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보도에 기계적 균형-정치적 중립 틈이 있나요?”
[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윤창현 언론노조위원장
[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12·3 내란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란 우두머리인 윤석열 대통령은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며 버티기에 돌입했고 국민의힘은 끝을 다한 권력을 지키기 위해 탄핵심판 지연 작전에 올인하는 모양새다. 27일 국회는 국정 안정의 유일한 길을 외면한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내란 사태가 발생한 12월 3일 국회가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로 언론 보도를 뽑는 의견이 많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즉시 생중계를 통해 국회 안팎의 상황을 전하고 특보 체제를 이어갔다. 12·3 내란 사태 이후 언론 역할 등에 대해 의견 들어보고자 지난 24일 서울 프레스센터 내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을 만났다. 다음은 윤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12·3 내란 사태’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14일 국회를 통과했잖아요. 일련의 상황 어떻게 보셨어요?
“지금까지는 극단적인 세계관을 가진 자들이 민주적인 공론장을 어지럽힌다는 얘기를 많이 해왔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타고 확산한 끝에, 결국 국가 최고 권력인 대통령이라는 사람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단계까지 온 거죠. 우리 사회 공동체가 수십 년 가꿔온 약속과 제도를 파괴해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고 국가 공동체를 붕괴시킬 뻔한 위기를 초래한 거예요. 천만다행으로 국회에서 계엄령을 해제했고 국민들이 저항권 행사하면서 잠시 멈춰선 듯하지만 저는 여전히 내란이 진행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왜요? 국회 탄핵소추안 통과로 윤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된 상태인데.
“군사력 동원해 내란을 획책했던 사람들 일부가 구속됐지만 사실 윤석열이 미치광이 같은 불법 행위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단순히 군대에만 있지 않거든요. 부정선거론을 포함한 음모론적 주장 등 이미 오래전에 사회적 합의로 정리된 문제를 헤집어서 정치적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모두 좌파로 몰고 척결의 대상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언론계를 비롯해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어요.
가장 질서 있는 내란 범죄의 정리는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하고 새로운 정치 체제를 구축해서 그런 사람들 몰아내야 하는 것이거든요. 거기까지는 아직 많은 경로가 남아있어요. 그래서 저는 현재도 내란은 진행형이라고 보는 겁니다.”
음모론이 활개를 치는 이유는 유튜브의 부작용일까요?
“유튜브뿐만 아니라 2000년대 후반부터 페이스북, 트위터를 중심으로 소셜 미디어들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했잖아요. 일장일단이 있어요. 2010년대 초반 이른바 북아프리카에서 시민혁명이 불붙었던 때는 독재권력에 짓눌렸던 다양한 민중들의 목소리가 빠르게 소통되는 경로가 됐거든요. 근데 동시에 정치적 영향력이 막대한 사람들도 똑같이 SNS를 자신들의 스피커로 확장하면서 정치적 극단주의가 더 강해진 거예요. 미국의 트럼프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트럼피즘이 가능했던 요인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결정적이었어요. 소셜 미디어의 확산이 초기 단계에서는 민주주의의 확보 또는 전제정치나 독재정치를 붕괴시키는 데 일정하게 기여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론장에 확인되지 않은 극단적 주장이 전파되고 그것이 곧 정치적 팬덤으로 이어지면서 파시즘의 새로운 유형들로 진화하고 있다고 봐요.”
2021년 발생한 미국 의사당 난입 사건과 비슷한 맥락일까요?
“2021년 미 의사당 난입 사건이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진압됐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소셜 미디어를 기반으로 미국 사회 저변에 음모론이 더 확산했고 그걸 기반으로 트럼프가 복귀했잖아요. 그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지금 한국에서 발생한 내란 사태가 더 심상치 않다고 생각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서 비상계엄이라는 친위 쿠데타가 가능하겠냐고 생각했지만, 그걸 실행에 옮긴 배경을 보면 군이란 무력 수단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저변에 깔린 극단주의자들의 운동장이 그만큼 넓어졌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왜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게 됐을까요?
“이런 현상은 양쪽 정치 진영을 막론하고 존재하는데 자기들끼리의 세계관에 갇혀 있기 때문이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생각이 똑같은 사람들끼리 의견을 공유하고 확증편향을 강화하면서 점점 극단화되는 거예요.”
알고리즘 때문일까요?
“알고리즘 문제를 넘어서죠. 알고리즘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도록 유도한다고 해도 개개인이 어떤 정보를 취합해서 볼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가 남잖아요. 결국 어떤 미디어를 선택하고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여 균형적 사고를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알고리즘의 영향도 있지만, 미디어를 어떻게 이용하고 수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학습이나 훈련 체계가 전혀 없다는 게 문제죠. 그게 우리 사회에 지금의 민주주의 위기를 불렀다고 봐요.”
비상계엄 선포 소식은 어떻게 들으셨어요?
“그 전날 제가 부산에 출장 갔다 새벽 2시에 귀가했거든요. 그래서 일찍 퇴근해서 쉬려고 누워 있다가 소식을 봤어요. 속보 받자마자 ‘우리 언론노조 조합원들 활동 공간이 계엄군에 의해 전부 침탈당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떠올랐어요. 그래서 일단 몇몇 조직들 상황을 확인했고요. 당시 포고령을 통해서 계엄사가 언론을 통제하겠다는 걸 공식화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응하는 작업에 바로 착수했죠.”
포고령 보니 어떠셨나요? 언론노조 위원장으로서 섬뜩했을 것 같은데.
“섬뜩하다기보다 헛웃음이 나왔어요. ‘21세기에 저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싶었죠. 언론, 방송을 아무리 통제해도 개개인이 미디어인 시대가 돼 있기 때문에 관련 소식들의 전파를 막거나 통제할 방법이 없어요. 박정희나 전두환 시대에는 신문, 방송을 통제하면 시민들의 눈길을 막을 수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해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 언론인과 정치인을 수거한다는 표현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어떻게 보셨어요?
“계엄 포고령의 연장인 거죠. 홍장원 국가정보원 1차장으로부터 체포대상 15명 이름이 나왔잖아요. 그게 1차 대상이었을 거라고 봅니다. 실제 내란범들이 12월 3일 밤 국회를 점령해서 계엄에 성공했다면 수거 대상은 부지기수로 늘어났을 거예요. 저 같은 경우는 언론인이자 노동조합 대표자잖아요. 아마 수거 대상 1순위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국회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155분 만에 통과됐잖아요. 언론이 제 기능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와요.
“지금 상황에서 언론의 역할이 대단히 크다고 봅니다. 12월 3일 당일 밤에도 지상파 방송, 특히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일하는 사업장에선 이 사태를 초기 단계부터 엄청나게 비판적으로 접근했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규정 속에서 방송이 진행됐어요.
그리고 대부분 그 현장을 끝까지 생중계했죠. 그날 밤 생중계는 역사의 기록인 동시에 범죄의 기록이에요. 방송 출연진 포함해서 현장의 카메라 기자와 취재 기자들이 거대한 역사의 한 장면과 범죄의 기록을 남긴 거예요. 당시 언론인들의 활동, 취재와 보도 내용 전체가 헌법재판소 그리고 윤석열 내란죄 수사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증거로서 역할을 할 거라고 봅니다.
다만 윤석열의 직무 정지 이후에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면서 윤석열 탄핵과 파면, 한덕수 권한대행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에 대한 일부 언론의 접근이 노골적으로 정파적 이해에 기초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띕니다. 그러나 내란 동조, 방조자들과 언론자유, 민주주의 사이에는 기계적 균형이나 정파적 이해가 자리할 틈이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그러면 언론인은 제3자 입장에서 기록해야 할까요?
“개인으로서 정치적 입장과 사건을 기록하는 저널리스트로의 입장은 다를 수도, 일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어떤 원칙’으로 지금의 상황을 취재할 것이냐죠. 12월 12일 윤석열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늘어놨지만, 일부 극단적인 매체들을 제외하고 보수 종편까지도 대부분 팩트체크해서 보도했어요. 또 이후 내란 범죄의 증거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12일 당시 발언을 배치해서 보도하고 있거든요.
왜 언론이 윤석열의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보도하느냐는 지적도 나왔는데, 역사의 목격자인 언론은 독재자의 말도 보도할 수밖에 없어요. 히틀러와 전두환의 수많은 말들이 그래서 지금도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이죠. 다만 보도하되 그것이 사실인지, 우리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의 가치에 부합하는지 등을 끊임없이 확인해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언론인들에게 있는 겁니다.”
내란 사태 수사 속보에 대해 '피의사실 받아쓰기 보도' 아니냐는 문제 제기도 있던데.
“지금 윤석열의 내란 범죄가 피의사실이기 때문에 대법원 결심이 끝날 때까지 보도하지 말아야 하나요? 지지하는 정치 세력의 유불리, 선호 여부에 따라서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입장이 너무 많이 바뀌잖아요. 저는 그런 행위 자체가 정보를 편향적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봐요.
또 ‘피의사실 공표’를 ‘검찰 받아쓰기’로 등치시키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 윤석열의 내란 범죄와 관련한 수많은 증언과 증거들은 검찰이나 국가수사본부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에요. 많은 언론사들이 독자적으로 취재하고 있어요. 독자적인 취재를 통해서 범죄자들의 범죄 혐의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인데 그게 피의사실이라는 이유로 공표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흘렸을 수 있죠. 하지만 그것조차도 언론의 추가적인 검증 과정을 거쳐서 정보의 순도를 높인다면 보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윤석열이 검찰 출신이고 검찰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너무 크지만, 검찰 개혁과 언론 보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구분돼야 합니다. 비리 부패 혐의뿐만 아니라 지금 이 나라를 망하게 할 뻔한 내란 범죄에 대해 언론은 더 적극적으로 피의사실을 보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란 사태에 대한 KBS 보도 문제도 나오는데 어떻게 보세요?
“저는 ‘박민의 KBS’ 체제 아래 지금 사장인 박장범 등등이 대통령실 가서 ‘조그마한 파우치’라면서 말도 안 되는 대담 방송 내보낸 사건 자체가 내란의 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KBS를 이 정도로 장악했으니 계엄과 쿠데타를 해도 큰 스피커 역할은 하겠구나.’하는 의도를 부인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실제 윤석열 정권의 KBS 장악에 부역하거나 목소리를 높여서 환영했던 집단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했던 얘기가 다 언론노조 공격이었거든요. 지금 윤석열 정부의 시각에서 보면 국민이 80%가 좌파잖아요. 그 정도로 몰상식한, 시대착오적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있고 그 상황을 정리해야 할 책무가 언론노조에 있습니다.”
남영진 전 KBS 이사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해임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지난 21일 법원은 원고승소 판결했고, 이에 앞서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이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해임취소 소송도 법원이 원고승소 판결 내렸어요.
“당연한 귀결입니다. 지금까지 법원은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의 ‘임기 도중’ 해임에 대해서 굉장히 엄격하게 봤어요. 그러니까 2017년 고대영 사장 해임도 그랬는데, 이런저런 잘못이 있지만 해임할 정도는 아니라는 판단이었단 말이에요. 그에 비하면 남영진 전 이사장의 경우는 아예 해임 사유가 될 수 없는 정도인 거예요. 저는 3심까지 가도 같은 결론이 유지될 거라고 봅니다.
권태선 이사장 문제도 똑같습니다. 방통위가 소위 언론계의 극우 분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서 해임했단 말이에요. 그들이 해임 사유로 삼은 10가지를 다 인정하지 않았어요. 저는 2심 3심 가도 결론이 똑같을 거로 생각합니다. 남영진 이사장 해임이 불법으로 결론 난다면 KBS는 박민 사장 선임도 불법, 방통위 2인 체제에서 진행된 박장범 현 사장 임명도 불법으로 ‘불법의 도미노’가 곧 무너지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국회 과방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현 의원이 방송4법을 늦어도 내년 2월까지는 처리하겠다고 했어요. 이에 대해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일방적 처리 반대한다는 입장이던데.
“저는 언론개혁시민연대의 문제의식도 존중하지만, 12월 3일 전후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내란범들은 계엄 포고령을 통해서 ‘언론자유를 인정하지 않겠다’, ‘헌법 필요 없다’라고 선언했어요. ‘합의 처리’라는 건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라는 얘기잖아요. 정치적 중립의 경계를 어디로 삼을 거냐가 핵심인데, 지금은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거부하는 내란 세력과 그렇지 않은 세력 사이에 정치적 중립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란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공론장에서 주변화되고 배척돼야 합니다.
지금 내란동조 정당이 된 국민의힘과 어설픈 합의를 추진하자는 것은 내란동조 세력에게 공영방송을 포함한 공론장에서의 지분을 인정하자는 것과 똑같은 얘기가 돼버릴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그런 세력들이 공론장을 더 이상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정치적 독립성을 완전히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안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윤석열이 언제 파면될지 모르겠지만 조기 대선이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는 어느 정치 세력이 집권할지 불투명성이 있잖아요. 바로 지금 이때가 방송4법 처리의 적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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