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 '전도된 민주주의' 전면화하는 언론"
[언론정보학회 학술대회] 'K-트럼피즘' 윤석열 정부 1년 "의미 없는 '자유', 자유민주적 제도 질식시켜" 포퓰리즘·파시즘·탈진실 가속화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트럼피즘'(Trumpism).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당선과 함께 불어닥친 파시즘, 우파포퓰리즘, 반지성주의, 탈진실 등의 경향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윤석열 정권 1년은 'K 트럼피즘'에 가까웠고, 언론과 언론학계는 무력했다는 진단이 제기된다. 윤석열 정권이 자유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이른바 '대안적 사실'을 만들어낼 때 권력감시와 사실보도를 사명으로 삼는 언론은 따라가기 바빴다는 지적이다. 윤석열 정부의 '전도성'이 언론 등 자유민주적 합의로 탄생한 제도와 기관을 질식시키고 있다.
27일 한국언론정보학회 봄철정기학술대회에서 '윤석열 정권 1년, 한국언론과 민주주의 역사의 퇴행'을 주제로 한 특별 세미나가 열렸다. 발제를 맡은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는 윤석열 정권에서의 언론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국정철학부터 살펴야 하는데 이를 정의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자유, 민주라는 추상적 가치를 내세우지만 통상 집권 1년차에 나타나는 통치철학이라는 게 보이지 않고, 이걸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가 주어졌다고 했다.
정 교수는 '전도성'이 윤석열 정부의 특징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정부가 자유, 민주주의, 반포퓰리즘, 지성, 과학 등을 내세우면서 반자유, 반민주, 포퓰리즘, 반지성 행보를 걷는다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의미 없는 '자유'의 뒤로 자유민주적 기관과 제도가 질식되고 있다. 대표적 자유민주적 기관·제도는 행정권력을 감시할 수 있는 의회권력, 사법권력, 독립성과 표현의 자유를 가진 언론, 공통의 사실을 창안해내는 독립적·전문적 제도(대학 등)"라며 "우리의 인식세계를 같이 생각하도록 만들고, 우리가 동일한 토대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만들어주는 형식들인데, 이게 깨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후보자 시절 그렇게 언론자유를 강조했지만, 실질적으로 언론자유를 정면으로 탄압하는 행동이 끔찍할 정도로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최근 (후쿠시마)오염수 (방류)사태에서 과학을 전유하는 모습을 나타낸다"며 "'과학은 우리에 의해 전유되어 있고 너희들은 괴담·반지성주의'라고 얘기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말하는 것과 가리키는 것, 지시하는 것과 실제 내용이 아무것도 일치하지 않는데 굳이 말하자면 이 '전도성'이 정부를 요약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이 같은 윤석열 정부의 특징은 민족주의를 제외한 트럼피즘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트럼피즘의 특징은 크게 민족주의, 포퓰리즘 성향, 파시즘 경향, 정체성 정치, 반지성주의와 탈진실적 태도를 나타낸다"며 "여기서 민족주의는 윤석열 정부에서 빠져야 한다. 이유는 비교적 쉽게 설명된다. 우리나라 보수는 원래 민족주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전도성, 트럼피즘을 전면화하는 데 언론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봤다. 정 교수는 "제가 강조하는 것은 타블로이드 리얼리즘(황색언론 사실주의)이다. 미국이 폭스뉴스·시사라디오와 트럼프가 주고받으면서 '대안적 사실'을 창조해냈던 것처럼 한국은 종편·극우유투버가 만들어내는 대안적 현실이 윤석열 정부와 관계자들에게 상호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그 결과 전도성이 전면화된다. 이 전도성은 정상적인 리버럴(자유주의) 언론이라면 공유하기가 어렵지만, 우리 언론은 기가 막히게 공유한다"고 했다.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은 트럼프 정부 백악관 선임고문 캘리언 콘웨이가 만들어 낸 신조어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모인 군중 규모가 어느 때보다 적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백악관은 "역사상 최대 인파가 몰렸다"고 주장했다. 항공사진을 통해 백악관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콘웨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안적 사실을 제시한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폈다. 이후 대안적 사실은 탈진실(post truth) 시대를 대표하는 단어가 됐다.
정 교수는 "잠깐 긴장이 흘렀던 국면이 '바이든·날리면'이다. 다들 보도했으니 '이건 아니지 않아?' 잠시 저항했지만 '날리면'으로 바뀌는 순간 싹 재편되는 모습이었다"며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얘기할 수 있는 언론이 거의 없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본 것 같아' '멋있는 옷을 입었다' 포장해주는 자들도 나타나는데, 언론으로서 결격사유"라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윤석열 정부는 조지오웰이 얘기(저서 '1984')했던 것처럼 국방부를 평화부로 의도적으로 비트는 전략이 아니라, 실제로 자기는 그걸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 정도로 진짜배기 믿음을 가지고 있다"며 "여기에 언론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으나 그들과 동조화되면서 새로운 픽션을 만들어내는 능한 존재가 되고 있다"고 했다.
정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실권을 잃더라도 전도성은 유지될 것이며, 이를 바꿔내기 위한 미디어환경이 마련되지 못했다고 했다. 정 교수는 "윤석열 정부는 3년차부터 분명 힘이 빠질 것이고, 그때 우리나라 하이에나 저널리즘은 분명 물어 뜯을 것"이라며 "그런데 트럼프가 사라졌어도 트럼피즘이 결국 공화당을 먹었듯, 한국 정치도 상당 부분 (윤석열 정부 전도성에) 먹힐 것이다. 이 먹혀가는 과정에 저항할 수 있도록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구조와 미디어환경을 재편해내지 못한 게 뼈아프다"고 했다.
정 교수는 윤석열 정부, 트럼피즘을 긍정하는 이들은 개별 이익에 주목하고, 미세한 공정성·불공정상에 민감하며, 밈(meme, 재미있는 말과 행동을 온라인상에서 모방·재가공하는 콘텐츠)을 자유자재로 활용해 조롱·멸시·혐오를 정치적 동력으로 활용한다고 했다. 이어 정 교수는 "이들에게 정치는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다, 그림 보지 말고 책을 읽어라고 얘기해서 설득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토론에서는 저널리즘적 대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이어졌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민주주의 이상의 정치체제 이즘(ism, 주의)이 가능한가에 관해 우리가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민주주의 측면에서 오히려 접근을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닐까"라며 "민주주의 관점과 우리 현실에서 저널리즘 기능이 어떻게 가능하고, 어디서 안되는지 이런 걸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걸(저널리즘의 기능) 지키는 언론이 정말 없는가. 언론사는 없을지 몰라도 그걸 지키려는 언론인은 없는가. 시민들은 정말 다 (저널리즘 기능을)부정하고 있는가"라며 "민주주의에 필요한 저널리즘 기능을 어떻게 다시 재구축할 것인지 이 문제를 더 논의하는 게 급선무 아닐까. 현실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변상욱 전 CBS 대기자는 언론의 소유구조 문제, 내부 정치갈등 문제, 하향식 의사결정 구조가 대안을 모색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했다. 변 전 대기자는 "언론을 소유하고 있는 건설·토건 등 자본의 문제, (공영방송)이사를 정당이 좌지우지하는 문제가 있다"며 "내부는 복수노조를 통해 정치적으로 양극화되었고, 이들은 폴리널리스트(politician+journalist, '정치인'과 '언론인'의 합성어) 선배들과 연락한다. MC를 징계하고, 출연자를 걸러내는 등 예전 한나라당, 새누리당 때와는 전혀 다른 신박한 방법들이 나오는데 언론 내부와 (정치)유대가 강화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라고 했다.
변 전 기자는 "언론사 내부에서 재량과 자율이라고 하는 것은 극도로 양극화 돼있다. 사실상 젊은 기자들에게 재량은 거의 없다"며 "예를 들어 페미니즘 때문에 미친 듯 싸웠던 학생이 기자가 됐는데 생산하는 기사는 '군대 간 남성들에게 특혜를 더 줘야 한다'는 것이다. 데스크가 클릭 수를 올리기 위해 '여혐기사가 더 먹히니까 바꿔 써' 하면 이 학생은 이런 기사를 쓰면서 말 한 마디 못한다"고 했다. 변 전 기자는 "저희 때와 다른 게, 어차피 떠날 언론사니까 기자들이 저항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며 "내후년에 떠날지, 더 좋은 언론사로 점프하거나 다른 시험을 준비하거나 해서 내부 저항이 결속되지 않는다"고 했다.
유승현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는 언론인에 대한 지적보다 언론이 처한 환경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유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언론(정책) 방향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전략적이고 정교하다. (포털)뉴스제휴평가위원회가 멈춰섰다"며 "플랫폼이 자체적으로 구축한 기구들을 오래동안 유지하면서 제도화시켰던 것을 멈추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우리나라 언론의 문제,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얘기 이전에 그들이 먹고사는 문제인 약한고리를 직접적이고 전략적으로 건드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 교수는 "언론의 책무와 포스트 저널리즘을 우리가 지금 과연 질문할 수 있는 문제인가 생각해 볼 측면이 있다"며 "언론인을 비난하는 상황 같은 것만 보지 말고, 디지털 미디어 환경 변화에서 언론의 재구조화가 가능할 것인가를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유 교수는 대안을 시민들과 함께 모색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 교수는 "시민들, 이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이용자들이 우리보다 더 많은 대안을 찾아가려고 하거나, 극복방안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며 "시민이 언론 문제를 본격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이 형식적으로라도 마련될 수 있도록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김수정 중앙대 강사(언론정보학회 총무이사)는 언론학계가 윤석열 정부의 언론관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김 강사는 "도어스테핑(출근길문답)이 중단되었을 때 한 언론사 책임으로 문제가 바뀌고, (취재진)비행기 탑승 거부가 됐을 때 특정 언론사에 책임을 지우면서 문제의 본질은 묻히는 상황에 질문을 던져야 했다"며 "그 질문의 목소리가 몇몇 미디어 비평지와 학자들에게 있었지만 학계에서 공통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강사는 "심지어 TV조선 재승인 심사와 관련해 감사원 감사와 고강도 수사가 이뤄지는데 학계 공통의 목소리를 내자고 했을 때도 불편해하거나 의심하는 부분을 느꼈다"면서 "MBC, TBS, YTN 등 미디어기업 사영화 우려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목소리 한 번 학계에서 나온 적 있나"라고 따져 물었다. 김 강사는 "정치권에서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나 건설노조에 관해 나온 발언은 '북핵과 같은 위협', '건폭'이다. 특정 집단을 싸워야 할 대상으로 만드는 데 대해 목소리를 내고 연구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정훈 신한대 교수는 1800년대 만들어진 저널리즘 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은 한 언론에 대한 기대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1833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영미식 저널리즘 모델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기업이든 대학이든 정당이든 뭐든 언론처럼 하나도 안 변한 조직은 없다"며 "언론의 자유, 객관주의, 전문직 주의, 이 골든 트라이앵글을 부여잡고 자기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고 외치고 있는데 뭘 하는지는 잘 모르는 상태인 게 똑같다"고 했다.
이 교수는 "중세 이후에 지구가 가지고 있는 자유주의 모델, 자본주의가 지구를 착취하는 모델이 종언을 고했다고 본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자유와 공정'은 능력주의에 대한 수사적 포장이고, 냉전과 신자유주의로 되돌아가겠다는 것밖에는 안 된다"며 "질문을 바꿔 언론은 왜 그러고 있느냐. 언론은 변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지금의 구도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는데 우리 언론은 그걸 해본 적도 없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되는지도 잘 모르는 듯하다"며 "언론이 무기력한 건 하던 대로 해왔을 뿐이지 더 나빠져서 그런 것이 아니다. 새 모델을 찾는 일을 학자들이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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