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희림 방심위가 쏘아올린 자율규제…"당장 논의 시작해야"
전문가들, 방송사 자율규제 한목소리 "위원 선의에 기댄 행정규제 한계 여실" 미국 FCC, '도박·음란물·사기' 불법 규제…영국 오프콤, 방송법 위반 행정규제 민주당, '방심위원 자격 강화' 총선 공약…개혁신당, '자율규제 강화' 공약
[미디어스=고성욱 기자] 류희림 위원장 체제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행정규제의 부작용을 여실히 드러냈으며 방통심의위 심의 기능을 대폭 자율규제 영역으로 옮겨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았다.
지난해 9월 류희림 위원장 취임 이후 방통심의위는 ▲가짜뉴스 신속심의 ▲정부·여당 비판 방송 무더기 심의 ▲인터넷 언론사 심의 ▲윤석열 대통령 풍자 영상 접속차단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정치 편향 구성 등 여러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방통심의위 상임위원회는 보수언론단체 공정언론국민연대, TV조선 등에 선거방송심의위원 추천권을 부여했고, 이들 단체가 추천한 위원 등으로 구성된 22대 총선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역대 최다인 30건의 법정제재와 14건의 관계자징계를 쏟아냈다.
22대 총선 선방심의위 법정제재는 윤석열 정부여당 비판 보도에 집중돼 입틀막 심의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방통심의위와 선방심의위의 법정제재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 재허가·승인 감점 대상이다. MBC의 경우 류희림 위원장 취임 이후 7개월 동안 받은 감점이 108점에 달했다. 이는 류 위원장 취임 전 대비 20배 이상에 달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 같은 권한 남용에도 방통심의위를 규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상황이다. 방통심의위는 형식상 민간행정기구이며 방통심의위원은 공무원 지위를 부여받고 있지 않아 국회 탄핵소추의 대상이 아니다. 또 방통심의위는 구조적으로 정치적 외풍에 취약하다. 방통심의위원은 대통령과 국회가 나눠 추천하고 대통령이 위촉한다. 현재 방통심의위는 윤 대통령이 야권 추천 위원을 해촉하고 보궐 위원을 임명하지 않고 있어 여권 절대우위 구도다.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를 거론하며 한목소리로 방통심의위 기능을 자율규제 영역으로 이관해야 한다고 밝혔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미디어스에 “현재 방통심의위 제도가 위원들의 선의에 기대왔고, 이 선의에 대한 한계를 ‘류희림 체제’가 보여준 것”이라며 “이번처럼 대놓고 정치 편향적으로 한 것은 처음이지 않나. 방통심의위 기능 전반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데 현재 행정규제 형태로는 조직이나 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간에 나아질 수 없어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심 교수는 현재의 방송·통신 심의 영역뿐 아니라 추후 OTT에 대한 심의까지 자율규제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심 교수는 “심의 기능을 자율규제 영역으로 넘기고 행정력은 자율규제 기구에서 위법한 사항이 발생할 때 개입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자율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시 더 큰 행정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엄격함을 보여줘야 자율규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라며 "영국 등도 자율규제를 도입하고 있고, 제대로 실천되지 않을 시 행정력이 개입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심 교수는 관련 논의가 미진한 현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방통심의위원·선방심의위원 자격 요건, 직무 규정 등을 우선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류희림 체제를 통해 방통심의위가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심의를 해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부재하다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그 전부터 방통심의위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대상의 콘텐츠를 침해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음에도 민간독립기구라는 외피를 쓰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김동찬 정책위원장은 “지금 방통심의위 권한들은 사실 자율규제 영역에서 이뤄졌어야 하는 부분”이라면서 “방통심의위는 최소심의 원칙에 맞게 최소한의 심의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일례로 광고심의 영역이나 법률로 제어해야 하는 어린이·청소년 영역 등을 제외하고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공정성 심의를 포함한 심의 기능을 대거 자율규제 영역으로 옮겨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정책위원장은 “가장 큰 문제는 자율규제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며 “우선 관련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 대학원 교수는 통합형 자율규제기구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방송사, 방송관련 단체들을 중심으로 자율규제기구를 설립해 이 기구 안에서 자체적으로 심의 및 정화 기능을 해야한다는 주문이다.
심 교수는 “마약 관련 정보와 같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정보에 한해 행정규제를 해야 한다”며 “방송의 공익성·객관성 등은 규제의 대상이 아닌 방송사들이 자율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행정권 발동의 범위를 줄이는 대신 방송사들의 윤리적 측면은 자율적으로 개선해 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언론중재위원회와 같은 언론 피해구제 영역이 충분한데, 방통심의위의 행정규제까지 있는 것은 과잉”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영국의 경우, 자율규제기구가 활성화 됐으며 행정력은 최소한으로 개입한다. 방통심의위가 지난 1월 발표한 <해외 시사·보도프로그램에 대한 내용규제 현황 연구>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의 방송심의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방통심의위와 같은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미국은 각 방송사업자들이 자체 심의와 규제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방송규제 독립기관인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방송사들의 자율 규제를 관리감독한다. FCC는 방송사업자에게 방송허가증을 발급하고 위반 사항이 발생할 경우 벌금이나 허가 취소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있다. FCC는 방송 내용을 심의하는 역할은 수행하지 않지만 도박·음란물·사기, 아동·청소년 보호 위반 등 불법 활동을 한 방송사에게 벌금 등을 부과할 수 있다.
영국의 행정규제기구 Ofcom은 방송지침과 윤리규정 등을 명시하고 있으나 직접적으로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해 심의하지 않는다. 영국은 자율규제기구인 IMPRESS가 자율·사후제재 역할을 담당한다. 다만 민원인이 IMPRESS의 자율규제 결과에 불만족할 경우 Ofcom에 불만 사항을 제기할 수 있다. Ofcom은 민원이 접수된 방송사의 방송법 위반 여부를 검토한다.
Ofcom은 방송사의 법령 위반 경중에 따라 행정명령, 과태료, 면허취소 등의 행정제재를 할 수 있다. 면허 취소는 방송사가 행정 제재 사항을 고의로 이행하지 않을 시 등 극히 이례적인 상황에 한정된다.
한편 야당은 지난 총선 공약으로 방통심의위 제도 개선을 내세웠다. 민주당은 ▲방통심의위원 자격요건 ▲회의 의사·의결정족수 ▲위원 정치활동 엄중 처벌규정 등을 법제화해 방통심의위 독립성과 정치중립성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개혁신당은 "표현의 자유 침해 위험에 노출된 방통심의위는 폐지해야 한다"며 "자율규제를 강화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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