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게임 탓' 시청자 청원 해명 먹힐까

KBS 교양프로 '스모킹 건' 아내 살인사건 '게임 탓' 논란 "게임서 '리셋' 가능… 현실도 '리셋' 해버리고 싶었던 것" 규탄 청원 2만 6천여 명 동의…"망상에 가까운 추정" KBS "여러 원인 중 하나로 추론…결정적 동기로 단정 안 해"

2024-07-03     송창한 기자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KBS 교양 프로그램 '스모킹 건'이 과거 살인사건을 조명하면서 대법원 판결과 다르게 범죄의 주요 동기로 '게임'을 지목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KBS는 게임을 여러 원인 중 하나로 추론과 해석을 했을 뿐 결정적 살해동기로 묘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해당 KBS 방송분에서 게임을 살인 배경으로 거론하는 대목이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KBS '스모킹 건' 6월 6일 방송화면 갈무리

지난달 13일 한국게임이용자협회장 이철우 변호사는 KBS 시청자청원 게시판에 <극악무도한 살인의 동기를 '게임 탓'으로 돌리는 2024. 6. 6.자 '스모킹 건' 방송을 강력하게 규탄합니다>라는 청원글을 올렸다. KBS 시청자청원은 30일 동안 1000명 이상이 동의하면 답변하도록 되어 있다. 해당 청원에는 2만 6855명이 동의했다. 이철우 변호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류희림)에 방송심의규정 위반 민원을 접수했다.

KBS '스모킹 건' <아내가 욕조에서 넘어져 죽었어요-의사 만삭 아내 살인>편에서 '대체 남편은 왜 그랬을까요'라는 진행자 질문에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매일 1~2시간씩 게임을 했다고 한다. 대학시절에는 8~10시간 정도 게임을 했다"며 "수업을 들어가지 않아 의과대학 예과 때 1년 유급을 당하기도 했다. 남편이 빠져있던 게임은 컴퓨터에서 혼자 하는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광민 전문의는 "남편에게는 인생도 마치 미션이나 퀘스트를 깨듯 전략적으로 끌고 가려는 성향이 여러 상황에서 엿보인다"며 "게임처럼 현실을 살 수는 없지 않나. 계획도 잘 안 풀릴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이광민 전문의는 남편이 애초 전문의 시험에 합격해 국군서울지구병원에서 군의관으로 일할 '전략'을 세웠으나 전문의 시험에서 떨어지면서 현실을 '리셋' 해버리고 싶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광민 전문의는 "(전문의 시험)합격 못하면 그 전략 자체가 다 틀어져버리지 않나. 남편에게는 큰 스트레스였고, 좌절감으로 느껴졌을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아내와 다투기도 한 거다"라고 했다. 이어 이광민 전문의는 "게임세계에서는 기존의 세계를 부수고 다시 만들수 있지 않나. 바로 리셋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남편은 이 리셋을 현실세계에서도 해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 같은 설명에 방송 패널들은 '무섭다 무서워' '너무 무섭다'는 반응을 보였다. 

KBS '스모킹 건' 6월 6일 방송화면 갈무리

KBS 시청자청원을 게재한 이철우 변호사는 "문제 장면은 범행 동기라 단정하기 어렵거나, 여러 원인 중 하나에 불과한 남편의 취미생활을 마치 친족 살인이라는 극악 범죄의 결정적인 동기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며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문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남편이 게임을 장시간 즐겨하였다는 등의 사정은 부부싸움의 동기는 될 수 있지만 살인의 동기로는 매우 미약하다"며 "보잘 것 없는 동기로 살인까지 이르렀을 것이라고 쉽게 추단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후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학업 스트레스와 아내의 잔소리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부부싸움이 일어나고, 싸움 과정에서의 격분이 직접적인 살인의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이철우 변호사는 "마치 게임을 즐기는 것만으로 현실도 게임처럼 리셋할 수 있다는 전공의 개인의 망상에 가까운 추정을 객관적인 살인의 동기인 양 설명하고, 패널들이 반응하는 장면은 우리나라 게임 산업과 게임 이용자들을 무시하고, 그 명예를 훼손하는 처사"라며 "제작진과 해당 전문의를 강력하게 규탄한다. 이런 구시대적이며, 특정 집단의 이익에 맞춰진 왜곡된 시선을 바로 잡아주시고, 앞으로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KBS 시청자청원 게시판 갈무리

이에 KBS는 "‘우리나라 게임 산업과 게임 이용자들을 무시하고, 그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면서 "제작진은 게임을 범행의 ‘결정적 동기’로 단정하지 않았다. 다만 신청인께서 말씀하신 대로 ‘여러 원인 중 하나’로 추론과 해석을 하였다"고 했다. 

KBS는 "그동안 스모킹 건에서 다룬 사건들에 비춰 볼 때 살인은 단 하나의 동기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때문에 제작진은 모든 프로그램에서 범행의 여러 동기들을 과학적 분석을 통해 입체적으로 다뤄왔고 이번에도 ‘게임’을 결정적 살해 동기로 묘사하지 않았다"고 했다. 

KBS는 '리셋'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게임 외 여러 분야에서 관용구처럼 사용되는 흔한 표현이며 이미 스모킹 건의 다른 편에서도 사용한 바 있다"며 "‘리셋’이 게임을 염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고 주장했다. KBS는 이광민 전문의가 '열렬한 게임 애호가'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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