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연구와 딴판인 방통위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
대통령실 권고에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 개정 추진 MB정부 때 연구보고서 "디지털 수신료 도입" 수신료 현실화, 지상파 수익구조 개편 1순위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대통령실 권고에 따라 수신료 분리징수를 추진하는 시행령 개정에 착수했다. 그러나 방통위가 연구용역을 맡긴 각종 정책보고서에는 공영방송 수신료를 현실화해야 한다거나, 수신료 징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미디어스는 방통위 출범 이후 발간된 정책연구과제 보고서가 공영방송 수신료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살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방통위와 한국전파진흥원이 발간한 '합리적 수신료 산정방안 연구' 보고서는 수신료 징수 범위 확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해당 보고서는 수신료 통합징수 방식의 강제성을 문제 삼으면서 동시에 '디지털 수신료' 개념 도입을 언급했다. TV수상기에 한정된 수신료 징수 범위를 디지털로 확대해 공영방송의 재원을 변화된 미디어환경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1999년 헌법재판소는 분리징수방식을 다시 도입하면 공영방송의 존립에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결함에 따라 당분간은 현행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러나 통합고지로 한전의 전기 공급 중단 조치를 무기로 하여 수신료 납부를 강제한다는 것은 여전히 개선의 필요성을 안고 있다"고 했다.
이어 "디지털 전환 등 시장 환경의 변화에 따라 수신료의 범위에 대해 다시 규정할 필요가 있다"며 "영국과 독일의 사례에서처럼 '디지털 수신료'라는 개념의 도입 여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보고서는 "디지털 전환에 소요되는 예산을 지원하고 무료방송을 통한 신규 디지털 서비스의 제공을 가능하게 하려면 수신료 범위에 대한 새로운 규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라고 전했다.
또 보고서는 KBS가 한국전력에 내는 수신료 징수 위탁 수수료가 비싸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위탁 징수비용이 재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다시 고려해 보아야 한다"며 "한전의 수신료 징수비용(위탁징수비용)은 외국에 비해 높다. 이것은 KBS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부담을 줄이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방통위가 2018년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을 통해 발간한 '방송시장 재원 및 시장구조 합리화 방안 연구' 보고서는 공영방송의 공적책무 수행 비용을 세금으로 충당하자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정책방향을 설명하면서 "첫째, 공익적 가치 추구 영역과 시장영역을 분리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교차보조(cross subsidy)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라며 "공영방송의 공적책무 수행 비용을 세금(수신료)으로 충당하며, 취약매체 지원방식인 광고연계판매 방식을 지양하고 기금을 활용하는 방향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2020년 방통위가 미디어미래연구소를 통해 발간한 '지상파방송 활성화를 위한 정책방안' 보고서는 지상파 방송 수익구조 체계 개편과 관련한 우선순위 정책으로 'TV수신료 현실화'를 꼽았다. 보고서는 다양한 이슈를 계층구조화해 이슈별로 상대적 우선순위를 선정하는 AHP/IPA 분석 방법으로 지상파 규제개선 이슈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조사 대상은 학계·연구계 종사자와 지상파 종사자다. 지상파 수익구조 개편 우선 순위는 TV수신료 현실화(0.433), 광고판매대행체제 개편(0.321), 정부광고 대행 독점 체제 개편(0.245) 순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넷플릭스·디즈니+ 등 글로벌 사업자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미디어 산업 보호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상파의 성장이 중요하다면서 성장을 막는 원인 중 하나로 '공적재원의 부족' 문제를 들었다.
보고서는 "1981년 2500원으로 인상된 이후 39년간 수신료 인상이 이루어지지 않아 공영방송이 공적 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공적 재원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며 "국내의 경우 영국, 일본, 독일 등 해외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 수신료와 같은 공적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은 상황이다.(중략) 수신료 인상 이슈는 공영방송의 책무뿐만 아니라 지상파방송 및 유료방송 그리고 콘텐츠 산업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기 때문에 공적재원 부족으로 인한 문제는 지상파 방송 성장의 한계로 지목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2022년 방통위가 한국방송학회를 통해 발간한 '변화하는 미디어환경의 대응을 위한 공영방송의 재구조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 주요 해외 국가의 수신료 제도 현황이 기술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OTT 시대에 맞춰 NHK 인터넷 사업 확대방안과 수신료 제도를 검토하고 있다. 일본은 인터넷 접속기기를 보유한 것만으로 수신료를 징수할지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프랑스 국제방송 FMM의 재원 96%는 수신료다. 프랑스 수신료는 '공공 시청각 기여금' 명목으로 징수되며 매년 물가 상승률이 반영돼 증액된다. 스웨덴 교육방송 UR은 아예 세금으로 재원을 충당한다. 스웨덴의 성인은 연간 수익의 1%를 '공공서비스세'로 납부해야 한다. 연금을 받는 은퇴자들도 수입의 1%를 평생 공공서비스세로 지불해야 한다. 국세청이 공공서비스세를 징수해 공영방송 등에 배분한다.
KBS는 현재 재원의 40% 정도를 특별부담금인 수신료로 충당하고 있다. KBS에 따르면 현재 연 6200억 원 수준인 수신료 수입은 분리징수 시 1000억 원대로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실은 지난 3월 9일 돌연 'TV수신료 징수방식 개선 국민참여 토론'을 진행했다. 대통령실 국민제안은 KBS가 정순신 변호사 아들 학폭사건을 보도한 지 2주일여 만에 실시됐다. 대통령실 국민제안 시스템은 '어뷰징'(중복 전송)이 가능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국민토론 결과 97%가 수신료 징수 방식 개선에 찬성했다'며 방통위 등에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을 권고했다. 이에 방통위는 수신료 분리징수를 추진하는 시행령 개정에 착수했다.
김의철 KBS 사장은 지난 8일 기자간담회에서 "만일 전임 정권에서 사장으로 임명된 제가 문제라면 사장직을 내려놓겠다"며 "그러니 대통령은 공영방송의 근간을 뒤흔드는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을 즉각 철회해 달라. 철회되는 즉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12일 당 최고위원회에서 "공영방송을 아예 없애는 게 아닌 한, 그 부족한 재원을 국가가 마련해야 하는데, 어떻게 마련해야 할 것인가. 대안이 있나"라며 "KBS 스스로 돈을 벌게 하려면 KBS1의 광고를 전면허용해야 할 것이다. 한정된 광고시장에 KBS라는 공룡이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러면 결국 MBC, SBS는 물론, TV조선, 채널A 등 다른 방송사들의 광고수익을 잠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 최고위원은 "수신료는 단지 KBS만의 문제가 아니다. 재난방송과 장애인방송, 국제방송 등 공적 영역을 담당하는 공영방송을 국가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라며 "국정운영은 도박판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공영방송 겁박하기를 즉각 멈추고 대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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