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패싱' 김건희 소환조사, 왜 지금일까?

[김민하 칼럼]

2024-07-22     김민하 저술가

[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서울중앙지검이 검찰총장을 ‘패싱’하고 김건희 여사를 제3의 장소에서 대면조사했다고 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22일 출근길에 기자들에게 “대통령 부인 조사 과정에서 ‘우리 법 앞에 예외도 성역도 없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면서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건 절차적 정당성이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거다. 권력의 절차적 정당성의 훼손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가 이 사태의 핵심이다.

서울중앙지검의 설명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에 대한 조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에 대한 것이었으나 명품백 수수 사건을 현장에서 더했다고 한다. 그런데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은 윤석열 총장 이래로 검찰총장이 수사 지휘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따라서 조사 방식이나 장소 등을 검찰총장에게 통보해서는 안 됐다는 게 서울중앙지검의 설명이다.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선 여전히 검찰총장에게 수사 지휘권이 있지만, 이 조사는 말 그대로 현장에서 ‘덤’으로 이뤄진 것이므로 조사가 확실해 진 후에야(실제로는 거의 끝난 즈음) 검찰총장에게 통보했다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22일 오전 취재진에게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김건희 여사를 제3의 장소에서 조사한 것에 대해 원칙을 어긴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논리만 보면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그간의 맥락을 짚어보면 서울중앙지검의 방식은 꼼수에 불과하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애초 김건희 여사는 명품백 수수 의혹은 처벌 대상이 아니어서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에 대해선 별다른 설명없이 조사에 불응해왔다. 이원석 검찰은 이러한 입장을 이용해 그간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조사를 위해 소환하고 이 기회를 이용해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 하자'는 취지의 속내를 언론을 통해 내비쳐왔다.

이원석 검찰의 이러한 절충(?)은 앞서 서울중앙지검 인사와 수사지휘권 문제와도 엮여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검찰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장 자리에 김건희 여사 관련 수사에 적극적인 입장인 걸로 알려진 송경호 검사를 멀리 보내고 ‘윤가근 한가원(윤석열과 가깝지만 한동훈과는 멀다)’이란 평가를 받던 이창수 검사를 앉혔다. 서울중앙지검 1~4차장이 한꺼번에 교체되는 이례적 인사도 있었다. 이원석 총장과 호흡을 맞춰온 대검 참모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 인사를 ‘김건희 여사는 건드리지 마라’는 싸인으로 읽었다.

앞서 언급했듯 이원석 총장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은 손댈 수 없지만,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선 지휘권을 갖고 있다. 이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 거다. 수사팀을 보강한 것은 검찰총장이 김건희 여사 사안을 이렇게라도 직접 챙기겠다는 제스쳐다. 이를 토대로 이원석 총장이 수사 지휘를 할 수 있는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조사를 핑계로 김건희 여사를 불러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조사를 같이 하자는 아이디어가 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차피 명품백 수수 의혹은 청탁금지법상 배우자 처벌 조항이 없어 조사가 이뤄져도 법적으로 손해볼 게 없지 않느냐는 ‘회유 논리’도 김건희 여사 측에 제시됐을 걸로 추정된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의 이번 방식은 이원석 총장이 상정한 것과는 순서가 거꾸로다. ‘명품백 수수 의혹’으로 검찰총장이 사건에 관여할 수 있게 한 게 아니라,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으로 검찰총장이 관여할 수 없게 하고 김건희 여사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게 했다. 양측의 이견은 조사 방식에서 불거졌다. 이원석 총장은 원칙대로 검찰청사로의 출석을 고수했으나 김건희 여사 측이 서면조사 등 다른 방식을 고집해 평행선을 그려온 상황에서, 서울중앙지검 입장에선 조사 방식에 있어서의 유연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조사 방식에서 원칙이 허물어졌더라도 조사 내용이 충실하다면 논란이 진화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벌써 다수 언론이 충실한 조사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투의 지적을 내놓고 있다. 그간 서면질의에 무응답으로 일관해오던 김건희 여사는 이번 조사를 앞두고 70쪽 분량의 서면 답변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한국일보는 22일 사설에서 “사전 서면조사로 검찰의 '카드'를 보여줘, 김 여사 측이 조사에 대비할 기회를 주었고, 방문 조사라는 배려까지 했다”고 평했다. 이날 한겨레는 “식사 시간 등을 제외하면 두 사건 조사에 걸린 시간은 10시간 20분가량이다. 진술조서 확인에 소요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조사 분량이 많을 수밖에 없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조사에 5시간밖에 걸리지 않아 해명 위주의 조사가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그렇게 비칠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검찰이 김건희 씨를 정부 보안청사에서 비공개로 조사한 사실이 알려진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로비(사진=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의 조사 방식과 시기에 대한 결정은 그 대상이 영부인이라는 점에서 결국 용산이 일정 정도 관여했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왜 이 시점인가' 하는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대다수 언론은 야당이 추진하는 탄핵청문회 등의 부담을 언급하고 있지만, 여당 전당대회를 더 큰 변수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동아일보는 이날 “만약 여당이 ‘한동훈 체제’로 바뀐 뒤 김 여사의 검찰 대면 조사가 이뤄질 경우 용산에 부담이 될 수 있어 조사를 서둘렀다는 분석도 있다”고 썼다. 이런 분석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탄생할 경우 검찰이 용산이 아닌 여당에 줄을 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에 나설 것으로 용산이 우려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재판과 관련한 시점도 변수다. 그간 검찰은 김건희 여사 관련 조사를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이 피고인인 항소심 재판 이후로 미뤄왔다. 이 재판에서 검찰은 ‘전주’ 손 모 씨에 방조 혐의를 추가해 공소장을 변경한 상태다. 그동안 김건희 여사 측은 ‘단순 전주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란 논리를 펴왔다. 그러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항소심에서 손 모 씨에 방조 혐의가 인정되면 김건희 여사 역시 이 쟁점에 대한 방어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은 그 전에 조사를 강행한 것이다. 심야조사까지 자청한 김건희 여사가 항소심 선고 이후에 한 차례 더 조사를 받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결국 윤석열 정권은 ‘영부인 방탄’을 위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하여금 검찰총장을 패싱하도록 한 것이다. 전 정권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대통령은 바로 들고 일어났을 것이다. 나이도 적지 않은 분이 갑자기 내면의 변화를 일으켰을 리는 없으니, 오히려 현 정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전 정권에서의 행보를 잘 설명하도록 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솔직히 말해, 요즘 많은 것들이 새롭게 이해가 되고 있다. 이게 대체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