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PD들 "추적60분 보도본부 이관, MB 때 판박이"
PD협회, '시사교양국 해체 철회' 촉구 "수시로 아이템 검열" "가장 큰 문제는 교양다큐센터 사장 직속 체제" 사측, 늦어도 24일 이사회에서 '조직개편' 마무리 방침
[미디어스=고성욱 기자] KBS가 '김인규 사장 체제’ 이후 14년 만에 시사프로그램 <추적 60분>을 보도본부로 이관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을 추진한다. 이에 대해 시사교양PD들이 “프로그램 제작 역량, PD저널리즘, 시청자의 알권리를 한 번에 빼앗는 조치”라고 반발했다.
또 이번 조직개편을 통해 신설되는 교양다큐센터와 라디오 제작부서는 사장 직속 기구로 편제돼 외압에 취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KBS 사측은 기존 1실 6본부 3센터 46국인 본사 조직을 1실 4본부 6센터 36개국으로 변경하는 조직개편을 추진 중이다. 예능, 드라마, 편성 등을 합친 '콘텐츠 전략본부'가 신설되고 기존 제작 1, 2본부가 해체된다. <추적 60분>을 제작하던 시사교양PD들은 기자 중심인 보도본부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교양다큐 PD들은 신설되는 교양다큐센터 소속이 된다. 교양다큐센터는 별도의 사장 직속 기구라고 한다.
사측은 17일 예정된 이사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조직개편안을 보고, 의결까지 끝내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늦어도 24일 예정된 이사회에서 조직개편안을 의결해 이번 이사회 임기 내에 조직개편을 마무리 짓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KBS 이사회의 임기는 8월 말까지다.
KBS PD협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16일 서울 여의도 KBS본부 사무실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시사교양프로그램 보도본부 이관' 철회를 촉구했다. 이날 <추적60분> 제작진인 김민회 PD는 “단순히 프로그램 하나를 옮기는 것이 아닌 시사프로그램 제작 역량, 저널리즘, 시청자의 알 권리를 한 번에 빼앗는 조치”라며 “사측은 시사프로그램은 보도국으로 간다는 설명만 내놓고 있는데, 정작 시사프로그램의 정의도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시사교양국의 해체”라고 비판했다.
지난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김인규 사장 체제의 KBS는 시사교양PD들을 보도본부로 이관한 한 바 있다. 이 기간 <추적 60분>팀은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의 ‘막말 동영상’을 입수했으나 간부의 반대로 방송할 수 없었고, 같은 해 11월 천안함 사건과 4대강 사업을 다룬 방송은 제작진과 데스크의 갈등으로 연기됐다. 이 당시 <추적 60분>이 반정부적 이슈를 다룬다는 청와대의 의견이 KBS에 정보보고 형태로 보고됐다고 한다. KBS PD 11명이 삭발 투쟁으로 반발했고, 3년 뒤 <추적 60분>은 제작본부로 돌아왔다.
2010년 <추적 60분> 보도본부 이관 당시 제작진이었던 강윤기 PD는 아이템 사전 검열을 우려했다. 강 PD는 “기자와 PD가 길러지는 과정은 분명 다르다”면서 “(2010년 당시)보도본부로 이관되자마자 원고를 먼저 검열받은 다음 문제가 없으면 제작에 들어간다는 업무방식의 강제적 변화를 요구받았다. 아이템 검열은 수시로 이뤄졌고, 정치적으로 예민한 아이템이나 자본 권력의 문제점을 얘기하는 방송은 어김없이 수정됐다”고 말했다.
강 PD는 “말 그대로 방송이 누더기가 돼서 나갔다”며 “제작진이 온전히 프로그램 제작에 집중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져 항의했으나 이 과정에서 업무 지시 불이행으로 징계를 받기도 했다. 결국 프로그램 경쟁력도 살리지 못하고 3년 반 만에 실패로 끝났는데, 재추진하는 것은 PD들이 시사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김은곤 PD는 “가장 큰 문제는 교양다큐센터가 사장 직속으로 독립한다는 것”이라며 “방송법에 방송편성의 자율 조항이 있지만, 현재 조직개편에서 편성은 콘텐츠 전략본부 소속이다. 라디오와 시사교양은 사장 직속으로 조직개편이 됐는데 이러면 편성책임자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PD는 “사장이 지시를 내리면 제작진은 그 지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고, 프로그램이 완성되는 과정까지 검열을 받는 단계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라며 “KBS 1TV 편성표상 70%가 시사교양국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만약 사장직속으로 분리되면 편성책임자 없이 검열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PD는 “이번 조직개편안이 실질적으로 이뤄진다면 사실상 시사제작의 해체”라면서 “<더라이브>, <역사저널 그날>, <세월호 10주기 다큐> 폐지 등 결과가 좋지 않았더라도 투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시사 프로그램 제작 PD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만약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는 PD라고 규정되면 저항하는 것부터 업무지시 불이행으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입사 4년차 조수민 시사교양PD는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이 하나둘씩 폐지되고 시사교양PD가 자기가 속한 조직에서 제작할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 현안을 충실히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고 권력과 불합리에 대한 감시를 느슨하게 한다”며 “회사는 당장 조직 개편안을 철회하라. 그리고 시대를 감시하는 프로그램들이 설 자리를 잃지 않고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의 주인인 시청자분들도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KBS PD협회는 15일 시사교양 1, 2국장 등이 참석한 긴급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일부 국장들과 제작1본부 팀장급 80%가량이 이번 조직개편안이 확정되면 보직을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언론노조KBS본부는 17일 이사회 개최 전 '조직개편 철회' 피케팅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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