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마한 파우치' KBS 대통령 대담, 외주PD 동원해 깜깜이 제작"
'공영방송 사장, 그 자격을 묻는다' 국회 긴급토론회
[미디어스=노하연 인턴기자] 깜깜이 대통령 대담 제작 과정이 박장범 KBS 사장 후보자의 '조그마한 파우치' 발언에 판을 깔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월 7일 방송된 KBS 대통령 대담에서 당시 박장범 <뉴스9> 앵커는 김건희 씨가 수수한 디올백을 조그만한 파우치라고 에둘러 질문했다. KBS는 2월 4일 촬영한 '대통령 대담' 녹화본을 사흘 뒤 방송했다. 녹화대담이 결정된 것은 1일이다.
18, 19일 박장범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 위원들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영방송 사장, 그 자격을 묻는다> 긴급 토론회를 공동주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정헌 민주당 의원은 KBS 제작 시스템의 문제를 정조준했다. 그는 “박장범 앵커의 말도 안 되는 대통령 대담이 KBS 흑역사로 기록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더 큰 문제는 이 대담이 철저히 준비된 사전녹화"라면서 “편집 과정에서 보도본부장을 비롯해 내부 모니터링을 했을 것이고, 걸릴 만한 내용이 편집 없이 그대로 방송됐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경진 전 KBS 시청자위원장은 “당시 시청자위원장인 저를 비롯해서 시사 보도 분야를 중심으로 의견을 냈던 시청자위원들이 하나같이 동일한 문제를 제기했었다”며 “그런데 KBS에서 ‘제작 가이드라인에 맞춘 것이다’, ‘문제 될 게 없다’ 이런 답변이 나왔다.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던 답변”이라고 말했다.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내부 구성원도 제작 과정에 대해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불투명하다는 것이 문제”라며 “관계자의 말을 모아서 알아보려 해도 맞춰지지 않고, 공식적으로 회사에서 이야기하는 것 자체도 불투명하게 마무리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조애진 KBS본부 수석부본부장은 ‘깜깜이’ 제작 과정이 대통령 대담에 적용됐으며 고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조 부본부장은 “(대통령 대담을)외주 PD를 한 명 끼워서 제작했다”며 “외주 PD를 끼워서 한 이유가 ‘깜깜이’로 하기 위해서로 알고 있다. KBS 내부 인력을 쓰면 그것이 어떻게든 취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촬영한 시간과 방송본 시간이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부본부장은 “200분 녹화해야 60분으로 편집하는 것이지, 70분 찍어서 60분 편집본을 만든다는 것은 거의 편집이 필요 없는 수준으로 사전에 내용이 정리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5년 전 문재인 대통령 대담 방송과 비교되는 등 '조그마한 파우치' 발언에 대한 비판은 거세졌다. 최경진 전 시청자위원장은 “최소한 기자로서 갖춰야 할 냉정함이나 공정성 이런 게 있어야 하는데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며 “2019년 5월을 아마 기억하실 거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2주년 대담이 떠오른다"고 가리켰다.
2019년 5월 9일 방송된 KBS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2주년 특집 대담에서 송현정 기자는 “자유한국당은 야당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정국을 끌어가고 있다고 판단해 대통령에게 독재자라고 얘기하는데 이 말을 들었을 때 느낌이 어땠느냐”고 질문했다.
최 전 시청자위원장은 “박장범 앵커는 윤 대통령에게 최소한 할 말을 하는 그런 자세를 보여야 했다"면서 "명품백이 국민의 지대한 관심사였던 만큼 아무리 살아있는 권력이라고 해도 제대로 지적하며 물어봐야 했는데 그것을 방기했다. 기자 개인이 아니라 국민을 배신한 질문”이라고 강조했다.
정진임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소장은 “면접 심사에서 ‘왜 조그마한 파우치라고 했냐’고 물으니 ‘그거는 해외 사치품이지 명품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럼 왜 사치품 파우치라고 얘기 안 하나. 그렇게 해도 되는데 본인이 조그만 파우치라고 각색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정 소장은 “여기에서 신뢰가 무너졌다. 일방적으로 한 쪽의 입장만 그대로 전달했기 때문”이라며 “거기서 이미 중립성과 기계적 균형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무너뜨렸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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