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밭길 속 한동훈 스타일

[김민하 칼럼]

2024-08-08     김민하 저술가

[미디어스=김민하 칼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당선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의 1차전은 한동훈 대표의 판정승이라는 평가가 대체로 많다. 정책위의장이던 정점식 의원을 교체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누가 이기고 졌는가 만큼 전투의 성격을 규정하는 게 중요하다. 이게 앞으로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암시하기 때문이다.

한동훈 대표의 입장에서 보면 정점식 교체 국면은 ‘수성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대통령 임기가 절반도 넘게 남은 상황에서 여당 지도부가 5대 4로 구성되느냐, 4대 5로 구성되느냐는 일반적 상황에선 크게 중요하지 않다. 통치라는 측면에서 핵심 이슈에 대한 여당의 태도는 당정의 협의로 결정되는 것이지, 친윤 대 친한의 표 대결로 결정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정책위의장 교체 이후 한동훈 대표 측 인사들이 언론을 통해 ‘유임도 고려했으나 친윤계의 반발과 언론플레이 때문에 교체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한 것에는 절반의 진실이 실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동훈 대표 입장에서 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전당대회가 끝나기 직전까지 자신을 정치적으로 죽이려고 한 존재다. 그런데 그러한 존재가 정책위의장 유임을 사실상 강요한다. 이러면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이준석 의원을 당에서 축출한 장본인이다. 나라를 직접적으로 다스리는 일이 여당 지도부 내 표 대결의 대상이 되지는 않지만, 정파 내부의 ‘내전’에 준하는 일이 도마에 오른다면 그건 사정이 달라진다. 전당대회 결과를 통해 ‘최고위원 도미노 사퇴’로 지도부를 붕괴시키는 수는 일단 막았다고 봐도, 윤리위 등 당 내부 기구까지 끼어드는 내전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한동훈 대표로서는 정책위의장을 반드시 교체해야 했던 거다.

교체 카드가 ‘TK 4선’ 김상훈 의원인 것도 시사하는 바가 상당하다. 정점식 의원 등이 주장했던 대로 정책위의장 임명은 원내대표의 동의와 의원총회의 추인이 필요하다. 친윤계는 정책위의장이 교체될 경우 의총에서 추인을 거부하겠다는 강경한 태도였다. 그런데 국민의힘과 같은 구조의 정당에서 정파색이 분명치 않은 ‘TK 4선’과 같은 인물을 명시적으로 비토하는 것은 쉽지 않다. TK에 매달리는 용산의 시각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실제 김상훈 의원은 만장일치로 의총의 추인 절차를 통과했는데, 이후 친윤도 친한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에서 발언과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이후 한동훈 대표가 단행한 인사를 보면 전당대회나 선거 당시 인재영입 등을 통해 ‘친한’으로 알려진 인사 위주다. 한동훈 대표가 당 장악에 고삐를 쥐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세를 불려가는 모습인지는 의문이다. 현역인 정치인들로서는 지금 나설 이유가 없을 거다. 첫째, 대통령이 한동훈 대표 체제를 쉽사리 인정하고 싶지 않아한다는 사실이 정책위의장 교체 논란을 통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어찌됐든 지금은 윤석열 정권인데, 굳이 당직을 새로 맡아 ‘친한’ 커밍아웃을 할 필요가 있나? 둘째, 한동훈 대표가 국회의원 공천권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다. 특별히 먼저 눈도장을 찍어 놔야 할 필요가 없다. 대권 얘기는 아직 이르다. 줄을 서야 하는 때는 따로 올 것이다.

이런 정황을 보면 앞으로도 한동훈 대표는 여당에 대한 ‘그립’을 놓고 싶어하지 않는 대통령 때문에 상당히 애를 먹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더군다나 한동훈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제3자 추천 특검’이라는 암초가 언제든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놨다. 그런데 내전에 가까운 모습을 지속적으로 노출하는 것은 한동훈 대표 입장에서 껄끄러운 일이다. 정파 밖에서는 한동훈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을 들이 받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만, 정파 내부에서는 차기 대권주자의 그러한 모습이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 ‘제2의 유승민’이 될 수는 없다는 거다. 따라서 지금은 용산과의 코드를 맞추면서 대통령과 지지 기반을 안심시키면서 ‘원보이스’를 내는 방향으로 상황을 조정할 때다.

최근의 ‘정책 드라이브’는 이런 배경에서 나오는 카드라고 볼 수 있다. 용산이 반대하지 않을 만한 정책을 던져 야당의 관심을 용산으로부터 돌리고, 동시에 정책적 이슈 자체에 대해선 용산과 한목소리를 내는 방향으로 흐름을 유도하는 것이다. 금투세 폐지에 초당적으로 합의하자는 제안을 하고 여기에 용산이 동조한다거나, 당장 합의 가능한 이른바 ‘민생 법안’에 대해 빠른 법안 처리에 합의하려는 등의 움직임은 이런 맥락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만찬에서 한동훈 대표(왼쪽), 추경호 원내대표(오른쪽) 등과 함께 손을 맞잡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제는 여기가 한동훈 체제의 실력이 드러날 수 있는 지점이라는 거다. 가령 미국발 위기 국면에 마치 ‘금투세 원포인트’ 같은 느낌을 주는 발언을 꺼낸 건 안이한 대응이다. 전반적 경제 상황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모처럼의 위기를 틈타 주식투자자들의 우려에 올라타 여론을 반적시켜보고자 하는 얄팍한 의도를 드러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면 이런 단순한 방식의 반론이 가능하다. ‘퍼펙트스톰’ 우려로 금투세 폐지가 필요한 거라면, 시장 상황이 좋아질 경우 금투세를 다시 도입하는 건가?

이런 ‘얄팍한’ 스타일은 이전부터도 그랬지만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이제 완전히 ‘한동훈 스타일’로 굳어져 있는 상태다. 만일 한동훈 대표가 최근 상황에 대한 우려 메시지와 함께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시장 전반에 대한 대안과 자영업자 및 취약계층에 대한 대책을 디테일하게 언급했더라면 의외로 실력 있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정책으로 가자니 검사물이 다 안 빠진 한계가 너무 명확하고, 용산을 겨냥해 선 긋기에 나서자니 시점을 포함한 조건이 쉽지 않다.

여당 대표가 원래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때에는 이런저런 수가 아니라 순리를 따르는 게 맞을 때도 있다. 잘 아는 분야부터 말씀을 해보시라.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를 통한 수사권 남용 논란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는…”으로 시작하는 말 말고 대안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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