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지켜야 한다는 시민들의 열망, 큰 힘이 됐습니다”
[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윤태호 언론노조 MBC본부 수석부본부장
[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법원이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차기 이사진 임명에 제동을 걸었다. 지난달 2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는 방문진 권태선 이사장과 김기중·박선아 이사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를 상대로 낸 방문진 이사 선임 집행정지 가처분을 인용했다.
이에 따라 방통위가 7월 31일 임명한 방문진 이사 6인의 임기는 취소소송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정지된다. 방문진 이사를 새로 구성해 MBC 경영진을 교체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시도는 일단 가로막힌 셈이다. 이번 법원 결정에 대해 MBC 내부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들어 보고자 지난 8월 30일 윤태호 언론노조 MBC본부 수석부본부장과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윤 부본부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새로 선임된 방문진 이사들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인용했는데 이번 결정 어떻게 보세요?
“재판부가 용기 있는 결정을 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항고심이 남아 있어서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MBC 구성원의 한 사람이자 MBC본부 노조 수석으로서 현명하고 상식적인 판결을 내려주신 재판부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전열을 정비할 시간적, 심리적 여유를 벌었다고 생각합니다.
1심 결정문 보면, 아무런 문제 없다는 방통위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가 조목조목 지적 또는 반박을 해놓았기 때문에 2심에서 뒤집히기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판결이라는 건 알 수 없기 때문에 마음 졸이면서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결정, 어느 정도 예상하셨나요?
“예상을 못 했죠. 아시다시피 이번 소송이 두 개였잖아요? 기대는 했지만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예상이 많았습니다. 권태선 이사장의 경우처럼 해임 처분을 정지하는 게 아니라 ‘임명’ 처분을 정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원으로서도 상당히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어요. 저희로서는 당연히 인용되어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꽤 크다고 봤었던 게 사실입니다.”
내부 구성원들은 어떤 반응인가요?
“말씀드렸듯 ‘임명 처분’ 사안이라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100% 불리하다고 볼 수도 없어서 구성원들은 오직 재판부가 이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봐 주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쉽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인용 결정이 나와서 MBC 구성원들은 그래도 이 법원이 대한민국의 마지막 보루로서 아직 살아있다고 느꼈습니다.”
국회에서 방송 장악 청문회가 세 번 열렸는데 그 영향도 있었을까요?
“저는 당연히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방송 장악에 대한 청문회가 아주 심도 있게 진행되지 않았습니까? 국민이 이 청문회를 통해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의 기본적인 가치관 같은 부분들이 굉장히 편향돼 있고 공직자로서 문제가 있다는 걸 아시게 됐을 거라고 봐요.
이진숙 방통위원장 같은 경우 MBC에서 고위 간부로 요직을 맡으면서 저지른 MBC 파괴 공작들, 대전 MBC 사장 재직 시절 법인카드를 자기 마음대로 썼던 부분들 등 여러 악행이 드러났잖아요. 재판부에서도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의 그릇된 언행과 가치관, 그리고 방문진 이사 선임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위법적인 부분을 저질렀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번 결정의 의미는 뭘까요?
“방통위 2인 체제의 위법성을 법원이 인정한 게 핵심 아닐까 싶습니다. 그동안 방통위나 국민의힘은 2인 체제가 바람직하지 않지만 위법하지 않다는 입장이었고, 심지어 김태규 방통위 부위원장은 국회에서 2인 체제가 합법이라고까지 말했잖아요? 이런 우격다짐에 대해 법원이 확실하게 선을 긋고 잘못됐다고 선언한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인 체제는 더 이상 안 된다고 사실상 못을 박은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게 가처분 소송이잖아요. 2인 체제가 위법해서가 아니라 다툴 여지가 있으니 본안 판단이 나올 동안 집행정지하라는 거란 주장도 있는데?
“본안 소송이 아니라 집행정지 신청이라 재판부가 조심스럽게 표현한 부분이 있어 보이거든요. 그럼에도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방통위법의 취지 자체가 위원 구성에 있어서 정치적 다양성에 대해 핵심으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본안 소송에 있어서도 이 부분은 뒤바뀌기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하고요. 재판부가 2인 체제의 위법성을 지적하는 데 상당히 공을 들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방문진 이사 지원자들이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은 기각했는데 그건 어떻게 보세요?
“일단 재판부 판단을 존중하고요. 방문진 지원자분들이 소송에 어떻게 대처할지는 변호인과 상의해서 결정할 같긴 한데, 그 기각 결정문에도 심의 절차의 위법성에 대한 판단이 담겨 있습니다. 방통위가 기피 신청을 각하한 부분이나 임기가 만료된 이사 9명 중의 6명을 임의로 정해서 후임 이사를 선정한 부분 등에 대해 위법성이 없다는 점이 충분히 소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정문에 나와 있어요.
기각 결정을 한 것은 집행정지의 필요성보다는 본안 소송을 통해서 해결할 문제라는 이유였는데, 재판부 역시 임명 절차의 문제점은 동일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KBS 이사들도 새 이사진 추천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는데.
“KBS 이사진도 MBC 사례를 보고 재판부의 현명한 결정을 바라면서 법적 대응을 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KBS 입장에서 그동안 이런 소송을 하려고 마음 못 먹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MBC 결정 보면서 가능성이 없다 하더라도 일단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는 게 맞겠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국민의힘은 이번 법원 결정에 대해 삼권분립을 훼손했다고 주장했어요.
“근거 없는 해괴망측한 주장이라고 봅니다. 삼권분립 제도는 행정부‧사법부‧입법부가 국가 권력을 나눠 가지면서 서로 견제하라는 취지 아니겠어요? 행정부가 법과 절차를 위반한 부당한 결정을 했을 때 사법부가 견제하는 건 당연하고, 이게 바로 삼권분립의 취지에 부합하는 겁니다. 대통령 인사권이나 방통위의 재량이 있다고 해서 법과 절차를 어기는 것까지 용인해야 한다는 건 삼권분립이 아니라 독재라고 봐야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주장입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MBC를 사담 후세인처럼 외부에서 무너뜨려야 한다고 했는데?
“다른 분도 아니고 MBC 기자 출신인 분이 그렇게 말했다는 점에 대해서 유감을 넘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노조 활동도 열심히 하신 분이었는데 어쩌다가 저렇게 노조혐오자로 바뀐 건지 오히려 제가 부끄럽습니다. 언론노조 조합원들을 크메르루즈에 비유한 윤길용 씨나 사담 후세인에 비유하는 이진숙 위원장이 정치적 목적에 눈이 멀어 MBC와 후배들의 명예를 내팽개친 행태는 언젠가 죗값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진숙 위원장에게 MBC는 미우나 고우나 친정인데 왜 이렇게까지 할까요?
“MBC 구성원들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떨어뜨려야 MBC를 장악하려는 자신의 욕망이 합리화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MBC 구성원들이 희생해 가면서 싸웠던 역사를 정치투쟁으로 폄훼해야 권력만 좇았던 자신의 과거를 합리화시킬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고요. 피해의식도 작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 결정이 이진숙 위원장 탄핵심판에도 영향 미칠까요?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2인 체제 방통위의 위법한 결정이 탄핵 사유였잖아요? 이번 결정문에 담긴 2인 체제의 위법성 판단과 부당한 심사 과정에 대한 판단 등이 탄핵 결정에도 감안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진숙 위원장은 인용 결정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탄핵심판에 회부돼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어쨌든 방통위가 즉시 항고한다는 입장을 밝혔지 않습니까? 그것만 보면 재판부 결정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인 것 같아요.”
앞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방송 4법 중재안을 제안했어요.
“개인적으로 우원식 의장이 방송 4법 중재안을 제시한 점에 대해 환영하고요. 대통령이 두 번씩이나 거부권을 행사했지 않습니까? 근데 이번에 재판부 인용 결정문에 막무가내식으로 방송장악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내포돼 있다고 넓게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방송 4법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 MBC 장악을 막을 수 있는 근원적인 해법으로 보이거든요. 그래서 방송 4법은 22대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돼야 합니다.”
MBC 보도가 편향됐다는 비판 관련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언론도 보수언론, 진보언론으로 불리지 않습니까? 언론이 100% 객관성을 유지하기는 사실 쉽지 않고 그게 언론 본연의 모습도 아니라고 봅니다. 언론사마다 고유의 논조라는 게 있어요. MBC는 ‘권력 감시와 비판’을 최우선 책무로 두고 그동안 대한민국 언론사 가운데 성역 없이 보도해온 방송사라고 자부합니다. MBC가 정파성 논란을 빚는 것은 아마도 신문보다 방송에 들이대는 공정성 내지 중립성 잣대가 더 엄격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치적인 의도나 특정 세력을 비호하기 위한 검은 속내를 가지고 보도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MBC를 미워하는 세력들이 그런 프레임을 씌워서 말도 안 되는 비난을 하는 것 같은데 판단은 시청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와 여당은 지금의 KBS, 지금의 YTN을 공정방송이라고 보는 것이 확인됐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MBC가 여권에 지나치게 비판적이라 주장할 수 있겠지만, 국민 대다수는 그렇게 보시지 않을 겁니다. 최근 모든 여론조사에서 MBC가 신뢰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봅니다.”
한고비 넘겼지만, 정부는 MBC 경영진 교체 시도를 지속할 것 같은데 어떻게 대응할 생각이에요?
“윤석열 정권의 그동안의 행태를 보면 아마 끊임없이 MBC를 공격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방문진 이사 교체에 제동이 걸렸으니 일단 한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방문진 이사와 MBC 경영진을 교체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걸로 보입니다.
저희로서는 조금의 꼬투리라도 잡히지 않기 위해 내부를 잘 정비하고 뉴스나 프로그램 제작 시에 논란의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꼼꼼히 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사전 통제를 하자는 의미는 절대 아니고요. 이 정권이 의도치 않은 작은 실수를 침소봉대하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작은 실수라도 줄이기 위한 자율적인 스크리닝을 강화할 필요가 있겠다 싶습니다.
여기에다 국민 여론을 모으는 데 더욱 주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집행정지 결정도 시민들의 탄원서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가리지 않고 최대한 시민들에게 MBC가 처한 상황을 알리고 MBC에 대한 지지 여론을 확산해 나갈 것입니다. 이미 총선에서 방송 장악을 그만두라는 민심을 보내주셨기 때문에 MBC 장악만은 막아낼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이번 법원 결정에 자만하지 않고 또 일희일비하지 않고, 윤석열 정권의 방송 장악 폭거가 중단되는 그날까지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늘날 MBC 문제는 MBC만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MBC를 지켜내는 것이 공영방송을 지켜내는 것이고 그것이 모든 방송의 공익성을 지켜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MBC마저 무너지면 방송사들은 상업적인 경쟁에 더 매몰될 것이고, 방송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공적 역할이 더 축소될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권력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취재하고 보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죠.
‘MBC 지키기’ 싸움에 더 많은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립니다. 이번 방문진 이사 선임과 관련한 집행정지 인용 과정에 우리 MBC 구성원들뿐 아니라 시민들께서 보내주신 탄원서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 탄원서가 사실은 MBC를 어떻게든 지키고 살려야 한다는 민심이고 열망이고 또 지지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저희를 지지해 주시는 분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열심히 투쟁할 것입니다. 이 지면을 통해서 MBC를 응원해 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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