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국민의 방송' 어떻게 만들지 논의해달라”

[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

2024-05-02     이영광 객원기자

[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신임 본부장으로 박상현 전 KBS 전국기자협회장이 선출됐다. 지난 3월 15~19일 실시한 제8대 집행부 선거(투표율 72.56%)에서 찬성 97.46%의 역대 최다 득표율로 박상현 본부장-조애진 수석부본부장 후보자가 당선됐다.

2007년 1월 KBS에 입사한 박상현 본부장은 창원총국과 진주총국에서 취재 기자로 일하며 전국기자협회 사무국장, 회장 등을 역임했고 7대 KBS본부에서 지역 부본부장으로 활동했다. 지난 4월 23일 박 본부장과 전화 연결해 KBS의 현재 상황과 임기 2년 동안 언론노조 KBS본부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들어보았다. 다음은 박 본부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

KBS본부장에 선출되신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업무 파악은 하셨어요?

“7대 집행부로 일했기 때문에 업무 파악이 어느 정도는 돼 있는 상황이라 조합 활동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우리 집행부 중에서도 7대에서 8대까지 함께해 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전임 집행부에서 지역 부본부장 역임하셨는데, 본부장 출마에 영향이 있었을까요?

“아무래도 영향이 있었죠. 저는 노동조합의 역할이나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었고, KBS본부가 출범할 때부터 조합원이었습니다. 그동안은 대의원이나 지부장을 하지 않아서 조합 생활에서는 거의 초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반 조합원 신분으로 조합에서 다른 일을 맡지는 않았지만, 예전에 전국기자협회 회장을 할 때 조합과 소통하면서 조합의 중요성이나 역할 같은 걸 자세히 알게 됐어요. 그 당시에 강성원 전임 본부장이 지역 부본부장이었는데 그때 인연 때문에 7대 때 지역 부본부장으로 합류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KBS가 큰 혼란을 겪으면서 조합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조합이 없으면 구성원들의 생존권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대표 공영방송인 KBS도 지키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본부장 출마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지금 KBS의 상황이 굉장히 어려워서 고민이 많으셨을 듯해요.

“고민이 있었죠. 저는 원래 근무지가 창원이거든요. 그래서 본사 사람들과 네트워크라는 부분도 약하고, 또 전임 본부장도 지역 출신이었기 때문에 지역 출신이 연달아 본부장직을 수행하는 것이 과연 조합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우려도 있었는데요.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조합을 하겠다는 의지인 것 같아요.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지만 7대에 이어서 8대를 같이해 주시겠다고 하는 집행부들이 있어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KBS본부 제8대 박상현·조애진 정·부 본부장 후보 선거 공보물

97.46%로 역대 최다 득표율이 나왔는데, 단독 출마라 찬반투표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압도적 지지를 받으신 것 같아요.

“조합원 유권자가 2,172명인데 여기서 한 72% 정도가 투표에 참여해 97% 찬성을 보여주셨어요. KBS본부가 새노조로 출범할 때 약 300명으로 시작했는데 이후 3천 명 넘길 때도 있었지만 투표만 놓고 보면 최다 득표를 했죠.

사실 득표율보다 신경이 더 쓰인 부분은 ‘투표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후보에 대한 평가나 지지는 엇갈릴 수도 있지만, 투표 참여 자체가 조합원들이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드러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우리 조합이 똘똘 뭉쳐 있다는 걸 회사에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단독 출마라 투표율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됐죠. 하지만 조합원들이 높은 투표율과 지지를 보여주셨어요.

선거 후에, 본부장 하겠다면서 조합원들을 믿지 못했었나라는 자책이 들 정도로 조합원들께서 높은 지지를 보내주셔서 부끄럽고 또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입니다.”

선거 중에 조합원들 많이 만나셨을 텐데 조합원들 요구는 뭐였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수신료 문제입니다. 조합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해 주셨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박민 사장 취임 이후에 방송이 많이 망가지다 보니 방송을 살려야 한다는 의견도 많이 주셨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파업 언제 하냐’ ‘파업해야 하지 않느냐’란 말씀을 하신 분들도 계셨는데, 정말 파업을 거론할 정도로 지금 상황이 숨 막힌다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 이런 상황과 관련해 사측이 추진하려고 하는 여러 가지 불합리한 변경을 막아내서 조합원들을 지켜달라는 얘기도 많이 하셨습니다.”

선거 슬로건이 ‘우리가 KBS다’였는데, 어떤 의미일까요?

“KBS본부가 그동안 여러 가지 투쟁을 해오면서 지향했던 걸 한마디로 표현하면 ‘국민의 방송 KBS’라고 할 수 있어요. 여러 차례 파업을 했던 이유도 KBS를 정권이 아닌, 국민의 방송을 만들기 위해서였고요. 결국 KBS를 정권의 방송이 아닌 국민의 방송으로 만드는 그 주인공은 KBS 안에서 방송을 만들어 가는 우리 종사자들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KBS에서 일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KBS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지금 위기를 돌파하자고, 조합원들과 KBS 구성원들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지금 수신료 위기를 극복하는 문제는 단순히 구성원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없으면 공영방송 KBS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KBS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KBS다’라고 생각하자고 호소했던 것이었죠.”

윤석열 정부는 2023년 7월 12일 'TV수신료 분리징수' 방송법 시행령을 공포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8대 공약을 내세우셨는데 그중 첫 번째가 수신료 문제네요. 하지만 수신료 문제는 노조가 대응할 방안이 뚜렷하게 없을 것 같은데?

“대통령실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 제도를 바꾼 것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수신료 문제에 대응하기 쉽지 않은 건 맞아요. 그런데 수신료 제도는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공영방송을 유지해 온 토대이고, 종사자 입장에서는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조합이 수수방관할 수가 없습니다.

작년에 소위 보수단체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나 납부 거부에 관한 얘기가 있었지만, 박민 사장이 취임하면서 보수단체에서는 그런 얘기가 쑥 들어가 버렸죠. 박민 사장이 들어와서 노골적으로 친정부 방송을 하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하면 진보세력 쪽에서 오히려 수신료를 거부하자는 얘기가 나올 법도 하지만 지금 그런 움직임은 없거든요. 이건 바로 조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이런 지점에 노동조합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부분뿐만이 아니라 소위 ‘고공전’ 측면에서 수신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헌법재판소에 빨리 판단해달라고 촉구하고, 정치권에 수신료나 공영방송의 역할을 포함한 정책 개발과 정책 전환의 필요성을 알려내는 것도 조합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나머지 공약 중에 중요한 건 뭘까요?

“일단 우리 조합원들이 불이익한 상황에 처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런 것들을 지켜내는 것도 중요할 것이고요.

가장 중요하게는 국회에 공영방송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영방송이란 무엇이고, 이 공영방송이 해야 할 공적 책무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그 공적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재원이 들어가고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이런 내용을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결정해달라는 거죠. 결국 공영방송이라는 건 국민의 자산이기 때문에 국민이 믿고 볼 수 있는 공영방송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국회에서 꼭 논의해 달라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248회 '독재화'하는 한국 - 공영방송과 '신보도지침' 편

지난 3월 31일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가 KBS 대외비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어요. 20일 지났는데 밝혀진 내용이 있을까요?

“그 문건을 누가 작성해서 유통했는지, 사장이 문건을 보았는지가 핵심적으로 밝혀져야 할 내용인데요. 사측에서 강하게 입단속을 하는지 추가로 밝혀진 건 아직 없는 상황입니다. KBS본부가 출범하면서 4월 1일 기자회견을 한 이후, 사측이 비공개 기자간담회를 열어서 문서는 괴문서이며 법적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어요. 사실 사측의 법적 대응 방침은 조합에겐 반가운 일이죠. 왜냐하면 문건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을 테니깐요.

그런데 지난주 수요일(4월 17일)에 KBS 이사회가 열렸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사측이 아무런 법적 대응을 안 했거든요. 이사회에서 소수 이사들이 문건 관련해서 질문하려고 했는데 다수 이사들이 (회의를) 비공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사회가 파행됐어요. 사측은 아직 법적 대응을 안 하고 있고, 공개적으로 보고안건으로 다루자고 하는 것마저도 다수 이사들이 안 된다고 나오는 걸로 봐서 사측이 숨기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작년 11월 박민 사장 취임 후 뉴스 신뢰도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KBS 종사자로서 가슴 아픈 부분입니다. 망가진 방송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데이터를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어요. <뉴스9> 같은 경우에 시청률 하락에 시청자 수가 감소했고 디지털에서 KBS 보도 유통량도 많이 줄었습니다.

예전에 KBS본부 출범 당시 경영진이나 수뇌부들도 친정부적인 방송을 하면서 조합의 눈치를 봤었어요. 그때도 특정 주제의 방송이 나가지 못하게 한다거나 친정권 성향의 보도를 했지만, 지금처럼 노골적인 정권 찬양 방송은 없었던 것 같거든요. 사실상 ‘땡전 뉴스’가 부활했다고 보는 게, 지금은 9시 뉴스를 보면 거의 윤 대통령 동정이 제1 뉴스, 톱뉴스예요. 하물며 4월 16일 세월호 10주기가 되는 날도 KBS는 세월호가 톱뉴스가 아니라, 그날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 톱뉴스였어요.

총선 이후 대통령의 첫 입장 발표 자리였지만 다들 맹탕이라고 굉장히 혹독하게 평가했는데, 그런 대통령의 발언이 톱뉴스로 갔다는 점은 지금 KBS 수뇌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상적인 ‘땡윤 뉴스’는 기본이고 대통령 해외순방 성과를 포장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하는가 하면 정점은 대통령과 녹화 대담에서 찍었죠. 대통령 가족사를 대담 프로그램에서 홍보하더니 급기야는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해서 진행자가 ‘작은 파우치’를 놓고 갔다는 발언을 해서 정말 많은 국민을 분노하게 했어요. 이런 부분들이 뉴스 신뢰도 하락과 직결된 문제인데 수뇌부는 여전히 마이웨이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2월 7일 방송된 'KBS 특별대담-대통령실을 가다' 갈무리

박민 사장이 임명동의제를 거치지 않고 보도국장 임명을 강행했는데?

“말이 안 되는 처사입니다. 회사는 분명히 편성규약에 임명동의제를 도입한다고 사규로 만들었고, 단체협약에는 그 사규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안을 명시했어요. 그런데 사측 스스로가 사규를 어긴 것이죠. 사장의 인사권 운운하고 있지만 그걸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회사 사규상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면 다시 정리를 해야지, 편성규약에 명시한 임명동의제를 안 지킨 것은 사규 위반입니다. 설사 인사권에 충돌이 있다고 할지라도 단체협약에서 정한 걸 지키지 않은 건 명백히 단체협약 위반이죠.”

대응 방안이 있나요?

“사측에서 임명동의제를 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보였을 때 단체협약을 이행하라는 가처분을 넣었는데, 저희 조합이 당사자성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가 됐어요. 그런데 그 결정은 저희가 받아들일 수 없어서 항고해 놓은 상황이고, 추후 이 부분이 정리되면 단협 위반 부분에 대해서는 특별근로감독을 신청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국장 발령자들이 지금 업무를 보고 있는데 단협을 위반하고 임명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임명 자체에 대한 무효 소송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

본부장 임기 2년 동안 KBS본부를 어떻게 이끌어나갈 계획인가요?

“일단 조합원들을 지키기 위해 ‘과반’ 노조 달성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과반 노조를 달성해서 사측의 불이익한 변경 같은 것을 막아내야 하는데 사실 상황이 녹록지는 않습니다. 지금 단체협약 개정 교섭을 진행하고 있는데 사측이 조합활동을 위축시키고 임명동의제, 공정방송위원회 같은 공정방송 제도를 대폭 후퇴시키거나 아예 없앤 안을 제시하면서 교섭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어요.

KBS (장악) 문건에서도 드러났듯이 교섭이 결렬되면 아마 무단협 상태로 갈 것 같아요. 그러면 쟁의 상황이 불가피한데 쟁의가 벌어진 상황에서는 조합활동 환경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거든요. 지금 경영진은 조합활동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금은 조합을 지켜내는 것 자체도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주어진 상황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사측을 견제하면서 조합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조합원들은 물론이고 우리 구성원들로부터 조합이 다시 신뢰를 얻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KBS본부가 ‘공정방송’이라는 주제, 대의만 내세워도 조합원들이 많이 참여했는데 지금은 조합 자체가 커지고 또 세대교체도 일어나면서 조합원이나 우리 구성원들의 이해와 요구가 굉장히 다양해졌거든요. 다양해진 조합원들의 이해와 요구를 받아안아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하고 대안을 찾는 것도 조합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조합 본연의 역할도 충실히 해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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