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방문진 이사 선임 발목잡은 '전임자' 갈라치기

방통위가 '전임자'로 걸러 낸 방문진 이사들 가처분 신청 방문진법 '임기만료 이사 후임자 임명 때까지 직무 수행' 규정 법원 "신청인 법률상 이익, 방문진법에 의해 보호받아야" "2인 체제 의결, 방통위설치법 입법목적 저해" 방통위 "즉시 항고…법·원칙에 따라 의결 소명할 것"

2024-08-26     송창한 기자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서울행정법원이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하 방문진) 이사 선임 효력을 정지한 핵심 사유는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진숙, 이하 방통위)가 임의로 방문진 야권 추천 이사들을 '전임자' '후임자'로 규정한 갈라치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된다.(관련 기사 ▶ 이진숙이 KBS·방문진 이사 여권 몫만 추천·임명?)

재판부는 '임기가 끝난 임원은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그 직무를 수행한다'는 방문진법상 이사들의 권리가 방통위의 결정에 의해 침해될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2인 체제' 방통위의 주요 안건 의결이 방통위설치법의 입법목적을 저해한다는 판단도 물론이다.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함께 대화하며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강재원 부장판사)는 방문진 권태선 이사장과 김기중·박선아 이사가 방통위를 상대로 낸 '방문진 이사 선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이 사건에서 신청인들에게 종전 직무를 계속 수행하게 하는 것이 부적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사유가 소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빙문진법 제6조 제2항은 '임기가 끝난 임원은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그 직무를 수행한다'고 정하고 있다"며 "신청인들이 이사로서 임기가 만료되었다고 하더라도 후임 이사 임명의 효력이 무효이거나 취소되어 효력이 없다면, 신청인들로서는 이 사건 임명처분을 다툴 법률상 이익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방통위는 방문진 이사를 선임할 권리는 방문진 이사회가 아니라 방통위에게 있어 신청인들의 권한 범위 밖이므로 방문진법 제6조 제2항에 따른 신청인들의 직무수행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한다"며 "그런데 임기 만료된 이사에게 후임 이사가 선임될 때까지 종전의 직무를 계속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의 문제와 그 권한에 후임 이사를 선임할 권한까지 포함되는지의 문제는 구별되므로, 신청인들에게 방문진 이사를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만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부분에 관한 방통위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신청인들의 법률상 이익은 방문진법 제6조 제2항에 의해 보호되는 개별적·직접적·구체적 이익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나아가 신청인들에게 이 사건 임명처분의 무효 등 확인 내지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인정되는 한, 이 사건 효력정지 신청을 권리남용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방송송통신위원회 7월 31일자 보도자료 중 '붙임 자료' 갈무리. 야당 추천 이사들 중 일부가 '전임자'로 표기돼 있다

방통위 이진숙 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은 임명 당일인 지난달 31일 KBS 이사 7인을 추천하고, 방문진 이사 6인을 임명했다. 방통위는 나머지 KBS 이사 4인, 방문진 이사 3인을 추천·임명하지 않은 방식으로 기존 야권 추천 이사들이 직무를 수행하게 했다. 방통위는 공영방송 이사를 '전임자' '후임자'로 특정해 임기만료 이후에도 잔류할 이사를 임의로 정해 KBS·방문진 이사 구성을 사실상 완료했다. 

방통위 보도자료의 '붙임' 자료를 보면 '전임자', '후임자' 명단이 있다. 이를 통해 현 야권 추천 이사 중 임기가 종료되는 이사와 임기가 계속될 이사를 구분할 수 있다. 현 방문진 이사 중 야권 추천 이사는 권태선 이사장과 강중묵·김기중·김석환·박선아·윤능호 이사다. 방통위는 이 중 '전임자'로 표기한 권태선·김기중·박선아 이사의 임기를 13일 종료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재판부는 방통위 2인 체제의 위법성도 거론했다. 재판부는 "방통위는 5인의 상임위원으로 구성하도록 법률에서 정하고 있다. 방통위는 정치적 다양성을 그 위원 구성에 반영하도록 함으로써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 국민의 권익보호와 공공복리 증진이라는 입법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고 볼 수 있다"며 "방통위설치법은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기본적·원칙적으로 정치적 다양성을 반영한 5인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된 회의를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방통위설치법상 의결정족수는 '재적위원 과반 찬성'이기 때문에 2인 체제 의결도 문제가 없다는 방통위의 주장에 대해 "단지 2인의 위원으로 중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것은 방통위설치법이 추구하는 입법목적을 저해하는 면이 있다"고 했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의 보궐이사 임명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YTN 사영화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등의 사건에서 '2인 체제' 방통위의 위법성을 지적한 바 있다.   

지난 7월 31일 방송통신위원회 이진숙 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이 비공개 전체회의를 열고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논의하는 모습 (사진=방송통신위원회)

또한 재판부는 "7월 31일 있었던 임명처분에 관련된 절차 준수 여부, 심의의 적법 내지 위법 여부 등에 관해 방통위가 제출한 자료 및 심문결과만으로는 합의제 기관의 의사형성에 관한 전제조건들이 실질적으로 충족되었다거나 그 충족에 관한 절차적 하자가 없다는 점이 충분히 소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신청인들로서는 본안소송을 통해 이에 관하여도 다툴 여지가 있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약 2시간가량 비공개로 진행된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김태규 부위원장 호선 ▲이진숙 방통위원장 기피신청 각하 ▲83명의 공영방송 이사 후보자 심사 ▲이사 선임 등의 안건이 의결됐다. KBS·방문진 이사 후보자 83명에 대한 심사가 약 1시간 만에 이뤄졌다. 후보자 1인당 심사시간이 1분이 채 되지 않는다. 방통위는 공영방송 이사 선임 당일에서야 면접 절차를 폐기하고, 이사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당적보유 여부조차 검증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26일 방통위는 보도자료를 내어 "법원의 방문진 이사 임명처분 효력 집행정지 사건 결정에 대해 즉시항고하기로 했다"며 "방통위는 방문진 이사 임명처분 무효 등 소송에 적극 대응해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의결했다는 점을 소명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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