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가해자들이 갑자기 딥페이크 괴물이 된 게 아닙니다”

[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박고은 한겨레 기자

2024-09-09     이영광 객원기자

[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사진과 영상을 합성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하는 딥페이크 성범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사실 ‘엔(n)번방’ 사건이 드러나며 우리 사회에 충격을 안겼던 2019년에도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한 딥페이크 성착취물, 지인 능욕 범죄의 존재가 알려졌었다.

하지만 최근 잇달아 밝혀지고 있는 불법합성물 피해 양상을 보면 딥페이크 성범죄를 특정한 소수의 일탈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나 10대들은 불법합성물 제작을 놀이처럼 즐기고 있다고 한다. ‘엔(n)번방’ 사건이란 크나큰 경고가 있었음에도 우리 사회는 어쩌다 이런 사태를 맞닥뜨리게 된 걸까. 딥페이크 성범죄 실태에 대해 들어보고자 22만 명 규모 ‘딥페이크 텔레그램 방’을 취재해 보도한 박고은 한겨레 사회부 기자와 지난 3일 서울 마곡나루역 근처 커피숍에서 만났다. 다음은 박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2019년 11월 한겨레 ‘N번방’ 실태 고발 보도 (이미지 출처=한겨레)

딥페이크 성범죄가 사회문제로 떠올랐는데 텔레그램 방 취재기자로서 현재 상황 어떻게 보고 계세요?

“최근 몇 년 사이에 기술이 너무 빠르게 발전하고 또 보편화된 것 같아요. 제가 2~3년 전 한겨레 젠더팀에 있을 때도 불법합성물 성범죄 관련 기사를 썼었거든요. 그때만 해도 최소한의 비용과 시간이 들었습니다. 개인이 시간을 들여 불법합성물을 만들거나, 기술자에게 돈을 내고 제작하는 방식으로요. 그런데 이제는 텔레그램 제작 봇 같은 곳에 접속해 사진만 넣으면 단 몇 초 만에 불법합성물이 뚝딱 만들어지거든요. 누구나 쉽게 불법합성물을 제작하고 유통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거죠.”

처음 알려진 문제가 아닌데 지금 반응이 이토록 뜨거운 이유는 뭘까요?

“아무래도 가해자 규모에 사람들이 놀란 것 같아요. 인하대 딥페이크 집단 성범죄 가담자가 1,200명이란 사실에 저도 놀랐었는데, 이후 제가 취재를 위해 잠입한 불법합성물 제작 텔레그램 방에는 22만 명 규모가 참여하고 있더라고요. 시민들이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니라 어쩌면 나와 내 친구, 내 가족이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이슈가 더 커진 것 같아요.”

박고은 한겨레신문 기자

딥페이크 성범죄 취재 시작하게 된 게 인하대 사건 터지면서라고 하셨는데 취재 전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딥페이크 성범죄는 한두 해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2020년 6월에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법이 생겼거든요. 이번 취재를 돌입하게 된 건 인하대 딥페이크 집단 성범죄가 터지면서이긴 하지만, 그 이전부터 계속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딥페이크 성범죄의 경우 심각한 디지털 성범죄가 아니라 온라인상에서 마치 하나의 놀이처럼 자리잡은 상황이었거든요.

실제 10대 가해자들을 상담하는 선생님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대부분이 반성하기는커녕 ‘운이 나빠서 걸린 거다’ ‘남들도 다하는 건데 왜 나한테만 그러냐’란 억울함을 표현한다고 하더라고요. 가해자들이 범죄라는 인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니 잘못하면 문제가 커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렇게 규모의 큰 사건이 되어 돌아온 거죠.”

말씀하신 22만 명 규모 텔레그램 방에 들어가는 데 장애물은 없었나요?

“장애물은 전혀 없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인하대 딥페이크 집단 성범죄에 가담자만 1,200명이라는 보도를 보고 ‘이런 방이 더 있지 않을까?’ ‘얼마나 쉽게 접근할 수 있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겨 X(옛 트위터)에서 검색해봤거든요. 그런데 그런 방으로 갈 수 있는 링크를 거의 10초 만에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 링크를 클릭하니 22만 명이 참여하고 있는 불법합성물 제작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요. 누구나 손쉽게 그런 방에 접속할 수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보도가 된 뒤 지금은 대부분 삭제됐지만요.”

그렇다면 미성년자도 쉽게 접속할 수 있으니 더욱 문제 같거든요.

“맞아요. 이번에 가해자들을 잡고 보니 10대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잖아요. 제가 취재를 위해 여러 텔레그램 방을 접속할 때도 누구든 ‘아무런 통제 없이’ 불법합성물 제작유포방에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10대가 많은 이유는 뭘까요?

“10대의 경우 SNS나 디지털 기기 활용에 굉장히 익숙한 세대잖아요. 심지어 불법합성물 텔레그램 방에 들어가기도 너무 쉽고요. 10대 남성 청소년 사이 또래문화도 작용한 것 같아요. 전문가분들에 따르면 여성을 성적대상화하고 혐오하는 게 마치 놀이처럼 아이들 문화에 스며들어 있다고 하더라고요.”

한겨레 신문 8월 22일 자 보도

죄의식이 없는 걸까요?

“10대 가해자들 상담하는 선생님들과 얘기해 보면, 아이들이 죄의식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남들 다 하는 건데 왜 나에게만 그래요?’라는 식의 반응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범죄이고 자기와 관계 있는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거죠.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이 없고요. 그래서 지금 인권교육, 성평등 관점에서의 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된다는 지적들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텔레그램 방은 어떻게 운영되나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딥페이크 성범죄의 시작점이라 볼 수 있는 제작방입니다. 여기서는 대화가 이뤄지진 않고요. 봇 형태로 운영이 됩니다. 우리가 톡으로 고객센터랑 얘기할 때처럼 이 방에 접속하면 지정돼 있는 공지글이 떠요. ‘좋아하는 여자의 사진을 넣어봐라’는 식으로요. 그러면 거기다 사진을 넣어서 개인이 불법합성물을 제작할 수 있는 거죠. 제작방은 대화는 오고 가지 않고 오로지 여성의 사진을 나체 사진으로 만들기 위한 기능만 갖추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두 번째는 링크공유방, 일명 링공방입니다. 여기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유포방’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링크를 서로 공유하는 방인데요. 제가 들어간 링공방에서는 방을 여러 개로 카테고리화 해놨더라고요. 가령 겹치는 지인을 능욕하기 위한 방을 찾는 ‘겹지방’ 링공, 여동생이나 누나 등 가족을 능욕하는 방을 찾기 위한 ‘근친방’ 링공 이런 식으로요. 겹지방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특정 동네를 언급하며, 예를 들어 ‘서울 00구방 있나요? 경기 00고등학교방 있나요?’ 이런 글들이 올라오고 그 방으로 이동할 수 있는 링크들이 올라옵니다.

끝으로 유포를 위한 방들이 다수 있습니다. 제가 취재한 여군방이나 인하대방, 여동생방처럼 딥페이크 사진이 유포되는 그런 방입니다. 여기선 가담자들끼리 사진을 주고 받고, 온갖 성적인 대화들이 오고 갑니다. 지인 능욕이 이루어지는 방이라 보시면 됩니다.”

“혹시 내 사진도?” 초중고, 군부대까지 휩쓴 불법합성물(딥페이크) 공포 (한겨레 보도화면 갈무리)

세 개의 방이 연결돼 있는 건가요, 아니면 개별적인 건가요?

“개별적인 거예요. 방이 세 개만 있는 게 아니라 제가 분류를 제작방, 링크공유방, 유포방으로 한 거고요. 분류마다 각각 많은 방들이 존재합니다. 몇 개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요.”

불법합성물 만드는 게 쉽나요? 5초 만에 만들어진다고도 하던데.

“엄청 쉽습니다. 제가 들어갔던 22만 명 규모 제작방의 경우를 설명드릴게요. 일단 저는 취재를 위해 AI로 만들어진 여성 사진을 넣어봤는데요. 첫 번째 사진을 넣자 ‘5초만 기다리세요’란 문구가 뜨고, 5초를 기다리자 실제로 사진 속 여성을 나체로 뚝딱 만들어주더라고요. 두 번째 사진은 좀 더 상체가 많이 나온 사진으로 넣어봤습니다. 그랬더니 7초 뒤 불법합성물이 만들어졌습니다. 여성의 특정부위를 키우는 버튼도 같이 떴고요. 완성된 합성물은 정말 이게 합성인가 싶을 정도로 정교했습니다.”

무서울 것 같아요.

“너무 무서웠어요. 경악스러웠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기술이 발전해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손쉽게 성착취물을 만들 수 있게 된 거잖아요. 한편으로는, 좋은 방향으로도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이 악용돼서 성범죄에까지 이용된다는 게 화가 나더라고요.”

MBC 〈뉴스데스크〉 8월 20일 자 보도화면 갈무리

피해자들도 만나셨는데 어떠셨어요?

“불법합성물 성범죄 같은 경우 누가 가해자이고 내 사진이 어디까지 번졌는지 가늠하기 힘들거든요. 저와 인터뷰했던 피해 교사분들은 병가를 내기도 하고 근무지를 옮기기도 했어요. 근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미 사진과 개인정보가 온라인에 퍼졌기 때문에 언제든 또 다른 가해자가 유포할 수 있는 거예요. 한 피해자분은 ‘끝나지 않는 지옥’이라고 표현하시더라고요.”

가해자가 누군지도 모를 거 아니에요?

“맞아요. 맨 처음 불법합성물을 제작한 가해자가 누군지 특정하기 힘들죠.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분들은 ‘내가 누군가한테 뭘 잘못했나?’ 혹은 ‘내 주변에 누가 도대체 이런 짓을 했지?’라는 생각에 계속 빠지게 되는 거예요. 심해지면 일상생활조차 힘들어하시고요.”

8월 29일 세계일보 기사 보면 기자 합성방이 생겼다던데 위축되진 않는지 궁금해요. 타깃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어디선가 내 사진이 불법합성돼 돌아다닐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있긴 하죠. 실제 ‘딥페이크 성착취방 문제’ 취재한 기자들을 능욕하기 위한 텔레그램방도 생겼다고 듣긴 했는데요. 정신건강을 위해 들어가보진 않았습니다. 사실 취재하면서 불법합성물 사진을 저도 보게 되잖아요. 그들의 가해 수준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긴 하죠. 근데 그들의 의도대로 위축되고 싶진 않더라고요. 취재를 멈추진 않을 겁니다.”

8월 30일 오전 대전 서구 대전경찰청에서 대전 경찰과 대전시, 대전시교육청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모여 딥페이크 성 착취물 관련 범죄 집중단속 회의를 하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딥페이크가 성범죄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유명인들 이용해 가짜뉴스를 만들기도 하죠. 이런 문제는 어떻게 보세요?

“너무 문제적이죠. 기술을 악용하는 사례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이런 것도 엄벌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어떻게 보세요?

“처벌 강화에 초점을 맞춘 대책들이 많이 나왔더라고요. 물론 처벌 강화도 중요하죠. 하지만 저는 이 문제가 사회 전반의 인식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전문가분들은 이미 여성에 대한 성적 모욕은 온라인상에서 하나의 콘텐츠가 된 지 오래고, 그걸 방치한 탓에 지금처럼 이런 대규모 성착취방이 나온 거란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저는 이 문제를 방치한 ‘주체’가 너무 방대하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성범죄를 경미한 사안이라고 인식해온 수사기관, 솜방망이 처벌을 해온 법원, 제대로 된 성교육과 성평등 교육을 뒷전으로 여겨온 교육 당국이나 학교, 이렇게 많은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과대평가 된 위협'이라고 말하는 정치인까지 모두요.

10대 가해자들이 어느날 갑자기 괴물이 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지금껏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해왔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흡수한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처벌 강화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여러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딥페이크 성범죄 취재하면서 어려운 점은?

“아무래도 취재할 때 어려운 점은 피해자와 이야기할 때죠. 저도 너무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같이 눈물을 흘리기도 해요. 한 피해자분은 피해를 인지한 뒤 근무지까지 옮겼는데도, 피해 사실이 새 근무지에 알려지면서 고통받고 계시거든요. 디지털 성범죄는 반복되기도 하고, 때문에 피해자분들이 계속 불안을 안고 살아가니까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6일 저녁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열린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대응 긴급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불법합성물 보는 것도 고통스럽지 않나요?

“고통스럽죠. 제가 취재했던 여군방 같은 경우 운영자가 방을 없애버려서 수사가 힘들 것 같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나중에 다시 수사가 진행될 수도 있고 피해자분이 기사를 보고 연락하실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해당 방의 캡처본과 증거가 될 수 있는 사진들을 삭제하지 않고 다 가지고 있어요. 가끔 갤러리(사진 저장된 앱)를 볼 때 그 사진들이 보이는데 눈을 꾹 감죠.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좋지 않을 것 같아서요.”

앞으로 취재는 어떤 방향으로 이어가실 생각이에요?

“이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취재와 감시를 멈춰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슈는 금방 뜨거워졌다가 다시 식곤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게 숙제인 것 같아요. 일단 어떤 정책들이 필요한지 계속 고민하고 물어야 할 것 같고요. 수사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대책은 어떻게 마련되고 있는지, 마련한 대책들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같은 것들을 계속 주의 깊게 지켜보고 취재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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