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이 딱, 내 마음 상태였던 어떤 날들

[주관적이고, 사적이고, 사소한 이야기] 당신의 방이 어지럽다면...

2024-05-25     김은희 소설가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은 내 마음 상태를 보여준다. 내 방을 처음 가지게 된 것은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였다. 어릴 때 생각하면 방은 있었지만 내 방은 아니었다. 할머니와 언니의 방이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공간은 책상 아래 상자 하나를 놓을 수 있는 크기가 다였다. 마론 인형이 들어있는 상자가 놓여 있는 공간이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었다. 방은 할머니의 취향에 맞는 가구로 배치되었다. 창가 옆에 책상이 있었는데 나에겐 넘볼 수 없는 꿈의 공간이었다. 책상은 언니의 공간이었다. 언니도 책상이 자신만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책상 앞에 앉은 언니의 표정은 당당했다.

스무 살이 되어 내 방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었다. 내 방이지만 남의 방처럼 불편했다. 방에 있는 가구는 내가 원하던 가구도 아니었고, 내가 원하는 가구 배치도 아니었다. 오빠와 언니 물건이 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주인은 없는 물건이 내 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취업해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방을 내 마음대로 꾸미게 되었다. 빛이 한 줌도 들어오지 않는 커튼을 달고 침대, 옷장, 화장대 등 모든 가구는 화이트로 통일했다. 깔끔하고, 단정한 방이었다. 하지만.

만사가 귀찮을 때가 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손가락 하나 움직이고 싶지 않을 때. 이런 때의 내 상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몸이 힘들어서 움직이지 못할 때도 있지만 대다수의 경우 정신적으로 그로기 상태이다.

서울로 출근을 하던 시절,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출퇴근 시간을 합치면 적어도 세 시간이 걸리고, 출근하면 산더미 같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학원이라는 특성상 수업 시간 되기 전까지는 수업 준비를 해야 하고, 아이들이 학원에 오는 시간이 되면 강의가 시작되었다.

내가 다니던 학원은 수업 시간보다 수업 끝나고 해야 하는 일이 더 많았는데 늦은 밤 10시에 수업이 끝나기 때문에 뒷정리하고 나오기 바빴다. 수업이 끝나고 남은 일은 고스란히 다음 날 출근해서 해야 했다. 집에 돌아오면 자정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집에 들어서면 옷도 벗지 못하고 그대로 소파에 앉아 숨을 돌리다 보면 그냥 그대로 모든 게 멈췄으면 싶을 때가 많았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소파에 젖은 빨래처럼 한참 멍하니 앉아있으면 한 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외출복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소파에 앉는 일도, 들어오자마자 씻지 않고 소파에 앉는 일도, 옛날 같으면 생각하지 못했을 일이다. 어디를 다녀오든, 늦은 시간이든, 몸이 얼마나 피곤하든 들어오면 바로 욕실로 향해 깨끗하게 씻고 나와야 마음이 편했는데 그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를 돌볼 겨를이 없었으므로 방 정리는 꿈도 꾸지 못했다.

겉으로 보기엔 어질러 놓은 것 없는 깨끗한 방이었다. 보이지 않게 구석으로 밀어 넣고, 구석에 밀어 넣고도 넘치는 것은 옷장 안에 밀어 넣었기 때문에 방은 정돈이 잘 된 것처럼 보였다. 서재는 더했다. 골치가 아팠다. 서재에 넣어 둔 책은 정리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서재에 쌓아놓은 책을 볼 때마다 울적하고 심란해 문은 항상 굳게 닫아 놓고 열어보지 않았다.

그 시절 나는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던 문제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것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놓을 수 없었다. 내 방이 딱, 내 마음 상태였다. 옛날 물건을 정리하지 못하고 버리지도 못해 보이지 않는 곳에 밀어 넣어두고, 볼 때마다 골치가 아프고, 마음이 좋지 않아 인상을 쓰게 되는 내 방. 

방은 내 마음 상태를 대변한다. 정리되지 않은 방의 주인은 정리하지 못한 일이 있으며 고민과 문제가 있다는 것을 뜻할 수 있다. 방을 청소하는 일, 내 마음을 청소하는 일이다. 방 정리를 주기적으로 하고, 방 청소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수 있다. 만약 정리되지 않는 친구의 방을 보게 된다면 같이 정리를 도와주며 고민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운 머릿속이 정리될 것이다.

오늘, 오랜만에 책상과 옷장 정리를 해야겠다.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던 낡은 물건을 정리해야겠다.

 

김은희 (필명 김담이) ,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2023년 12월 첫 번째 장편동화 『올해의 5학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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