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기자들, 소수 간부의 뉴스 큐시트에 분노·좌절"

[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노태영 KBS 기자협회장

2024-12-13     이영광 객원기자

[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12.3 내란 사태 이후 대부분의 방송사가 특보 체제에 돌입했다. 방송사들이 저녁 메인뉴스 시간을 확대편성해 내란 사태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있지만 KBS는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10일 ‘파우치’ 꼬리표가 붙은 박장범 사장이 새벽 도둑출근으로 임기를 시작하고 주요 국장 인사를 강행하며 구성원들의 반발을 불렀다.

박장범 사장 취임 전, KBS 기자협회는 “KBS가 내란의 공범으로 몰려도 할 말이 없을 정도”라며 KBS 뉴스 위기 극복을 위한 특별취재팀, TF 구성을 요구했다. 또 언론노조 KBS본부 쟁의대책위원회는 ‘계엄방송 사전 언질’ 의혹과 관련해 박민 전 사장과 최재현 전 통합뉴스룸국장을 경찰에 고발했다. 지난 12일 노태영 KBS 기자협회장과 전화 연결해 관련 내용과 내란 사태 이후 KBS 보도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노 기자협회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노태영 KBS 기자협회장

‘계엄 방송’ 관련해 언론노조 KBS본부가 박민 전 사장과 최재현 전 통합뉴스룸국장을 고발했는데, 어떤 의혹인가요?

“최재현 전 통합뉴스룸국장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2시간 전쯤 대통령실로부터 계엄 방송을 준비하라는 언질 받았다는 의혹인데요. 이게 왜 문제가 됐냐면, 방송법 4조 2항에는 누구든지 방송 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돼 있습니다. 여기에 저촉되는 게 아니냐는 거죠. 일단 의혹이 있어서 언론노조가 고발했는데 아직까지 저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6일 최재현 국장이 관련 의혹에 대해 입장을 밝혔는데.

“최재현 전 국장은 사내에 입장문 올려서 ‘대통령 발표 2시간 전에 대통령실 인사 누구와도 통화한 사실이 없다. 또 실제 발표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어떤 내용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대통령 발표 전에 대통령실로부터 계엄과 관련한 언질을 받은 일이 결코 없었다’라고 의혹을 전면 부인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노조는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개연성을 확인했고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최 전 국장이 휴대폰 통화기록을 공개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일단 입장문을 통해서 그런 사실이 없다고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진 제공=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쟁의대책위원회

12.3 내란 사태에 대한 KBS 보도는 어떻게 보고 계세요?

“저희 뉴스에 문제가 많다고 보고 있습니다. 내란 사태 후 저희가 특별취재팀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지만 회사 측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KBS 뉴스 시청률이 최근 들어 타사에 비해 거의 반토막이 난 충격적인 결과를 내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큰 사건이 터지면 특별취재팀 꾸리는 게 관행이었죠?

“맞아요. 예전에 이 정도 크기의 사건이면 특별취재팀을 꾸리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특별취재팀을 꾸리는 게 합리적이고 더 효율적이라고 기자들은 판단했어요. 만약 뉴스 경쟁력이 괜찮다고 판단한다면 굳이 특별취재팀을 요구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는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현재 KBS 뉴스 시청률 등 지표가 좋지 않습니다.

12월 3일에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죠. 그 다음 날 KBS 뉴스를 보고는 심각하다고 판단해서 저희가 12월 5일부터 TF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리고 5일과 6일에도 지속적으로 요구했는데 기자협회의 TF 구성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12월 6일 저녁에 긴급운영위원회를 열어서 계엄과 탄핵 사태 취재를 위한 특별취재팀 구성을 다시 요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보도국장 사퇴를 공식 요구하기로 당시 참석자 전원의 동의를 받아서 의결했습니다. 하지만 그 요구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요. 그래서 회사가 특별취재팀 출범할 의사가 없다고 판단하고 7일 오후에 최재현 전 보도국장 사퇴 요구하는 성명서를 일단 발표했습니다.”

최 전 국장은 이에 대해 이유를 밝혔나요?

“우선 사장이 교체되는 시기고 본인들도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건 후임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물러나는 사람이 특별취재팀, TF 구성을 요구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는 입장을 들었어요. 두 번째, 본인들이 보기에는 현재 취재부서에 있는 여러 간부가 잘하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는 거예요. 두 가지 정도 이유를 들어 거절했습니다.”

지난 3일 KBS의 ‘계엄특보’ 방송 (KBS 유튜브 갈무리)

시청률 하락은 객관적인 지표인데 간부들이 잘하고 있다고 판단한 부분이 이해 안 되네요.

“저희도 그 부분이 안타깝습니다. 보도본부 책임자로서 무책임한 판단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요.”

내란 사태 이후 다른 방송사는 뉴스를 쏟아내는 데 반해 KBS는 다음 날 <뉴스9>조차 시간을 늘리지 않고 방송했는데.

“저희가 특별취재팀을 꾸리자고 요구한 가장 중요한 근거인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12월 4일 (타방송) 메인뉴스 시간을 보면 MBC가 2시간 반 했고, SBS가 3시간, JTBC가 2시간, TV조선도 1시간 반 정도 방송했어요. 그런데 KBS는 1시간으로 시간의 문제도 있지만 평상시와 같은 기준으로 방송을 했더라고요. 대통령이 거의 유례를 찾기 힘든 비상계엄을 선포했는데 이 뉴스의 가치 판단을 평상시로 봤다는 점에 큰 문제가 있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문제의식이 없는 건가요, 아니면 의도가 있을까요?

“그것까지는 알 수 없죠. 결과로, 밖으로 드러난 내용만 봐서는 무책임했고 어떻게 보면 무능한 것 같다고 보고 있습니다. 왜 그랬는지 내부 상황까지 분석할 수는 없고요.”

12월 4일 KBS 뉴스9 보도

보도 내용에서 가장 큰 문제는 뭘까요?

“계엄령 선포는 한국 현대사에 기록될 만한 충격적인 사태입니다. 그만큼 국민들 알 권리가 중요하고 국민들이 뭘 궁금해하는지를 최대한 세세하게 정리해서 전달하는 게 어떤 방송사들보다 공영방송의 책무이죠. 근데 우리 메인뉴스는 시간도 그랬지만 뉴스의 내용에 있어서도 충실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또 내부적으로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탄핵 찬반은 입장이 나뉠 수도 있는 문제잖아요. 하지만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위헌이고 큰 문제가 있다는 점에 대해 당사자인 대통령 말고 주요 의사결정 주체들이 다 동의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그런데 KBS 뉴스는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큰 잘못이라는 점에 대해 분명하게 짚지 못했습니다.”

내란 사태 이후 국회 현안 질의를 통해 여러 증언이 나왔잖아요. 그러나 그보다 탄핵이 맞는지 아닌지, 여야 공방 같은 보도가 나오더라고요.

“국회 현안 질의가 진행돼서 국민들이 미처 몰랐던 비상계엄 사태의 전모가 속속 드러났죠. 거기에 관여했던 수많은 군인들의 증언으로 그날 밤에 어떤 일이 벌어졌었고, 또 실제로는 어떤 치밀한 준비 과정이 있었는지가 밝혀졌는데 KBS 뉴스에선 그 부분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없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그 대신 정치권이 이 사태를 가지고 공방한다는 식으로 보도했는데요. 지금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게 뭔지, 국민들은 어떤 내용을 더 알고 싶어 하는지 수요자의 니즈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공급자 마인드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당시 보도와 지금을 비교해 볼 수 있을까요?

“앞서 명태균 논란이 일었을 때도 TF가 필요하다고 얘기했지만 그때도 보도국 간부들은 TF를 안 받았습니다. 타사들은 여러 부서가 협업해서 심층적인 보도를 내놓는데, 저희는 TF가 없어서 보도가 개별적으로 나가고 제대로 집중이 안 되는 모습이었어요.

자칫 잘못하다가는 지금도 2016년 국정농단 때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던 상황과 유사하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처럼 큰 문제로 비화될 수 있으니 TF를 꾸리자고 얘기했던 거죠. 사실 지금 비상계엄 사태 보도를 제대로 못 하면 국민들이 KBS에 대한 신뢰를 거둬갈 겁니다. 국민들이 KBS를 비판했던 국정농단 때와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질 수도 있으니 정말 긴장해서 보도를 제대로 해야 한다란 의견이 내부에서 많이 올라왔었고 지금도 올라오고 있습니다.”

박장범 사장이 10일 녹화 방송으로 취임사를 하고 있다.(사진=언론노조 KBS본부)

사태가 당분간 지속될 텐데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실 건가요?

“지금 워낙 엄중한 상황이잖아요. 뉴스 모니터를 더 꼼꼼하게 해서 그 모니터 결과가 회사의 실제 뉴스 편집에 반영되도록 최선을 다할 거고요. 조금 더 궁극적으로, 저희는 임명동의제가 꼭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임명동의제는 사실 방송사 대부분이 실시하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공영방송사가 제일 앞장서서 해야 하는 부분인데 사측이 불명확한 이유로 하지 않고 있거든요.

임명동의제 없이 임명된 보도국장이 지난 1년간 KBS 뉴스의 경쟁력을 얼마나 추락시켰는지는 저희가 눈으로 분명히 확인한 사실입니다. 사장의 의지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임명동의제를 시행할 수 있기 때문에 저희는 임명동의제를 당장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요.”

박장범 사장이 10일 취임해서 임명동의제 없이 주요 국장 인사를 단행했던데.

“구성원 동의 없이 임명 강행했습니다. 앞서 KBS 기자들 495명이 서명을 통해서 ‘박장범 후보자를 임명해서는 안 된다’라고 요구했었잖아요. 이번에 또 임명동의제 없이 국장 임명하는 걸 보고 역시 ‘그때 판단이 옳았다. 당신은 사장이 자격이 없다’라고 어제(11일) 성명서를 썼어요.

저희 뉴스 경쟁력이 타사에 비해 반토막이 된 건 전례가 없는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기자들은 현재 크게 분노하고 있고, 당황하고 있고, 좌절하고 있어요. 하지만 KBS의 여러 가지 주요 지표를 되돌려놓기 위해 KBS 기자들은 최선을 다할 겁니다.”

생각하는 방법이 있나요?

“KBS 뉴스 경쟁력 추락 사실에 가장 분노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냐면 후배들이에요. 연차가 어린 후배들일수록 더더욱 분노하고 있거든요. 본인들이 입사할 당시 KBS와 너무 달라진 상황에 분노해서 후배들이 부글부글하고 있는데, 저는 지금 그 후배들의 힘을 믿고 있습니다.

KBS 뉴스를 어떻게 바꾸고, 어떻게 하면 경쟁력을 높일지 고민해야죠. 그런 후배들과 논의해서 기자들의 입장을 신임 국장이나 신임 본부장에게 잘 전달하려고 합니다. 물론 지금 당장 제가 ‘도깨비 방망이 같은 방법이 있습니다’라는 말씀은 못 드리겠지만 후배들의 힘을 믿고 함께 논의해서 그런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쟁의대책위원회가 사옥에 부착한 현수막 (사진=KBS본부 쟁의대책위)

제작 거부도 고민하시나요?

“평기자들의 요구, 기자들의 뉴스 개선에 대한 요구가 계속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저희가 다양한 투쟁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해야겠죠. 그 투쟁 방안에는 제작 거부도 들어있습니다. 일단은 우리의 의견을 뉴스에 반영하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게 반영 안 된다면 단계별로 여러 가지 투쟁 방안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중에 제작 거부도 분명히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세요.

“임명동의도 받지 않고 기자들의 의견도 듣지 않는 소수의 간부가 만든 뉴스 큐시트 때문에, 정작 현장에서 취재하는 후배 기자들이 국민들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고 비판 받는 모습이 협회장으로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런 부조리를 반드시 끊어내겠다는 각오를 말씀드리고요.

두 번째로 KBS 뉴스 시청률이 경쟁사에 뒤집힌 건 정말 정말 수십 년 만의 일이거든요. 이 충격적인 결과를 만들어낸 박민 사장, 당시 보도본부장, 당시 보도국장과 당시 방송주간을 KBS 기자협회는 영원히 기억할 겁니다. 후배들과 그 후배들 또 다음 후배들에게도 전달해서 영원히 잊지 않게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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