전 KBS사장이 전한 해임 이후…"KBS 포기 말아야"
[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김의철 전 KBS 사장
[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김의철 전 KBS 사장이 해임무효 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KBS 사장에서 해임된 지 1년 4개월 만이다. 지난 1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 5부(재판장 김순열)는 김 전 사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해임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해임 사유는 모두 인정될 수 없다"고 밝혔다.
김의철 사장 해임 이후 들어선 박민 사장 체제에서 KBS는 ‘땡윤뉴스’ ‘용산방송’ 꼬리표로 신뢰도 추락에 추락을 거듭했다. 지난 12월 남영진 전 KBS 이사장 판결에 이어 김의철 전 사장 승소 소식이 전해지자 KBS 구성원들은 “사필귀정이지만 만시지탄”이라고 했다. 1심 판결에 대해 당사자는 어떤 입장인지 궁금해 지난 22일 서울 용산역에서 김의철 전 KBS 사장을 만났다. 다음은 김 전 사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해임무효 소송 1심에서 승소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신지요?
“여러 가지로 마음이 복잡합니다. 소송 결과가 나오니 많은 사람이 제게 이런저런 얘기를 해줬는데 공통점이 있었어요. 뭐냐 하면 사필귀정, 그리고 만시지탄이에요. 선고가 늦어지면서 짜증 나고 답답하기는 했지만 저는 1년 4개월 동안 이 재판에서 질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을 안 했어요.
근데 알다시피,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직후에 판결이 나왔잖아요. 윤 대통령은 평상시 자유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살더니 위헌적이고 위법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또 그 뒤에는 자유민주주의 지키는 핵심 가치인 법치주의마저 완전히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한심한 대통령을 상대로 오랫동안 싸웠나?’라는 생각에 자괴감마저 들더라고요.”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상태잖아요. 그 영향도 있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KBS 사장의 임기는 공영방송의 독립성 자율성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해 명확히 규정돼 있어요. 그래서 어느 공공기관보다도 해임 사유를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판결이 그동안 여러 차례 나왔거든요. 이번 판결에 윤 대통령 직무정지 영향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법원에서 KBS 이사회가 제시한 해임 사유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단 점이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사회가 6가지 해임 사유를 내걸었는데 아무것도 인정을 안 했습니다. 제가 2023년 9월 해임됐을 때 ‘이건 KBS의 정치적 독립을 완전히 훼손하는 행위이고 방송장악 의도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거든요. 재판부도 그런 점을 인정했고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임명동의제 확대 관련해서 ‘절차’ 문제를 제기하는 구절이 있더라고요. 저는 방송법에 규정된 편성규약, 그리고 편성규약에 규정된 단체협약에 따라 임명동의제를 확대했는데, 재판부가 그 부분에 대해 절차적으로 흠결이 있다는 식으로 표현했어요. 그 부분은 조금 아쉬워요.
박민 사장이나 박장범 사장이 와서 임명동의제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면서 국장들을 임명했거든요. 근데 박민 사장이나 박장범 사장이 내세웠던 이유를 재판부가 그대로 받아줬더라고요.”
재판부가 해임은 무효라면서도 KBS 이사회가 해임제청안 심의·가결을 위법하게 했다는 사장님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재판부에서 저의 주장을 안 받아들였습니다. 그 부분 역시 아쉬운데 두 가지 측면이 있어요. 첫 번째, 저를 해임하기 전에 남영진 이사장을 해임했잖아요. 먼저 남영진 이사장을 해임해 이사회 구조를 ‘여권’ 우위로 재편한 후 저를 해임시켰거든요. 그런 명확한 의도를 가진 위법 행위에 대해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얼마 전에 남영진 이사장 해임이 무효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와서 이 판단이 더욱 아쉽죠.
또 하나는, KBS 사장은 이사회가 제청하면 이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잖아요. 마찬가지로 저는 이사회가 사장 해임 제청을 해도 대통령이 해임할 때는 별도의 청문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는데 그 부분도 받아들이지 않아서 아쉬움이 있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예전에도 해임 관련한 청문 절차는 없지 않았나요?
“바로 그거예요. 예전에는 다투지 않았더라고요. 제가 이 부분 관련해서 판례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처음 제기했는데,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008년에 정연주 전 KBS 사장 해임 당시와 비교해 보면 어때요?
“처음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2008년 상황보다 훨씬 더 가혹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2008년에는 감사원 감사 결과를 두고 KBS 이사회가 정 사장의 해임을 요청했거든요. 그런데 저의 경우에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감사원 감사 8개월을 비롯해 경찰, 검찰 수사 심지어 고용노동부 조사와 국세청 세무조사까지 다 받았는데도 개인적으로 흠잡을 일이 안 나오니까 결국 수신료를 들고 나왔어요. ‘분리 징수’를 내세워 재원 구조 자체를 흔들어 놓고 직원들을 동요하게 해서 안타까웠죠.”
감사원 감사, 경찰‧검찰 수사에 각종 조사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텐데.
“힘들긴 했죠. 그런데 제가 KBS 사장 지원할 때부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게 정치적 간섭과 상업적 압력 배제, 즉 ‘KBS의 독립’이었어요. 사장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 늘 강조했던 점이었고요. 권력기관이 아무리 탄압해도 제가 끝까지 싸우는 게 궁극적으로 KBS 독립을 지켜 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의지로 버텼습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나요? 그냥 물러나자란 생각도 들었을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겠죠. 다만 제가 포기하면 ‘KBS 독립’이 무너진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제가 KBS 33년 다녔거든요. ‘마지막 소임’이라고 생각하고 힘들었지만 버텨나갔죠.”
KBS 구성원 중에는 사장님을 지지하지 않은 목소리도 있었잖아요. 그때는 어떠셨어요?
“그 부분이 정말 가슴이 아프죠. 앞서 말씀드렸지만, 온갖 권력기관을 동원했음에도 아무것도 안 나오니까 윤석열 정권이 결국 KBS 공영방송 재원의 근간인 수신료를 건드렸잖아요. 그러니까 구성원들로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착잡했을 겁니다. 권력의 공격이 워낙 세게 들어오니까 저의 잘잘못을 떠나서 ‘혹시 사장이 물러나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현실적인 생각을 했을 수도 있고요. 당시 구성원들의 고민과 반응이 이해되는 측면이 없는 건 아니에요.”
고대영 전 KBS 사장도 해임 무효소송에서 승소했습니다. 진영을 불문하고, 정권 교체 때마다 공영방송 사장 해임이 반복되고 있는데?
“고대영 사장도 해임무효 소송에서 형식적으로나 법리적으로 이겼지만, 그 본질과 맥락을 보면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KBS의 경우 정연주 사장, 고대영 사장 그리고 저의 해임 절차가 진행됐는데 두 가지로 살펴봐야 해요. 첫 번째, ‘누가’ 해임을 주도했느냐죠. 정연주 사장이나 저의 경우엔 권력기관이 주도했고, 고대영 사장은 알다시피 구성원들의 요구였습니다.
두 번째는 사장이 해임된 이후 KBS에 ‘무슨 일이 어떻게’ 있었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정연주 사장 해임 이후엔 KBS의 신뢰도라든가 공정성 지표가 엄청나게 떨어졌어요. 근데 고대영 사장이 해임되고 난 후 KBS 구성원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공정성과 신뢰도 높여 놓았죠. 그 결과 언론진흥재단이 진행한 수용자 조사에서 4년 연속 압도적 신뢰도(1위를) 확보했었습니다. 그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해임 무효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임기가 종료돼 복귀할 수 없잖아요. 이러하니 정권으로선 무리해서라도 해임을 강행할 것 같아요. 복귀해서 잔여임기를 채울 수 있다면 함부로 해임하지 못할 것 같은데.
“중요한 지점입니다. 그래서 제가 해임되자마자 해임무효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는데 그때는 박민 사장 취임 전이었거든요. 제가 집행정지 결정하는 재판부에 강력하게 호소했어요. 뭐라고 호소했냐면 ‘현재 법리적으로 해임은 말도 안 된다. 공영방송에서 지금까지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집행정지를 받아주지 않아서 그런 거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고요.
그러나 1심 재판부가 ‘해임 사유를 충분히 다툴 만하다. 회복할 수 없는 손해도 존재한다. 하지만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면서 집행정지를 안 받아들였거든요. 여기서 재판부가 내세운 공공복리는 ‘공정성과 신뢰도가 하락할 우려가 있다’였어요. 제가 사장 직무를 계속하면 KBS의 공정성과 신뢰도가 하락할 우려가 있다는 게 (가처분)1심 기각의 이유였어요.”
박민 사장으로 교체된 후 KBS 시청률이나 신뢰도가 급격하게 떨어졌잖아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구성원들에겐 미안하지만 제가 사장에서 해임된 이후 KBS의 문제를 한 발 떨어져서 보려고 했는데, 계속 뉴스에 나오는 거예요. 대부분 ‘제작 자율성’을 침해한 결과이고, 그것만 해도 너무나 마음이 안 좋죠.
그런데 최근에 충격받은 게 뭐냐 하면, 윤석열 대통령 체포 날 유튜브로 동시 접속자 수를 보니 KBS는 수천 명이고 다른 방송사는 몇십만 명이더라고요. 심지어 메인뉴스 시청률도 뒤집어졌다고 해요. 그런 지표들 때문에 현재 상황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어요.”
광복절에 KBS에서 기미가요가 방송돼 파문이 일었어요. 이런 사태는 사장 책임인가요?
“사장은 포괄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편성과 관련해 박민 사장이 몰랐을 수도 있는데, 제가 사장할 때 경험을 얘기해 볼게요. 사장은 매주 편성에 관해 보고받아요. 또 KBS 같은 경우는 대형 사건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편성을 살펴봐요. 예를 들어, 폭우에 물난리가 일어나면 바로 점검하는 게 혹시 우리 예능프로그램에서 물로 장난치는 거 없는지예요. 공영방송이라 매 사안에 그 정도로 민감한데, 광복절에 기미가요가 울려 퍼졌다? 편성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KBS는 당시 올림픽 중계로 인해 순연된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프로그램 편성은 항상 바뀌어요. 편성본부에서 하는 편성 원칙은 편성 시점에 따라서 계속 연계 편성하는 거예요. 오래전에 편성됐다는 건 무책임한 설명이죠.”
‘윤 대통령과 대담’으로 논란이 됐던 박장범 사장이 취임했습니다. 박장범 사장의 KBS는 어떻게 보세요?
“박장범 사장에게 붙어 있는 별명이 있잖아요. 게다가 정말로 쉽지 않은 국면에서 취임했는데, 어쨌든 KBS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도 하면서요.”
‘지금 당장 밉거나 맘에 들지 않는다고 KBS에 무관심하고 포기하거나 제발 잊지는 말아 주시길 간곡히 호소드린다’라고 SNS에 올리셨더라고요. 그런데 예전만큼 TV 시청 안 하잖아요. 공영방송이 왜 필요하냐는 주장도 있는데.
“미디어 환경이 엄청나게 변한 건 분명해요. 다만 그런 속에서도, 대한민국에서 공영방송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평상시에 공영방송 KBS를 규정할 때 ‘민주주의 사회 소통의 기간 매체’ 그리고 ‘대한민국의 문화 정체성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이 두 가지를 항상 강조했어요.
지금 유럽 국가 같은 데 보면 공영방송을 지원해 주고 공영방송이 역할 잘하는 나라일수록 민주주의 제도가 잘 정착돼 있어요. 그다음에 KBS는 국제방송, 장애인 방송, 사회교육 방송, KBS 교향악단 운영 등 다양한 사회 공헌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KBS가 공사로 전환한 지 2023년에 50년 됐거든요. 그때 기념사를 하면서 ‘온라인이 소통의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도 우리 회사는 역할을 많이 해야 한다’란 얘기를 했었고 실제로 그래야 해요. 지난 50년 동안 국민이 낸 수신료를 기반으로 공영방송이 공공 인프라, 즉 사회적 제도로 정착했어요. 그래서 KBS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이에요.
그러니 지금 당장 마음에 안 들고 밉다고 해서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한 거예요. 우리의 중요한 자산이니까, 그 공공자산이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꾸짖고 요구도 해주시되 잊지는 말아 달라는 거죠.”
마지막으로 전하실 말씀이 있다면?
“저는 KBS 전 사장으로서 KBS가 다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해요. 지금 당장은 KBS에 미운 점들이 많겠지만 50년 동안 국민이 만들어온 자산이니 채찍을 가하되 잊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믿음을 갖고 지켜봐 주시고, 관심 가지고 성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위해서 안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구성원들 지지를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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