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노동에 대한 진취적 판결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미디어스=김홍열 칼럼]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가 내린 판결은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 노동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게임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 송출하는 유튜브 채널 ‘자빱TV’ 스태프 15명이 채널 운영자 이 모 씨를 상대로 낸 임금 지급 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원고 측 손을 들어 주면서 이들이 근로자라는 것을 인정했다. 원고들은 주로 재택근무를 하던 스태프들이었다. 이들은 근로계약서 작성 없이 채널 운영자 지시로 자빱TV 채널에서 방영되는 콘텐츠를 일정에 맞춰 제작하는 일이 주 업무였다. 콘텐츠 제작 분야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스태프처럼 이들도 낮과 밤, 평일과 주말 상관없이 채널 운영자 지시에 의해 데드라인에 맞춰 콘텐츠를 생산해 왔다.
자빱TV 스태프 15명이 법원에 가게 된 주요 이유는 자신들 노동에 대한 정당한 임금을 받기 위해서였다. 채널 운영자 지시에 따라 노동력을 제공했는데 회사가 그에 대한 합당한 임금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채널 운영자는 주중 저녁에는 물론 주말에도 단톡방을 통해 업무를 지시했고 지시를 받은 스태프들은 일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재택 상태였지만 사실상 근무 대기 상태였고 실제 근무를 했다는 것이다. 반면 회사는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단톡방에서는 사적인 대화도 이루어졌고 메시지 송수신도 계속 이어진 것이 아니라 간헐적이었기 때문에 노동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채널 운영자는 단톡방에서 이루어진 업무 지시가 업무라기보다는 일종의 의견 개진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이 재판은 원고들이 2022년 6월 법원에 소송을 낸 지 2년 5개월 만에 1심 선고가 나왔다. 비교적 간단해 보이는 재판이 예상외로 오래 걸렸다. 이유 중 하나는 자빱TV 스태프를 근로자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스태프들은 채널 운영자의 업무 지시를 받고 상시 일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채널 운영자의 생각은 다르다. 채널 운영자는 스태프 급여에 대해 “프로젝트에 대한 건당 계약을 진행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 방송 흥행 성적과 기여도에 따라 인센티브을 고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스태프들은 근로자가 아니라 일종의 파트너라는 것이다. 업무 분량이 많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는 하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고 주장한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자와 사용자는 근로계약서를 체결해야 하고 근로계약서에는 임금, 근로 시간 외에 취업의 장소도 명시하게 되어 있다. 취업의 장소는 사용자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근로자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규제할 수 있게 만든 통제 가능한 공간이다. 근로자는 이 공간에서 사용자의 지시에 의해 자신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제공해 서비스나 물품을 생산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공간 안에서 별다른 근로가 실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용자는 임금 지급을 거부할 수 없다. 사용자가 지정한 공간 안에 있다는 자체가 노동의 준비 단계 즉, 노동에 포함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이 ‘취업의 장소’라는 공간이 확장되고 재구성되고 있다. 인터넷 이전 노동의 공간은 물리적 공간이 전부였지만, 초고속 통신망 5G가 일상화되면서 가상 공간이 노동의 공간에 들어오게 되었다. 사용자는 근로자를 항시 규제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무공간 운영비용 절감, 유능한 인재 확보, 개인별 실적 관리 용이 등 생산성 차원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기업이 계속 늘고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네트워크를 통해 개인별 실적 관리가 용이하고 공간에 상관없이 직원을 제어할 수 있는데다 비용 절감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재택근무 도입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재택근무의 활성은 사용자 근로자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재택근무 역시 근로계약의 일부이기 때문에 적절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의 내용이 제대로 준수되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특히 근로자에게 치명적 불이익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자빱TV도 이런 사례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채널 운영자는 스태프들이 직원이 아니라 일종의 파트너라고 주장하지만, 둘 사이에는 상호 서명한 파트너십 계약이 없다. 회사 공간이 아니라서 자율적 근무가 가능하고 어느 정도 사생활도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현실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 재판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사실상 근로자인 것이다.
근로계약서에 공간이 명시된 이유는 근로자가 통제 가능한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공간을 벗어나면 사실상 통제가 불가하기 때문에 사용자 입장에서는 공간을 분명하게 명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네트워크 시대에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용자는 오히려 더 넓은 통제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또 근로 시간과 상관없이 근로자를 항상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사생활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연대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노사관계에서는 구속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번 판결의 의미는 분명하다. 근로자의 분명한 동의 없는 모든 연결은 구속이며 업무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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