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이사, KBS 경영진에 "조직개편 자신없냐" 추궁

이사회, '직제규정 개정안' 의결 안건 상정 경영진, '불안 초래' '와전' 이유로 비공개 요청 이사장 "이사들, 공개 자리서 소신 발언 못해" 맞장구 회의 공개 여부 놓고 입씨름 끝 경영진 보고 공개키로 그러나 보고 10분 만에 비공개 전환 사내 반발 아랑곳없는 박민 "더 전향적 개편 필요"

2024-07-24     고성욱 기자

[미디어스=고성욱 기자] KBS 경영진이 조직 개편과 관련해 ‘조직 내 혼란’ ‘외부 유출 시 와전’ 등을 이유로 비공개 논의를 이사회에 요구했다. 서기석 이사장은 공개된 석상에서 논의할 경우 소신 발언을 할 수 없다며 찬성 입장을 밝혔다. 

다수의 이사들이 회의 공개를 요구하자 경영진은 조직개편안의 골자에 대해 공개적으로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박민 사장의 입장과 개편 취지 외에는 모든 논의가 비공개로 진행됐다. 

KBS 이사회 (사진=KBS)

24일 KBS 이사회는 의결 안건으로 직제규정 개정안을 상정했다. 언제든 표결에 부쳐 강행될 수 있다는 의미다. 박민 사장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부에 공개되면 조직 내 불안이 초래될 수 있고, 이전에도 비공개한 전례가 있다”며 비공개를 요구했다. 

이춘호 전략기획실장도 “단순히 조직 개편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닌 회사 재정 상황, 인력 구조 등의 내용이 있다”면서 “과거 논의할 때 보면 그 내용이 (노동)조합이나, 협회, 외부 언론에 보도돼 와전된 경우가 있었다. 오해와 불신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기 때문에 비공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야권 성향 이사들은 이미 경영진이 조직 개편에 대해 노조 상대로 설명회를 진행된 만큼 공개된 자리에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권 이사 일부도 경영진의 비공개 전환 요구는 조직개편안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것이라고 질타하고 공개를 요구했다. 

조숙현 이사는 “재정이나 수입 전망 등의 수치는 이미 공개됐었다”며 “비공개로 논의해야 할 부분이 전혀 없어 보인다. 굉장히 구체적인 세부 내용을 제외하고는 공개적으로 보고를 받고, 질의응답을 해야 한다. 그래야 이사회가 임기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하는 것이고, ‘밀실 논의’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류일형 이사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여론 수렴도 하고, 직무 분석도 제대로 해야 한다”며 “구성원 다수가 ‘밀실에서 졸속으로 조직 개편을 추진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미 노조 설명회도 진행했고, 대략적인 내용이 공개된 상황에서 굳이 비공개하면 오히려 우습게 된다”고 말했다.

여권 성향 이석래 이사도 “조직 개편에 자신이 없냐”며 “왜 비공개로 해야 하냐”고 따져 물었다.

KBS 구성원들이 17일 사옥 앞에서 '조직개편 철회 촉구'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언론노조 KBS본부)

반면 서기석 이사장을 비롯한 다수의 여권 성향 이사들은 과거에도 직제규정 개정 논의가 비공개로 진행됐다며 비공개 전환을 요구했다. 서 이사장은 2016년과 2014년 직제개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비공개로 진행됐다면서 “직제 개정안은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논의를 공개적으로 하면 이사들이 발언하는 데 조심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서 이사장은 "어떤 이사는 ‘내가 이런 발언을 하면 어떤 구성원은 좋아하겠지’라는 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직제 개정안은 구성원 사이에서 찬반이 상당히 엇갈리기 때문에 이사들이 소신껏 발언하기 위해서는 비공개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KBS 내부에서 찬반이 엇갈리는 것은 사실로 보기 어렵다. 3개 노조, 2개 직능단체가 '조직개편' 철회 피케팅에 나서는 등 반발이 극심한 상황이다.(관련 기사 ▶KBS '조직개편' 날치기 일단 불발…구성원 "반대" 한목소리)

이동욱 이사는 과거 자신이 이사회에서 KBS 구성원을 ‘동물원 코끼리’에 비유한 발언이 보도된 것을 거론하며 “이사의 언론의 자유는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나. 지금 생명을 다투는 KBS의 상황을 논의하는 것인데, 자칫 공개로 했을 때 여러 오해와 구설이 나올 수 있어 비공개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사회는 40분가량 회의 공개 여부를 놓고 입씨름을 벌이다 조직개편안에 대한 경영진의 설명은 공개로 하고, 세부 내용에 대한 보고와 질의응답은 비공개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작 직제규정 개정에 대한 경영진의 공개 설명은 박 사장의 모두 발언을 포함해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박 사장은 “지난 상반기 동안 심층적인 검토와 본부, 센터별 의견 수렴을 토대로 조직개편안을 마련했고, 노조 설명회를 거쳤다”면서 “이 정도 수준의 조직 개편은 이미 10년 전에 시작됐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더 전향적인 조직 개편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사장이 주장한 '본부·센터별 의견 수렴'은 각 조직의 구성원에 대한 의견 수렴이 아닌 본부장·센터장 등 간부와의 논의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사장은 ▲미래 콘텐츠 제작 및 마케팅 친화적 조직 구축 ▲시사제작 기능 통합 통한 공정성·신뢰성 제고 ▲디지털 전담 부서 신설 통한 수익성 강화 ▲유사·중복 부서 통폐합 통한 조직 효율성 제고 등의 목표로 조직개편안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이춘호 전략기획실장은 부사장의 콘텐츠 전략본부장 겸임이 직제개편안의 골자라고 설명했다. 부사장 유고 시 전략기획실장이 직무대행을 맡는다. 미래비전신설단이 신설됐으며 기존 국장급인 기술연구소나 공영미디어연구소가 부장급으로 낮아졌다. 이 실장이 “주요 내용과 조직 개편을 왜 해야 하는지 등 PPT로 설명하겠다”고 말한 직후 이사회는 비공개로 전환됐다.

비공개 회의에서 이사들은 경영진에게 ▲조직 개편의 방향성 불분명 ▲사내 의견수렴 미비 등을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 달 23일로 예정된 조직개편 시행일은 미뤄질 것으로 판단된다. 이사회는 다음 주 임시회의를 소집하고 관련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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