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건강 앞에 두고 ‘감정 싸움’ 벌이는 윤석열 정권

[김민하 칼럼]

2024-08-29     김민하 저술가

[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의정갈등 해소 방법을 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간 충돌이 다시 일어났다는 언론의 평가다. 한동훈 대표가 올해는 정부 계획대로 진행하더라도 내년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해선 사실상 유예하자는 제안을 내놓은 걸 대통령실이 거부하면서다.

대통령실의 반응은 예사롭지 않다. 한동훈 대표의 제안에 대해 “대안이라기보다는 의사 수 증원을 하지 말자는 얘기 같다”, “폄훼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이지 않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의료인들의 불법 이탈에 손을 들어버리면 그게 국가냐”라고 했다는 채널A의 보도도 있다. 반발 수위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 넘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문화일보 주최로 열린 문화미래리포트2024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인사 뒤 행사장을 떠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대통령실이 의심하는 바는 분명해 보인다. 한동훈 대표가 ‘자기 정치’를 위해 의정갈등을 이용하고 있다는 거다. 언론을 통해 전해진 사정을 보면 그런 측면을 의심해볼 여지가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7일 이 문제에 대해 기자들에게 설명을 했다. 25일 고위당정협의회 직후 한동훈 대표가 2026년 증원 유예안을 제안하더라는 거다. 이에 대해 한덕수 총리는 “생각해보겠다”고 했고 관련 기관에 검토를 지시한 후 “검토해봤는데 정부로서는 그건 좀 어렵다는 결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눈길이 가는 건 한동훈 대표의 제안을 대통령에게 전달했는지에 대해선 한덕수 총리가 얘기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런데 고위당정협의회 다음 날인 26일 SBS는 한동훈 대표가 2026년도 의대 정원 증원을 보류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대통령실이 이를 거부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이런 정황을 대통령실은 한동훈 대표가 정부가 수용 불가능한 절충안을 제안한 후 곧바로 이를 언론에 알려 ‘플레이’를 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 사태를 해결할 의사가 있다면 물밑에서 논의를 해가며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데, 거부당할 것을 예상한 상태로 안을 던진 후 언론에 곧바로 이를 알렸다면, 결국 ‘용산의 거부 사실이 보도되는 것’을 목적으로 행동했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거다.

한동훈 대표는 검사 시절부터 언론 활용에 익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실의 의심이 맞다면 한동훈 대표는 검사 시절의 방식 그대로 언론을 이용한 셈이다. 검사 시절 한솥밥을 먹어 본 인사가 대통령이기도 하니, 용산이 이를 더 의심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동훈은 내가 잘 안다’는 식인데, 대통령 입장에선 수사에 동원하던 부적절한 기법을 본인과의 차별화에 활용하려 한 듯하니 더욱 괘씸한 기분도 들었을지 모른다. 최근 대통령이 술과 격노를 줄였다는 얘기도 있지만 29일 신문에 실린 한동훈 대표와 눈을 맞추지 않는 대통령 사진을 보면, 격노는 아마 틀림없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대통령이 30일로 예정됐던 여당 지도부와의 만찬을 연기한 것은 그런 사정의 반영일 것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언론이 전하는 의료 현장의 상황은 붕괴 직전에 가깝다. 이미 지난주부터 대형병원의 응급실마저 마비 직전이라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언론 보도는 일부 사례를 과장한 것에 불과하고, 실제 확인을 해보면 응급의료에 큰 차질이 빚어지지는 않고 있으며, 오히려 그동안 경증 환자들이 불필요하게 응급실을 이용해 온 게 문제라는 식의 인식을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이 전하는 현장의 반응은 또 다르다. 응급실은 거의 억지로 운영을 이어가는 것에 가까운데도 정부가 현실을 잘 모르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거다.

이런 상황이라면 ‘개혁’만 부르짖으며 하던 일을 차질없이 하겠노라고 고집을 부릴 일이 아니다. 한동훈 대표의 제안이 현실적이지 않고 ‘언론 플레이’에 가까운 행보이며 ‘정치적 동기’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 할지라도, 이를 고리로 해서 출구전략으로 활용하는 게 유능한 통치다. 마침 더불어민주당도 한동훈 대표의 제안에 동조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는 내용이 아니라 태도가 중요하다. 야당이 정부 여당과 협조할 태도가 되었다는 분위기를 스스로 잡은 상황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다수 언론은 29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 간 갈등을 ‘감정 싸움’으로 규정했다. ‘감정 싸움’이라는 건 합리적으로는 이런 식의 갈등 전개를 설명할 길이 없다는 거다. 이 상황이 ‘감정 싸움’으로만 귀결되는 건 집권세력이 현안을 해결할 의지가 없거나 능력이 부족해서다. 그 책임은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다 안고 갈 수밖에 없게 돼있다. 지금은 고집을 내세울 때가 아니라 타협을 할 때이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중요한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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