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와는 아주 다른, 요즘 아이들의 반장 선거

[주관적이고, 사적이고, 사소한 이야기] 공약, 선거의 시작이자 끝

2024-04-13     김은희 소설가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초등학교에선 학기 초에 반장 선거를 한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라고 하여 우습게 볼 일은 아니다. 반장 선거에 나서는 아이들은 모두 결의를 다지고 나온다. 저마다 학급과 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공약을 만들어 선거 활동을 한다. 반장 선거에서 공약이 중요하다는 것은 후보뿐 아니라 유권자인 반 아이들도 알고 있다.

공약은 공식적인 약속이라는 뜻을 알고 있기에 후보는 나부터 지킬 수 있는 공약, 내가 지킬 수 있는 공약을 고심하며 만든다. ‘라떼’와는 아주 다르다. 그 옛날 ‘라떼’의 반장 선거는 인기 있는 친구, 재밌는 친구, 공부 잘하는 친구가 반장이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공약을 보고 반장을 뽑는다. 물론 100% 공약만으로 반장을 뽑지는 않는다. 100%는 아니라고 하여도 공약은 반장 후보에게도 유권자인 반 아이들에게도 중요하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유권자인 아이들은 지킬 수 없는 허무맹랑한, 허풍에 가까운 공약을 내건 후보는 외면한다. 외면당하지 않고 반장에 당선되기 위해서 후보는 학급과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공약을 만든다. 내용은 이렇다.

- 학급 의견함을 만들겠다.

- 축구공, 농구공을 비치하겠다.

- 왕따가 없는 반, 학교 폭력이 없는 반을 만들겠다. 꿈이 가득한 반을 만들겠다.

- 언제나 교실이 깨끗할 수 있도록 하겠다.

- 학습 도우미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

- 재미있고, 다양한 운동회를 기획하겠다.

- 건널목 안전 교육을 더 강화하겠다.

공약은 구체적이다. 후보는 허무맹랑한 선거 공약은 해서는 당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부터 지킬 수 있는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는 기본에 충실해 공약을 만들고, 학급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미하고, 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이끌어갈 리더십을 더해 공약을 내놓아야 반장으로 당선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반장 선거에서 공약이 중요한 만큼 공약 만들기를 알려주는 사이트와 동영상도 많다. 반장으로 당선되는 꿀팁을 알려주는 동영상을 보면 선거 공약과 연설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학기 반장 선거라면 공약만 잘 말해도 당선 확률이 높아진다.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선거 공약을 어떻게 효과 있게 전달하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된다. 연설할 땐 남들과 다른 차별화된 말하기로 소품을 활용하여 나를 소개하는 것도 좋다. 예를 들자면 ‘내가 반장이 되면 우체통이 되겠습니다.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 전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반장이 되겠습니다’ 등으로 나를 소개하는 방법이다. 이 밖에도 삼행시로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 있다. 삼행시는 내 이름을 아이들에게 굵고 짧게 어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선거 기간 내내 후보를 도와 홍보를 하는 친구들이 있다. 후보 이름과 번호, 공약 등을 쓴 피켓을 들고 반장 후보의 유세를 돕는다. 후보 이름을 넣은 노래를 만들어 피켓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열렬히 유세를 돕는 친구들의 격돌은 또 다른 선거 현장이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이 모든 과정은 반장 선거가 있는 날까지 계속된다. 드디어 투표 날이 되어 유권자의 선택으로 반장이 선출되면 이제야말로 반장으로서 내가 내놓은 공약을 지킬 때이다. 공약은 공식적인 약속이기 때문이다. 반장은 유권자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계획을 짜고 실천한다.

학급 의견함을 만들고, 축구공과 농구공을 마련할 방법을 생각하며 운영 시간을 결정하고, 교실을 깨끗하게 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견을 모으고, 학습 도우미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한다. 꿈이 가득한 반을 만들기 위해선 단 한 명의 친구도 소외되어선 안 되므로 다 같이 운동회에서 발표할 춤을 준비한다. 운동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안전하도록 건널목에서 멈춰서기, 뛰지 않기, 좌우 살피기 등을 교육한다.

이 모든 공약을 반장으로 한 학기 동안 성실이 지켜가는 것이 선거의 끝이다.

아이들은 아마 약속을 지켜가고 있을 것이다.

공약은 공식적인 ‘약속’이니까.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2023년 12월 첫 번째 장편동화 『올해의 5학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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