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여러분, 내란 우두머리의 선동 받아쓰지 맙시다"

김희원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 실장, 기자들에게 당부 "언론이 반사회적 의견 확대재생산에 기여하면 안 돼" "그냥 인용보도해선 안 된다… 뭐가 문제인지 똑바로 써야" 법리싸움 전면에 선 윤석열 "통치행위"…전두환 주장 동일 대법원, 전두환 무기징역 선고 "내란, 어떤 경우에도 용인 안 돼"

2024-12-12     송창한 기자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김희원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 실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12·3 비상계엄 사태를 옹호하는 자들의 '내란 선동'을 그대로 받아쓰지 말라고 언론에 당부했다. 직접 인용으로만 기사를 끝맺지 말고 발언의 사실관계를 따져 이번 사태의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들이 나와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12일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위헌·위법적 비상계엄 선포를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라고 주장하며 "통치행위가 어떻게 내란이 될 수 있나"라고 항변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재차 규정하며 "이것이 국정 마비요, 국가 위기 상황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비상계엄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지난 11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비상계엄은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지난 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역시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고도의 통치 행위"라고 주장했다. '하야는 없다'며 탄핵심판을 준비하는 검사 출신 윤 대통령이 법리싸움의 전면에 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김 실장은 12일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기자님들, 다시 당부한다. 내란 우두머리의 대국민담화를 똑바로 보도하자"라며 "내란이 아닌 통치행위라는 윤상현 의원의 궤변을 그대로 인용보도하면 안 된다고 바로 몇 시간 전에 제가 썼다. 대국민 담화는 그와 똑같은 논리의 확대 버전"이라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국가 위기를 과장한 전형적 공포 전술이기도 하다. 반사회적 의견이 이런 식으로 주고받으며 확대재생산되는 것"이라며 "언론이 거기에 기여하면 안 된다. 언론은 범죄자의 스피커가 되어선 안 된다는 걸 잊지 말자"고 했다.

김 실장은 11일 SNS 글에서 "기자님들, 내란 선동 받아쓰지 말자"며 "비상계엄이 '고도의 통치행위'이고 그래서 대법원 판례에 따라 '사법적 판단을 자제'해야 한다는 윤 의원의 궤변까지 따옴표 쳐서 보도하지 말자. 이 중차대한 시국에도 우리가 정치인 받아쓰기를 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지금은 국민 대다수가 헌법 공부를 한 덕에 여기에 혹하는 이들이 적다. 그래도! 이런 기사가 나면 격하게 끄덕이는 소수가 있다"며 "헌법학자 중에도 그런 주장을 하는 이가 있고, 기자 중에도 논란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 멀쩡한 의견인 것처럼 보도하면 차마 말 못하고 있던 내심을 공론장에서 확인받은 이들이 엉뚱한 확신과 주장을 쏟아내게 된다"고 했다. 

김 실장은 "총을 겨누고 국회의원을 끌어내 계엄 해제를 막으려 했다는 증언이 다 나온 마당에 '국가기관을 강압적으로 전복시키거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경우'가 국헌문란, 즉 내란에 해당한다는 것이 헌법에 분명하게 명시돼 있다"며 "내란 혐의를 논란의 영역으로 몰고 가려는 궤변을 언론이 확산시켜선 안 된다. 내란 선동에 해당하는 이런 발언은 그냥 인용 보도해서는 안 되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써야 하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계엄군이 4일 자정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관으로 진입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의당은 12일 긴급 성명에서 "극우 유튜브를 보는 줄 알았다. 언론에 정중히 요청한다. 내란 수괴의 변명과 선동에 더 이상 전파를 내어주어선 안 된다"며 "저 자에게 두 번 다시 마이크를 내어주지 말라. 수사당국은 지금 당장 윤석열을 체포하라"고 했다. 

헌법과 계엄법은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요건을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야당을 '패악질을 일삼는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 척결 대상으로 삼았다. '전시·사변'과는 아무런 관계 없는 비상계엄 선포다. 

계엄사 포고령은 국회·지역의회·정당 등의 정치활동을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이고, 무장한 계엄군은 국회 창문을 깨고 난입해 국회의원 체포·구금을 시도했다. 곽종근 특전사령관은 계엄 당일 윤 대통령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문을 부수고 안에 있는 의원들을 끄집어 내라" 지시했다고 말했다. 헌법과 계엄법 어디에도 계엄을 통해 입법부의 활동을 금지할 수 있다는 내용은 없다. 오히려 헌법과 계엄법은 전시·사변 등 비상사태에서 계엄이 선포되더라도 국회의 계엄 통제권을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87조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를 내란의 죄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91조는 '국헌 문란'에 대해 ▲헌법·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하거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계엄군이 투입된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가 주요 헌법기관에 해당한다. 

'통치행위' 주장은 전두환·노태우 신군부의 주장과 동일하다. 전두환은 12·12 쿠데타와 5·18 내란을 따지는 법정에서 '고도의 통치행위'를 주장하다 내란죄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1997년 대법원 판결(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을 보면, 전두환·노태우 측은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고도의 정치행위'로 주장하며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 문란(내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해진 경우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 혐의로 법정에 선 전두환과 노태우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법원은 "우리 나라의 헌법질서 아래에서는 헌법에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폭력에 의하여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며 "따라서 그 군사반란과 내란행위는 처벌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 

대법원은 강압적으로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국헌 문란' 행위와 관련해 "그 기관을 제도적을 영구히 폐지하는 경우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사실상 상당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포함한다"고 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내란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자들에 대해 "내란죄를 피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내란 가담자들이 하나의 내란을 구성하는 일련의 폭동행위 전부에 대하여 이를 모의하거나 관여한 바가 없다고 하더라도, 내란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전체로서의 내란에 포함되는 개개 행위에 대하여 부분적으로라도 그 모의에 참여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기여하였음이 인정된다면 그 일련의 폭동행위 전부에 대하여 내란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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