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시사기획 창' 제작진 "파우치는 뭐길래 한 줄도 못담나"
제작진 "김철우·이재환, 제작 사흘 내내 끊임 없이 수정 요구" "파우치 관련 모든 내용 빼야 방송 가능…이러니 '파우치 방송'" KBS본부 "제작 부당 간섭…사퇴하라"…사측 '이견 상존' 입장
[미디어스=고성욱 기자]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을 다룬 KBS ‘시사기획 창’ 불방 시도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시사기획 창’ 제작진은 제작 과정과 구체적인 외압 내용을 설명하며 “'파우치 발언'은 어떤 성역이길래 한 줄도 담을 수 없다는 것이냐”고 따져물었다.
KBS ‘시사기획 창’은 지난 14일 <대통령과 우두머리 혐의 - 여러분 저를 믿으시죠Ⅱ> 편을 방송했다. ‘시사기획 창’은 ▲정치권과 언론의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윤 대통령 ▲연설 168건을 통해 본 윤 대통령의 입장 변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공소장을 통해 본 ‘12.3 내란’ ▲극우 유튜버의 ‘부정선거’ 음모론과 언론의 역할 등을 조명했다.
‘시사기획 창’ 제작진 3인은 16일 기명 성명을 내고 김철우 시사제작국장, 이재환 보도시사본부장을 전래동화 <떡장수와 호랑이>의 호랑이에 비유해 외압 상황을 전했다. 제작진은 “짧은 준비 시간에 미흡한 점도 많았지만, 10여 명의 제작진은 최선을 다해 며칠째 함께 밤을 새우며 편집에 영혼을 갈아 넣었다”면서 “이때 호랑이가 등장한다. 사흘 내내 제작진의 피를 말리며, 하나를 수용하면 다시 하나를, 또 다른 하나를 요구했고 '이 상태로는 방송이 힘들다'는 후렴구를 반복하며 요구, 또 요구를 반복하는 고개 넘기가 계속됐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김 국장이 방송 안에 박장범 사장이 앵커 시절 윤 대통령과 진행한 ‘조그마한 파우치’ 대담 내용을 편집하지 않으면 방송이 불가하다고 통보해 일부 수정했다고 전했다. 제작진은 “불방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건 반영했다. 그런데 박장범 사장이 했던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 조그마한 백' 질문과 윤 대통령 답변, 대담의 여파를 데이터로 분석한 내용을 아예 삭제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김 국장이 해당 내용을 ‘왜 빼야 하는지 논리적인 설명을 해달라’는 질문에 아직 답변을 안 했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김 국장의 수정 요구를 일부 받아들여 방송에 문제가 없는 줄 알았지만 이재환 본부장이 막아섰다고 말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이 본부장은 ‘파우치’를 아예 삭제하지 않을 시 방송이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또 이 본부장은 팀장, 부장, 국장과 논의를 거쳐 완성한 원고 내용을 제작진과 상의 없이 여러 차례 수정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제작진은 “방송 당일 아침, 숙고 끝에 파우치 관련 모든 내용을 들어내더라도 방송을 내기 위해 노력해 보자고 의견을 모았고, 오전 본부장에게 '파우치 부분' 녹취를 완전히 빼겠다고 했다. 본부장은 그 외 수많은 요구 사항을 말했고, 대부분 수용해 방송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지만, 제작진에게 한 마디 없이 임시 공정방송위원회 소집을 요청했다. 말은 공방위 요청이지만, 결방 통보였다”고 비판했다.
이 본부장은 14일 오후 3시 임시 공방위 개최를 요구하며 공방위가 열리지 않을 시 프로그램을 순연시키겠다는 공문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에 보냈다. 하지만 이날 오후 2시 19분 <시사기획 창>은 편성에서 삭제됐다.
제작진은 “이후 파우치와 관련된 모든 내용을 빼야 방송할 수 있다는 통보가 왔다”면서 “대체 '파우치 발언'은 어떤 성역이길래 한 줄도 담을 수 없다는 것이냐. 끝없는 ‘고개 놀이’에 지쳐갔지만 이제 와 방송을 포기할 수 없어 수용했다. 그러나 ‘방송 가능’ 통보는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이 본부장이 제목에 ‘혐의’ 글자를 달고, ‘야당 때문에 일을 못해 힘들다’는 대통령의 녹취도 추가하라고 지시해 수용했으나 방송 시작 3시간 전 “좀 더 보완해서 연기하는 방안”을 이야기했다면서 ‘야당도 저런 짓을 했구나, 대통령이 화가 날 만 했구나 정도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 본부장은 구체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줄탄핵’ 내용을 요구했다고 한다. 제작진은 “막판 수정 중에 본부장은 또다시 연락해, '체포 거부하는 대통령' 부분 내레이션 삭제를 요구했다”면서 “더빙 없이 관저 차벽 영상만 어색하게 흘러 나간 이유”라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이게 정상인가”라면서 “대체 왜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꼭 필요한 논리 전개의 한 부분을 '논리적 설명'도 '정당한 절차'도 지키지 않으면서 빼야 한다고만 강요한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제작진은 “다큐에서 ‘이대로 우리 사회는 괜찮을까’라고 질문을 던졌는데, 보도국에도 묻고 싶다”면서 “방송과 편집 결정은 '경영진의 정당한 권한'이라고 말씀하시면 반드시 이런 후렴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이러니 ‘파우치 방송’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같은 날 KBS본부는 성명을 내어 ‘불방 시도’ 논란과 관련한 사측의 입장에 대해 “‘편파적’이라는 얼토당토않은 프레임을 씌워 방송 당일 방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수정을 지시하고, 수정되지 않으면 방송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게 불방 시도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KBS본부는 “제작진과 협의도 없이 파우치 박장범이 등장하는 부분 등을 아예 삭제하라고 명령한 게 이 본부장”이라며 “편성규약을 심대하게 위반한 행위임은 물론, 제작과 관련해 부당하게 간섭한 것이다. 모든 책임은 이 본부장과 김 국장이 져야 한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앞서 KBS는 “KBS 보도시사본부장의 불방 지시는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보도시사본부장은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에 따라 공정성 훼손 위험성이 있는 일부 내용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제작과 편성 과정에서 제작 실무자와 책임자 간의 이견은 상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