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공정방송 임면동의제 폐지, 쿠데타나 다름없죠"

[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고한석 언론노조 YTN지부장

2024-04-17     이영광 객원기자

[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준공영방송이었던 YTN이 사영화되고 공정방송제도가 형해화됐다. 지난 1일 YTN 사장으로 김백 전 공정언론국민연대 이사장이 취임했다. 김백 사장은 2008년 YTN 해직 사태를 주도한 인물로 꼽힌다. 당시 총괄 상무였다.

대주주인 유진그룹은 YTN 공정방송제도의 핵심인 사장추천위원회 추천 과정 없이 사장을 선임했다. 김백 사장은 거침이 없었다. YTN 구성원의 자부심이었던 공정방송제도는 임면동의제 파기, 프로그램 진행자 교체, ‘돌발영상’ 불방, 대국민 사과 방송 뒤에 속절 없이 묻힐 처지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KBS 박민 사장의 행보와 비슷하다.

YTN 공정방송 정신은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증진한다’이다. 김백 사장 취임에 대해 입장을 들어보고자 지난 12일 고한석 YTN지부장과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고 지부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고한석 언론노조 YTN지부장

김백 사장이 취임한 지 보름이 되어가는데 분위기는 어떤가요?

“분위기가 안 좋죠. 김백 사장과 김백 사장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인사권을 사적 복수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어 내부에서 두려움과 분노가 큽니다. 무엇보다 공정방송 제도 훼손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큽니다. 그래도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잘 뭉쳐 있어요. 김백 사장은 윤석열 정권을 비호하는 유튜브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사실상 사장이 된 건데, 이천 명 남짓한 작은 조직에서 필요도 없는 본부장 자리를 7개나 만들었어요.”

원래 없었던 본부장 직위가 만들어진 건가요?

“본부장 자리가 새롭게 만들어진 거예요. 이는 가신들에게 자리를 하나씩 주기 위한 목적 이외에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특히 사원급 본부장이라는 궤변까지 늘어놓고 있어서 구성원들의 분노가 큰 상황이에요.”

방만 경영 아닌가요? 본부장 자리가 있으면 그만큼 연봉이 나가니까요.

“본부장이라고 해서 연봉을 크게 높이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쓸데없는 자리 만들어서 감투 주려는 거고, 거기에 사용되는 비용은 분명히 있을 테니 방만 경영이 맞고요. 또 회사가 지난해에도 적자를 봤는데 그동안 김백 사장과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적자 때문에 회사가 망할 것처럼 계속 떠들었거든요. 그런데 해외 특파원을 두 배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선언했어요.”

적자인데 특파원을 늘린다고요?

“이미 해외 특파원에 누가 내정돼 있다는 내정설까지 돌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결국 자기 사람 챙겨주기 아니냐, 그리고 YTN 구성원들을 갈라치기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분노가 큽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 조합원 등이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유진그룹 사옥 앞에서 유진그룹 YTN 이사진 내정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백 사장의 취임이 속전속결로 진행된 것 같아요. 내정설 듣고도 이렇게 빨리 될 줄은 몰랐거든요.

“그렇죠. 총선 전에 YTN을 완벽하게 장악해야 한다는 시간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국민 사과도 KBS와 똑같잖아요. 그러니까 총선 전에 어떻게든 언론을 장악해야 한다는 시간표 같은 게 있었을 거라고 저희는 추측하고 있어요. 그래서 속전속결로 진행된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원래 YTN 사장은 사장추천위원회를 거쳐야 하잖아요. 그건 문제가 없나요?

“당연히 문제 있죠. 사추위를 거쳐야 하는데 이사회가 사추위 관련 규정 자체를 없애버렸어요. 대단히 폭력적인 행위죠. 사추위는 YTN 공정방송 제도 중 핵심으로 부적격 사장을 걸러내는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그런데 유진그룹이 고작 지분 30%를 가지고 이사회를 열어서 사추위를 없애버린 거거든요. 구성원들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대단히 분노하고 있습니다.”

법적 문제는 어떻게 되나요?

“법적으로 대응할 수는 있어요. 단체협약에도 사추위 참여를 보장받는 내용이 있거든요. 그런데 법원에서는 사장 선임을 대주주의 주요 권한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서 자칫 법적 투쟁에 나섰다가 오히려 저들에게 정당성만 부여하게 될 가능성이 있거든요. 그래서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합니다.”

김백 사장이 3일 YTN 보도에 대해 사과했는데 박민 KBS 사장과 비슷한 행보를 보여서 매뉴얼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던데.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는 매뉴얼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건 대국민 사과가 아니고 용산과 김건희 씨한테 잘 봐달라고 사과한 것처럼 보여요.”

YTN 방송 화면 갈무리

1일 김백 사장 취임식 날 출근 저지에 나섰잖아요. 그날 상황이 어땠나요?

“김백 사장의 첫 출근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항의했어요. 물리적 충돌도 일부 있었고 더 심한 충돌까지 갔을 수도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특히나 취임사를 하면서 대국민 사과를 예고했거든요. 그 부분에서 YTN 구성원들이 무척 분노했고요. 출근 첫날은 김백 사장의 편향적인 언론관과 일그러진 노동관을 단적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고 봅니다.”

1일 인사가 이루어졌어요. 보도국장의 경우 임면동의제를 거치게 되어 있는데 일방적으로 임명한 거잖아요.

“이건 당연히 단체협약 파기이고 처벌받을 일입니다. 그래서 보도국장·보도본부장 임명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낼 거고요. 거기에 덧붙여서 가처분까지 낸 상태예요.

보도국장 임면동의제의 역사를 설명하면, 원래 복수후보추천제가 2002년부터 시행됐어요. 그 당시에는 보도국장 후보 3명을 보도국 구성원들이 투표해서 추렸습니다. 그러면 3명 중 1명을 사장이 임명하는 제도죠. 그런데 보도국장 임면동의제를 무너뜨린 사람이 배석규 사장이었어요. 이후 사장이 자기 입맛에 맞는 보도국장을 임명하면서 YTN의 공정방송 훼손 사례들이 하나둘 쌓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보도국장 임면동의제는 2017년도에 탄생했어요. 즉, 이명박근혜 정권 공정방송 투쟁의 결과물인 셈이죠. 사장이 보도국장 1명을 지명하고 보도국 구성원들에게 찬반을 묻는 제도거든요. 그러니까 공정방송을 지키는 YTN의 확고한 기준이자 규범, 근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김백 사장이 윤석열 정권과 유진그룹을 등에 업고 입성해 일순간에 보도국장 임면동의제를 없애버렸죠. 거의 쿠데타나 다름없다고 봅니다.”

사진제공=언론노조 YTN지부

김백 사장 인사에 대한 평가는?

“과거 정권 그리고 윤석열 정권에서 공영방송을 ‘언론노조 노영방송’이라고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YTN 고위 간부에 오른 대부분 사람은 방송노조라는 노동조합에 속해 있거나 그 출신들입니다. 그러면 현재 YTN도 노영방송이라는 얘기가 되잖아요. 결국 노영방송이라는 것이 언론노조가 YTN을 장악했다는 게 아니고, 경영진 말 잘 듣는 사람들이 언론의 주요 보직에 있지 않아서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이나 다름없죠.”

대부분 노조 출신일 수밖에 없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노조를 제외하고 YTN 운영이 안 돼요. 그런데 김백 사장은 언론노조를 적으로 돌리고 있잖아요. 결국 구성원들의 참여 없이는 본인이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할 겁니다.”

YTN '돌발영상' 갈무리

3일 <돌발영상> 불방 사태는 어떻게 된 건가요?

“‘칠십 평생 지금처럼 못하는 정부 처음 본다’라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발언이 담겼고, 이어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우리가 생각하는 최악의 정부는 문재인 정부’라고 역공하는 발언이 담겼어요. 이날 <돌발영상>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이런 여야 네거티브 공방이 오가는 사이에, 정작 선거의 주인공인 유권자와 당사자인 후보자들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을 풍자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방송 당일에 김승재 보도제작국장이 <돌발영상> 제작진에게 불방을 통보했습니다. 그 이유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분량이 균형에 맞지 않으니 기계적 중립을 맞추라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아예 <돌발영상> 안 내보내도 된다고까지 말했어요.

그런데 YTN 노동조합의 공정방송추진위원회에서 분석해 보니, 굳이 양적 균형으로 따지더라도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부분은 85초이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비판한 부분은 75초예요. 10초 차이로, 양적 균형으로도 크게 문제는 없는 거지요. 특히 전날 방송된 <돌발영상>에서 정부‧여당을 비판한 부분은 35초인데 반해서 이재명·조국 대표를 비판한 내용은 113초였거든요. 기계적 중립 기준을 들이대면 이것이 더 문제인데 그때는 아무 말 안 했어요. 결국 정부‧ 여당에 불리해 보이니 불방시킨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돌발영상>은 ‘자투리 영상’이라고 해서 본 방송에 나가고 남은 영상들을 편집해서 풍자하는 저널리즘의 하나거든요. 그래서 애초부터 기계적 중립은 <돌발영상>의 문법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보도에서 양적 균형 따지는 건 저널리즘에서 이미 폐기된 지 오래고, 시청자들 역시 그런 기계적 균형을 바라지도 않아요.”

유진그룹 [유진그룹 제공=연합뉴스]

유진그룹 회장 만나려고 했지만 못 만난 건가요?

“그날 유진그룹 유경선 회장이 YTN 사원들에게 편지를 썼어요. YTN 구성원들을 ‘가족’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지부에서 답장을 써서 유 회장에게 직접 전달하려고 했는데 못 만났습니다. 그때 나온 유진그룹 홍보 상무가 ‘회장은 계열사 직원을 일일이 만나지 않는다’라고 했어요.

우리가 보낸 편지에는 유 회장에게 묻고 싶은 내용을 적어놨거든요. 유 회장이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하고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여야 하며 YTN 전체의 공정성을 훼손하거나 내부 분열을 초래해선 안 된다’라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김백 사장의 대국민 사과를 보면 구성원들의 의견을 묻고 토론하는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았고, 그로 인해 구성원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줬습니다. 그래서 YTN 구성원들이 그 부분에 대해 대단히 마음이 상했고 분노하고 있다는 내용을 유경선 회장에게 전달했습니다.”

유경선 회장이 YTN 구성원들에게 가족이라고 했다면서요. 그런데 왜 가족을 안 만날까요?

“제 얘기가 그거예요. 가족이라면서 왜 안 만나요? 그것도 면담 요청하는 것도 아니고 서한만 전달하겠다고 했는데요. 가족으로 생각 안 하는 모양이죠.”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요?

“일단은 견디는 것이 가장 큰 과제고요. 김백 사장 체제에서 벌어지는 공정방송 훼손 행위나 부당노동행위를 따박따박 법적으로 따질 것이고, 노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권리로 대응할 겁니다. 무엇보다 조합원들이 다치지 않도록 잘 지켜야겠지요. 유진그룹은 윤석열 정권이라는 정치권력에 기대어서 YTN 최대주주가 됐고, 김백 사장은 유진그룹을 등에 업고 왔잖아요? 하지만 정치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비롯되니까 결국 YTN을 지켜주는 것도 국민일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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