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과 오류로 점철된 거부권 행사
[김민하 칼럼]
[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윤석열 대통령의 채상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는 예고됐던 일이다. 예고됐다고 해서 놀랍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게 예고가 됐다는 게 놀랍다. 사건 자체가 대통령의 외압 의혹을 다루고 있어 대통령실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고, 수사 과정 및 언론 보도를 통해 의심할만한 상당한 정황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특검의 필요성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과거 정권이라면 이 정도 사건에 대한 특검은 보통 어떤 방식으로든 합의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상식에 맞지 않는다.
대통령실이 거부권 행사의 근거로 든 설명은 더 문제다. 거짓말과 오류로 점철돼 있기 때문이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21일 “특검 제도는 행정부 수반이 소속된 여당과 야당이 합의할 때만 가능하다”고 했다. 합의 처리가 바람직하다고 할 순 있어도 “합의할 때만 가능하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헌법을 포함한 그 어디에도 그런 법 규정은 없다.
또 정진석 비서실장은 “국회는 지난 25년간 13회 걸친 특검법을 모두 예외 없이 여야 합의에 따라 처리해 왔다”고 했는데, 많은 언론이 지적하듯 사실이 아니다. 한겨레는 22일 “2003년 ‘대북송금 특검법’은 여당인 당시 민주당이 퇴장한 가운데 한나라당·자민련 등 야당이 본회의에서 가결 처리했고, 2012년 ‘내곡동 특검법’도 여당인 새누리당의 반대 속에 통과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고심 끝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라고 썼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특검 발의와 통과를 주도한 야당을 향해 “경찰과 공수처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인데 공수처 수사를 못 믿겠다며 특검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만든 공수처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자기모순이자 자기부정”이라고 했는데, 궤변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명박 정권이 만들었는데, 문재인 정권 시절 기재부가 추진한 정책을 보수정당은 왜 비판했는가? 그것도 자기모순과 자기부정인가?
“특검제도는 수사기관의 수사가 미진하거나 수사의 공정성 또는 객관성이 의심되는 경우에만 보충적·예외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제도”라고 한 것도 현실과 거리가 멀다. 당장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 참여했던 국정농단 특검법이 검찰 수사 진행 중에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의원 자신들이 수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특검법을 발의한 사례도 있다. 2021년 9월 대장동 특검을 발의한 게 그것이다.
최소한 ‘경찰과 공수처 수사를 지켜보자’는 주장을 하려면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수사기관 수사에 전폭적으로 협조하면서 독립성을 충분히 보장하겠다고 선언하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은 오히려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이종섭 전 장관에 대한 공수처의 출국금지 조치에 대한 의문을 표하며 수사를 사실상 흔들었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날에 맞춰 오동운 공수처장을 임명했는데, JTBC의 보도를 보면 청문보고서 채택 과정에 여당이 석연찮은 이유로 대통령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한 대목을 빼자고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야당은 이를 대통령실이 개입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공수처를 믿고 신뢰하는 게 아니라 견제하고 흔드는 일이 벌써부터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공수처가 수사를 끝내면 검찰에 사건을 넘겨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이 사례의 경우 기소와 공소유지는 검찰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채상병 사건의 관할은 서울중앙지검이 되는데 최근 검찰 인사를 통해 새로 서울중앙지검장이 된 이창수 검사는 김건희 여사 관련 수사를 정권의 입맛에 맞게 하기 위한 ‘임무’를 부여받은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김건희 여사 수사는 채상병 사건과 함께 특검 정국의 양대축이다. 공수처 수사가 성공적으로 되더라도 검찰 단계에서 정치적 고려 없이 기소가 제대로 된다는 보장이 있는가?
정진석 비서실장이 언급한 가장 고약한 논리는 “우리 사법 시스템 어디에도 고발인이 자기 사건을 수사할 검사를 고르도록 하는 모델은 없다”는 것이다. 이날 법무부도 같은 논리의 입장문을 냈다. 더불어민주당이 고발해놓고 자기들이 단독으로 특검 추천권을 행사해 수사할 검사를 고르는 게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두 가지의 맹점을 안고 있다. 첫째는 더불어민주당은 대한변협이 추천한 후보들 중에 2인을 고르는 것이며 그것도 최종적으로는 대통령이 1인을 선택하는 구조라는 거다. 단순히 ‘고발인이 자기 사건을 수사할 검사를 고르도록 하는 모델’이 아니다. 둘째는 좀 더 악의가 실린 대목인데, 이 논리 자체가 ‘수사 대상인 대통령이 자기를 수사할 검사를 추천하고 선택하도록 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논리에 대한 되치기 성격의 억지라는 거다.
‘고발인이 자기 사건을 수사할 검사를 고르도록 하는 모델’에선 고발당한 사람이 약자가 될 위험성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대통령이 약자인가? 국민을 바보로 알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애초에 문제가 될 일이 없다면 특검이든 뭐든 어떤 수사기관이 오더라도 거리낄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일평생을 법 전문가로 살아온 대통령이 셀프 변호를 하는 것처럼 하니 오히려 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는 것 아니겠는가?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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