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방송장악 처음 봤다

[김민하 칼럼]

2024-08-02     김민하 저술가

[미디어스=김민하 칼럼]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대통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을 임명 강행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취임 첫날 새로 임명된 김태규 상임위원과 단 둘이 전체회의를 열고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 안건을 처리해버렸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평했다고 한다.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소추안을 발의, 본회의에 보고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전임들과는 달리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MBC 사장을 교체할 토대를 마련했으니 이제 느긋한 입장이 됐다는 취지일 거다.

언론은 더불어민주당의 일상적 탄핵 정치에 대해 비판한다. 일리가 있는 내용도 있다. 검사 탄핵 같은 건 의미가 불명확하다. ‘이재명 전 대표에 대한 수사와 관계 없이 각자의 탄핵 사유가 중하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해야 그나마 설득력이 생기는데, 일부 의원들이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사들을 혼내주자’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면 ‘방탄용 탄핵’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고, 그러면 유권자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에 대한 탄핵도 법리적 절차적으로 보면 약점이 없지 않다. 방통위원장으로서 결격사유가 있다는 것은 직무 수행에 있어 중대한 법 위반이 있는가를 따져야 하는 탄핵 사유와는 별개다. ‘2인 체제 의결’은 방통위법 취지를 몰각하는 행태임에 분명하지만 법 위반 사안이 확실한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릴 수 있다. 하루 동안의 업무 수행으로 탄핵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개혁신당 등의 입장도 있다. 무엇보다 탄핵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해임건의 등 절차가 선행돼야 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이 위원장과 대화하며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러나 적어도 정치적으로 보면 이진숙 방통위원장에 대한 탄핵 추진은 일부 언론이 기대(?)하는 것처럼 역풍의 대상이 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 이전에 이 정권이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 업무가 정지된다는 이유를 들어 자진사퇴를 시키는 ‘꼼수’로 일관해 온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유권자들은 물을 것이다. 탄핵이 무리라는 항변은 그렇다 치고, 이번에는 왜 자진사퇴를 하지 않는가? 앞서 대통령실의 언급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고, 그 ‘소기의 목적’이란 방송을 장악하는 게 아닌가?

상식이 있는 정권이라면 이런 시선을 부담스러워 할 것이다. 방송 장악 의도는 없고 다만 절차대로 일을 처리할 뿐이라는 주장을 근거가 있는 걸로 만들기 위해 최대한 모양새를 갖출 거다. 이를 위해 처음부터 탄핵에 사퇴로 대응하는 일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거란 얘기다. 가정을 해보자. 이동관 당시 방통위원장이, 이 정권이 주장하는대로 정말 잘못한 게 없고 탄핵도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일이었다면, 탄핵심판에 반년이 걸린다 쳐도 이 시점에 KBS MBC 등 공영방송은 장악이 완료됐을 가능성이 크고 정권과 보수언론이 그토록 기대하는 ‘탄핵 역풍’도 불었을 것이다. 그러나 총선을 앞두고 ‘단 하루도 기다릴 수 없다’는 조급증이 이 정권의 의도를 투명하게 드러내면서, 꼼수와 진흙탕 싸움의 기록만 남게 된 거다.

방송 장악의 의도가 없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됐으니 이 정권은 오직 '전 정권' 얘기만 한다. 전 정권이 언론노조와 손을 잡고 공영방송을 노영방송으로 만들었으니 정상화를 시켜야 한다는 거다. 그게 다 사실인지를 따지는 것은 피곤한 얘기지만, 과거 얘기를 한다면 일단 이명박 정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왜냐면 전 정권이 한 일도 보수정권에서 일어난 방송 장악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했기 때문이다. 방송 장악은 ‘정권마다 반복되는 일’이라고들 쉽게 얘기하지만, 국정원까지 동원해 외부에서 권력이 직접 작전지휘를 하는 방식으로 공영방송을 ‘접수’한 건 이명박 정권이다. 이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자신들이 좌파’로 낙인 찍은 인사들을 퇴출시켰고, 종편을 만들었으며, ‘건전 인터넷 매체’를 육성했다. 하나같이 ‘자유민주주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행위다.

시작이 이랬으니 반대쪽에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요구를 안 할 수가 없다. 그 핑계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예도 있을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보수 정권이 결자해지해야 한다. 그래야 이후 정권이 바뀌어 반대쪽에서 또 방송 장악을 시도하려고 해도 ‘적어도 보수는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는데 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여론의 부담이라는 안전장치가 생긴다. 그러나 이 나라의 보수논자들은 이런 생각엔 관심없고 오로지 ‘민주당이 했으니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얘기로만 일관한다.

정권과 여당은 방통위 ‘2인 체제’를 유지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남탓뿐이다. 5인체제 붕괴의 책임은 더불어민주당이 방통위 상임위원을 추천하지 않는 데에 있다고 주장하는 게 그렇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도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최민희 의원을 상임위원으로 추천했을때 불명확한 이유로 임명을 거부한 건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고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7일 당시 최민희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내정자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정자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최민희 의원이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적합한 인사인가에 대해선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어찌됐든 국회가 추천한 인사를 대통령이 불명확한 이유로 임명을 거부할 수 있는가는 또다른 문제다. 국회가 부적격자를 추천했고 대통령이 이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면, 그러한 인사를 추천한 국회 다수당이 정치적 책임을 지면 되는 문제다. 그런대 이 정권은 별 이유도 없이 임명을 장기간 거부했다.

윤석열 정권이 당시 상임위원 임명을 거부한 명분은 ‘한국정보산업연합회에 상근부회장으로 재직한 경력이 방통위 설치법에서 규정한 결격사유에 해당하느냐에 대한 법제처 해석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굳이 법제처에 해석을 의뢰했다는 점을 보면 당시 대통령은 ‘결격사유에 해당한다’는데 무게를 실었던 게 분명해 보인다. 법제처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검찰총장 시절 윤석열 대통령의 변호인을 맡았던 이완규 변호사다. 그런데 법제처는 7개월이 지나도록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지난해 8월에는 ‘부적격’ 판단을 내부적으로 내렸다는 동아일보 보도에 대해 “부적격 판단을 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자료를 내기까지 했다. 결격사유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법제처가 봐도 무리였거나 정권의 주요 관심사가 ‘결격사유’ 자체에 있는 게 아닌, 여야 구도를 이루는 머릿수에 있는 거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이면 야당이 상임위원을 추천하기 어렵다.

‘5인 체제를 복구하자’는 주장에 그나마 진정성이 있으려면 대통령이 최민희 의원 상임위원 임명 거부 사태에 대한 유감 표명을 하면서 국회 추천을 수용하겠다는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 또 그동안 사실상 의도적으로 ‘2인 체제’를 유지해온 것에 대한 설명도 있어야 한다. 물론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의 스타일에 비추어 보면 이런 일은 가능하지 않다.

여당이 총선에서 대패한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러한, 자신에게 유리한 바를 관철하기 위해선 꼼수를 마다하고 내 편은 알뜰살뜰 챙기면서 남의 잘못은 과장하고 직언을 듣지 않는 일방통행식 고집불통 스타일을 바꾸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당원 및 지지자들이 지난 전당대회 구도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있던 한동훈 대표를 굳이 탄생시킨 것도 대통령을 좀 바꿔보라는 뜻일 거다.

그러나 특히 비상식 비합리적인 방송 장악 문제에 있어선 누구도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전 정권과 민주당이 잘못했다’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종종 쓴소리를 한다는 보수언론도 이건 마찬가지다. 알면서 그러는 건지 정말로 믿어서 그러는 건지 이제 잘 모르겠다. 바뀌지 않을 거면 반성은 무엇하러 했는가? 혀만 끌끌 차게 된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