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재명 모두 시험대에 올린 ‘영수회담’
[김민하 칼럼]
[미디어스=김민하 칼럼] 22일 신문 1면의 풍경은 윤석열-이재명 회담을 앞둔 양쪽이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선일보의 1면 머릿기사 제목은 <“정치하겠다”는 尹... 그앞에 쌓인 난제>이다. 한겨레는 <“민주, 개혁 민생 다 잡는 유능함을”>이다. 두 기사 모두 회담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진 않지만, 회담이 총선 이후 양대 세력의 전망을 좌우할 중요한 전환점이 될 거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생각이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19일 이재명 대표와 통화한 이후 참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제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이 발언을 “통치 스타일에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뜻”으로 봤다. 현장 방문과 메시지를 줄이고 야당 의원들과의 접촉을 강화하려는 것이란 해석이다.
이재명 대표와의 회담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한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회담이라는 건 어찌됐건 성과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양보와 절충이 불가피하다. 이전까지의 ‘윤석열 스타일’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덕목이다. 다시 말하면 대통령이 기존 스타일을 고수할 경우 회담의 성과를 거두는 일은 어렵다.
만일 이번 회담에서 성과가 나지 않으면 “역시 대통령은 변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다시 나올 수밖에 없다. 여론에 미치는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러면 대통령의 여당 장악력에 문제가 생긴다. 이미 여당 상황은 심상찮다. 조선일보는 앞서 기사에서 ‘정치하는 대통령’ 앞에 놓인 난제로 이재명 대표와의 회담 외에도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오찬 불참 통보 등을 꼽았고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는) 여당 내 비주류 인사들과 대화에 나설지를 지켜봐야 판가름 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고 썼다. 동시에 조선일보는 이날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지역 낙선자 및 당선자들을 잇따라 만나 만찬을 함께 했거나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윤석열 정권 만 2년을 채우지도 않은 시점에 ‘차기’ 경쟁에 불이 붙고 있는 거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대통령실의 오찬 제안에 응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대부분 언론이 홍준표 대구시장과의 갈등 구도를 함께 짚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대통령과의 만남 이후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대한 비난을 계속하는 것에 대통령의 의중이 실렸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전당대회가 예정돼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한동훈, 홍준표, 오세훈, 나경원, 안철수 등이 앞으로 주요 플레이어로 거론되는 국면이 앞으로 펼쳐질 텐데,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책임론을 계속 거론한다는 얘기도 이어진다. 이러면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차기를 둘러싼 경쟁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개입’하는 모양새가 된다. 여기에 이재명 대표와의 회담이 성과없이 끝난다면? 원심력은 더 커질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회담을 둘러싼 정치적 맥락은 야당에 상당히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기 영화의 대사처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한겨레는 앞서 기사에서 전문가와 야당 관계자의 말을 빌어 더불어민주당이 민생과 개혁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 능력을 증명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 기사에서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특검을 해나가면서도, 그 특검을 지렛대 삼아 ‘민생 정국’을 주도하고, 윤 대통령이 따라오게 만드는 야당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번 회동의 테이블에 오를 의제로는 전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채상병 특검법 등이 우선 거론된다. ‘민생’을 고리로 ‘협치’를 논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측면에서 민생회복지원금에 더해 전세사기 특별법이나 자영업자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책 등이 논의될 가능성은 커보인다. 정치적 인화성이 큰 채상병 특검, 김건희 특검, 50억 클럽 특검 등은 우선 순위에서 밀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단 ‘협치’의 분위기를 살리는 게 우선인 상황에 판이 깨질 만한 의제를 먼저 제시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다.
더불어민주당에 유리한 판이라고 해도 100을 강요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민생을 우선해야 하니 특검 의제는 뒤로 미루자는 것도, 특검을 말할 수 없다면 회동은 무의미하다는 태도를 고집하는 것도 다수 의석을 가진 제1야당으로서 책임 있는 태도는 아니다. 앞서 인용된 언급처럼 특검을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을 지우기 위한 최선의 도구로 사용하면서도, 입법 과정에서 민생을 위한 지렛대로 활용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는 어려운 일이지만, 이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이 능력이다. 그런 점에서 더불어민주당에 있어서도 대통령과의 회담은 ‘범야권 192석’ 이후 첫 시험대에 오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 위해선 유연하면서도 단호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1인당 25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을 그대로 집행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를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가능한 방식이 있다면 얼마든지 절충할 수 있지만, 국민의 민생 혹은 억울함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사안에 있어선 방법론에선 유연할 수 있어도 원칙에선 물러날 수 없다는 의지를 대표가 직접 보여주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쉽지 않은 얘기다. 정치에선 오히려 상황을 주도할 수 있을 때가 가장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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