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을 한다고 아이들을 ‘구출’할 수 있을까?

[culture critic] 어린 남성들은 정말로 유튜브 때문에 극우가 되었나

2025-01-24     윤광은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이번 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글이 있다. ‘내 아들을 '극우 유튜브' 세계에서 구출해왔다’(오마이뉴스)는 제목의 글이다. 한 교육 대학 교수가 아들을 직접 교육한 체험을 쓴 수기로서, 10대 남학생들이 우경화에 흡수되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지 경고한다. 내 아들을 ‘깨어 있는 시민’으로 기르기 위해 갖은 공을 들여왔지만, 어느 순간 나쁜 사상에 물들어있는 걸 목격했다고 한다. 글쓴이는 여성혐오를 내면화하고 대통령의 계엄을 지지하는 건 그 나이 또래 남자들의 지배적 성향이라고 단정한다. 그가 이 전염병의 병균으로 지목하는 건 ‘유튜브’고, 해약으로 제시하는 건 '좋은 유튜버 양성'과 ‘토론 교육’이다.

젊은 남성들의 우경화는 꾸준히 얘기돼 온 현상이다. 저 글은 사회적 공감대가 익히 형성된 주제에 관해 충격 요법을 쓰듯 고발한다. 그런 만큼 과장과 단순화가 심하고, 진단과 해법도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있다.

유튜브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남학생들이 극우 유튜버 때문에 우경화한다는 건 개개인의 이념을 형성하는 사회적 배경을 지나치게 축약하는 것이다. 여자들이 트위터 때문에 ‘페미’가 됐다는 수준의 얘기와 다를 것이 없다. 지금처럼 미디어 경험이 일상을 구성하는 사회에서, 미디어 플랫폼이 일으키는 파장은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여러 매체의 영향력을 복합적으로 평가하고 서로 다른 층위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예컨대, 유튜브는 이용자들이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매체이지만, 이용자들이 직접 글을 쓰며 공론장을 만드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다. 이런 공간들은 외부 사회 동향에 영향을 받고 내부에서 어떤 흐름이 재생산되며 집단적 정체성을 엮어낸다. 그런 현상이 미디어 사용자들의 오프라인 생활에 피드백되며 사회적 실체를 만들어 내기도 할 것이다. 어떤 집단이 어떤 경로로 의식화되는지 논하려면 더 구체적이고 다층적인 진단이 필요하다.

한편으론 글쓴이가 엘리트주의에 경도돼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가 자식의 시민의식 함양을 위해 실행한 교육들은 중산층 이상의 부모가 제공할 수 있는 사치에 가깝다. 박물관, 미술관에 데리고 다니는 문화 활동과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는 여행 같은 것들이다. 글쓴이는 다른 부모들에게 '이토록 열성을 기울인 나도 자식이 물드는 걸 막을 수 없었다'라고 경고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엘리트 조기 교육에 속하는 저런 활동들이 이념 성향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글쓴이의 논리 체계 속에서 ‘극우화’는 교육의 결핍, 나아가 교양 결핍의 산물처럼 간주되고 있다. 풍부한 교양을 갖추고 토론을 즐기는 엘리트 계층에도 엄연히 극우주의자들이 있고, 그런 이들이 세계적으로 극우 진영의 리더를 맡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동의할 수가 없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출석한 가운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 담장을 넘으려 시도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건 널리 퍼진 오해이기도 하다. 나와 다른 성향을 ‘결핍’의 결과로 보는 태도 말이다. 여성혐오와 페미니즘, 반대 정당 지지 성향을 낮은 지능과 교육 수준, 계층 환경의 결과처럼 규정하는 말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념 성향은 지능과 교육을 넘어 프레임의 문제와 닿아 있다. 사람들이 앎이라 믿는 건 실은 프레임인 경우가 많다. "친일독재" "친노종북" 네 글자에 무슨 앎이 걸려 있는가. 저 슬로건 중 하나를 내면화하는 데서 정치적 입장이 갈린다. "혐오는 사회적 권력관계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여성혐오는 있어도 남성혐오는 없다"와 같은 간단한 논리를 이해하는 것 역시 지적 능력이 필요하지 않다. 이해를 떠나서 상대의 논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다. 뒤집어 말하면, 내가 '깨어있는' 것 역시 내 앎 덕분이 아니다. 내가 선 삶의 위치와 경로로 인한 어떤 관점과의 조우 덕분이다.

사람들 앞에 어떤 관점의 경로가 형성돼 있는지, 왜 그런 경로로 진입하는 것인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교실 내부의 환경이나 커리큘럼이 변수일 수도 있고, 말했듯이 복합적으로 형성된 미디어 생태계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를 아우르는 더 넓은 관점에서 사람들이 공유하는 집단적 문화를 살펴야 한다. 말하자면 이건 세계관의 문제다. 보수와 진보, 페미니즘과 안티 페미니즘이라는 강령이 있고, 너희 진영과 우리 진영을 대표하는 우상과 악당이 있으며, 이 세계에서 옳은 것은 우리의 입장뿐이며 기득권 때문에 차별당한다는 서사다. 이러한 세계관이 유희와 메시지의 형식을 띤 ‘밈’을 통해 전파되고 내면화되고 있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이 국면에서 미디어 생태계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미디어가 발달하고 분화했지만 미디어 생태계는 갈수록 고립되고 폐쇄화된다. SNS는 알고리즘 편향에 의해 콘텐츠를 공급하고, 커뮤니티는 이용자들 정체성과 배치되는 외부 인자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자치된다. 우경화 현상의 한 내용을 이루는 ‘젠더 갈등’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두드러지는 이유는 그들이 변화하고 있는 젠더 개념을 직면하며 삶의 경로를 이루어 가는 시기에 놓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미디어 사용 경험을 통해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세대다. 각각의 세계관을 이루는 폐쇄성을 깨트리고 나와 다른 생각, 나의 믿음과 배치되는 사실에 노출될 수 있도록 미디어 생태계를 개혁하는 논의가 필수적이다. 단순히 극우 유튜버에 대항해 진보 유튜버를 양성하자는 건 지나치게 협소한 시각일뿐더러 이미 구축된 진영구도를 재생산할 뿐이다.

사실, 이런 논의에 앞서 진작 확인했어야 할 것이 있다. 어린 남성들이 “단 한 명도 안 빼고, 100%” 윤석열과 신남성연대를 지지한다는 건 사실에 부합하는 진단일까? 십대 남성들과 가장 성향이 유사할 것으로 짐작되는 18세 이상 20대 남성을 보면 그렇지도 않아 보인다. 최신 갤럽 조사에서 윤석열 탄핵 찬반 20대 여론은 다른 세대와 큰 차이가 없다. 작년 총선 출구조사에서도 20대 이하 남성의 정당 지지율은 여당이나 야당이나 대등하다. 저 글의 가장 큰 어폐가 그런 것이다. 진보적 가치를 민주적 가치와 등치한 채 미래 세대가 함양해야 할 미덕으로 간주한다. 반대 성향을 악마화하는 진영논리로 현실을 과장하며 부모 세대 사이에서 어린 남성들의 우경화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2025년 1월 4주 자료

극단주의와 혐오의 사상은 단호하게 배격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현상이 형성된 사회적 배경과 대책은 더 넓고 중립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적개심은 윤석열을 비판하는 ‘진보 성향’ 커뮤니티에도 관측된다. 극우화라 부를 만한 현상이 초래된 배경에는 사회를 이루는 여러 집단과 층위가 얽혀 있을 것이다. 그 현실을 적대 진영이나 특정 세대에 한정해 놓고 타자화하는 건 기성세대로서 짊어질 책임감 있는 태도가 아니다.

토론은 상대 의견에 귀를 열고 나의 의견을 피력하며 서로의 입장을 종합하는 과정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관대로 어린 사람을 이끌기 위해, 혹은 특정한 생각을 벗겨 내기 위해 ‘구출’을 거행하는 것을 토론이라 할 수 있을까? 그것이 과연 사회의 극우화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런 독선적 태도가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사이에 벽을 쌓고, 기성세대에 대한 적개심이 여성혐오 등의 ‘극우화’ 현상과 결합하는 데 일조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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