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까지 쪼개버린 윤석열 정권

[김민하 칼럼]

2024-08-15     김민하 저술가

[미디어스=김민하 칼럼] 결국 광복절은 쪼개졌다. 방아쇠가 된 건 독립기념관장 문제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놓고 ‘뉴라이트의 음모’를 의심하고 있다. 용산은 처음에는 그런 의도가 아니라며 이종찬 회장을 설득 회유하려 했는데, 먹히지 않자 흠집을 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종찬 회장이 자기가 미는 인사가 독립기념관장이 되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고 몽니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김형석 관장은 뉴라이트인가? 언론 인터뷰와 기자회견을 통해 내놓은 주장을 보면 애매한 대목이 분명히 있다. 뉴라이트의 핵심 주장 두 가지를 꼽으라면 ‘건국절’과 ‘식민지근대화론’이다. 김형석 관장은 최소한 최근의 주장에선 이 두 가지 의제에 거리를 두고 있다. 의심의 단초가 된 ‘일제시대 국적’ 문제는 복잡하다. 일본이 당시 조선인을 대외적으로 일본인으로 규정한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이들은 조선인에 대해 자국의 국적법을 적용하지 않고 차별적으로 대우했다. 국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근대 법체계를 적용할 경우 조선인들이 중국 등 타국으로 국적을 옮겨 항일운동에 나설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런데 이런 논의가 핵심은 아닐 것이다. 문제제기를 하는 측에서 보면, 독립기념관장이 되겠다는 사람에게 ‘일제시대 우리나라 사람 국적은 어디인가’란 질문을 통해 검증하고 싶은 바는 따로 있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식민지배의 합법성과 관련한 대목이다. 역사문제와 관련해 한일 간 가장 첨예하게 입장이 갈리는 대목이다. 식민지배는 합법이고 전시에 동원 역시 국제적으로 인정되므로 강제동원은 성립하지 않다는 게 일본의 주장이다. 식민지배는 불법이므로 동원 역시 불법이고 따라서 징용은 강제동원이라는 게 한국의 입장이다. 김형석 관장은 논란이 된 이래 몇 차례 언론 인터뷰에 응했는데, 이 대목과 관련해선 입장이 분명치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김형석 관장의 최근 해명에 대해 이종찬 광복회장은 “(김형석 관장은) 역사학자가 아니다. 아주 고도의 정치인이다. 그 사람은 여기서 이 말 하고 저기서 이 말 하기 때문에 가늠할 수 없다”고 했다. 윤석열 시대의 특징은 우파 역사관을 강변하는 사람들이 “나는 뉴라이트가 아니다”라고 한다는 거다. 스스로 뉴라이트가 아니라는 사람을 뉴라이트로 증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할 때가 있다. 경향신문의 13일 보도를 보면 “윤석열 정부의 역사·역사교육 관련 기관 임원 중 최소 25개 자리를 뉴라이트나 극우 성향으로 평가받는 인사들이 차지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돼 있다. ‘건국절’ 주장과 맞닿는 이승만 전 대통령 미화에 열중하거나 역사적 사실관계에 있어 일본에 편향된 인식을 보인 인사들이 요직에 가 문제가 된 건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숲이 이미 병충해로 물들었는데 나무 하나를 놓고 해충이 있네 없네 하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일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건국절 논란 등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기존 스탠스를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 자체가 괴이하게 느껴진다. 대통령실은 최근 사태에 관해 이종찬 광복회장 등을 설득하면서 대통령은 ‘건국은 과정’이란 취지의 인식을 갖고 있고 따라서 ‘건국절 제정’ 등은 추진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같은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본래 ‘건국 논쟁’은 뉴라이트 등장 이전엔 성립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건국’과 ‘정부수립’을 일상 용어에서 엄밀히 구분할 필요도 없었다. '국민의 정부' 때까지만 해도 ‘1919년 건국’과 ‘1948년 건국’은 ‘정부수립’과 함께 맥락에 따라 혼용되었다. 이러던 것을 참여정부 시기 뉴라이트라는 사람들이 등장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며 ‘1948년 건국론’을 주장하고 이승만 찬양과 김구 폄하에 나서면서, 또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이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지금과 같은 분열상이 연출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제79주년 광복절인 15일 오전 서울 효창공원 내에 있는 임정요인·삼의사·백범 김구 선생 묘역을 참배하기에 앞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 임명이 '친일 뉴라이트 인사'라며 정부 주최 경축식 불참을 선언했다.(연합뉴스)

이런 맥락을 보면 보수 정치 지도자의 ‘건국은 과정’이란 취지 언급은 뉴라이트 등장 이전으로 좌표를 되돌리자는 얘기가 되어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한 일부 독립운동가 후손 엘리트들은 그런 얘기로 받아들였을 거다. 뉴라이트로 의심받는 인사들이 이 정권에서 하나같이 “나는 뉴라이트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권력과 최소한의 코드를 맞추려는 거다. 그러나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뉴라이트로 의심받는 이들이 요직을 다 차지하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뉴라이트의 기획은 역사수정주의적 시도를 통해 현실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의 보수정치 세력을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면서 북한과 갈등 유발적 노선을, 일본에 대해선 친화적 노선을 취하는 것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는 게 목적이다. 권력의 입장에서 보면 뉴라이트가 정책에 대한 논리적 연결구조를 마련해주는 걸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그러한 연결구조 없이, 자의적인 정책 집행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는 것 정도로 북한에 대해선 손을 놔버리고 일본에 대해선 모든 것을 양보해버리는 황당한 해법으로 일관한다. 이러한 과감함에 대해선 아마 뉴라이트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이런 식의 과감한(?) 정책 추진은 이종찬 광복회장이 반발하듯 기성의 보수정치도 감당하기 쉽지 않다. 오직 목표의식이 뚜렷한 뉴라이트 정도가 돼야 한다. 이게 ‘뉴라이트가 아닌 윤석열 정권’에서 뉴라이트가 잘나가는 핵심 이유가 아닐까 의심된다.

결국 쪼개진 광복절은 윤석열 정권의 일방적으로 폭주하는 대외정책과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벌어지는 자의적 인사가 만들어 낸 풍경인 것이다. 반성을 해도 모자랄 판에 용산과 여당은 늘 그랬듯 남 탓을 하기에 바쁘다. 남 탓을 해봤자 제 얼굴에 침 뱉기다. 역대 이런 정권이 어디 있었는가? 어떤 정권이 광복절 기념행사를 이런 모양새로 치렀는가? 남 탓만 할 거면 대통령을 왜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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