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참에 공영방송 공적재원 제도화 논의를"

[수신료 분리징수 긴급 특별 세미나] 언론학자들 "분리징수 찬반 프레임 벗어나 제도 고민해야" 공영방송 공적가치 구현 위해 '조세전환' 의견도

2023-05-04     송창한 기자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대통령실이 추진하는 TV수신료 분리징수 논란은 오래전 종결된 사안이다. 헌법재판소는 수신료를 시청료가 아닌 '특별부담금'으로 규정하면서 유료방송과의 '이중부담'이란 없다고 결정했다. 

수신료 분리징수 프레임에서 벗어나 공영방송의 안정적 공적재원을 담보하는 수신료 제도를 논의해야 한다는 언론학자들의 의견이 개진됐다. 학자들은 세계 각국처럼 수신료를 세금으로 전환하는 제도적 논의와 함께 KBS의 구체적인 공적책무와 혁신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대통령실의 부당한 분리징수 추진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KBS공영미디어연구소 주최로 열린 수신료 분리징수 긴급 특별 세미나 (사진=KBS) 

세계 주요 공영방송 공적재원 유지·강화

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는 한국언론정보학회와 KBS공영미디어연구소 주최로 '수신료 분리징수 긴급 특별 세미나'가 열렸다.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의 발제를 종합하면 세계 주요 공영방송사는 수신료 등 공적 자금을 재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민의힘 등이 주장하는 '세계 공영방송 수신료 폐지'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주요 국가는 수신료, 부담금, 공공서비스세, 정부예산 등으로 공영방송의 공적재원을 담보하고 있다. 

김 소장은 "미디어 기술이 발전하고 방송 이용행태가 변화하고 있지만 해외 주요국에서 공영방송을 포함한 공공미디어서비스의 주요 재원으로 공잭재원의 중요성은 여전히 유지·강조되고 있다"며 "수신료 분리 징수는 현 정부 미디어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등장했다고 보기 어렵다. 사회적 논의가 없었고 이례적으로 대통령실이 직접 이 문제를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KBS 길들이기'라는 정치적 목적이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 방송연합(EBU, European Broadcasting Union)에 가입된 56개국 중 다수 국가의 공공서비스미디어가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2021년 기준 EBU 지역 공공서비스미디어는 재원의 77%가 공적재원이다. 김 소장은 "29개 EBU 시장에서 주된 수입원으로 국가 예산을 채택하고 있으며 라이센스 피(Licence Fee, 수신료 등)가 20개국, 국가 예산 외 기금이 2개국으로 나타난다"며 "EBU에서 빅5에 해당하는 국가 중 4개국(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은 여전히 라이센스 피를 주요 재원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EBU는 수신료를 포함한 공적기금 조달 원칙으로 ▲독립성 ▲안정성과 적절성 ▲공정성과 정당성 ▲투명성과 책임성 등을 내세우고 있다. 김 소장은 "여기에서 독립성은 ‘정치적 간섭으로 부터의 독립'을 강조하고 있으며, 공적 기금은 '정치가 아닌 비용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표현한다"고 부연했다. 정치권력의 수신료 간섭을 차단하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는 설명이다.

심영섭 교수는 "주요 국가가 수신료를 폐지한다는 것은 공영방송의 재원을 마련해놓는다는 전환의 의미로, 그걸 오해하고 곡해하면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오게 된다"며 북유럽 사례를 들었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는 수신료가 아닌 공공서비스세를 걷는다. 공영미디어 운영을 위한 세금이기 때문에 개인소득에 따라 징수액이 달라지며 국세청이 세금을 징수하기 때문에 분리징수가 자동으로 이뤄진다. 이것을 수신료 폐지, 수신료 분리징수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심 교수는 한국 수신료의 제도적 기반이 부족하다며 "기본적으로 방송법에서 수신료의 성격과 범위에 대한 재규정이 필요한 상황이며 이를 토대로 공영방송의 역할, 정체성, 운영방향에 대한 법제도 개선과 함께 국민여론 수렴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심 교수는 특별부담금인 수신료를 특별목적세 형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파와 수상기를 근간으로 하는 수신료 개념이 방송·통신 융합 환경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심 교수는 "OTT 우위시대를 대비한 미디어 이용환경 변화와 인구통계학적 특징을 고려한 재원정책이 필요하다"며 "해외 주요 국가에서는 TV가 없는 가구의 증가 추세에 따라 수신료 징수 대상이 감소하고, 스마트 미디어를 활용한 공영방송 콘텐츠 이용이 증가하는 추세에 부합하게 디지털서비스세, 기금제도 등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발제자료 갈무리)

"수신료 제도의 사회화"

토론에 나선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정부여당의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에 찬성·반대로 대응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공공성 가치를 기준으로 공영방송과 수신료 제도를 근본적으로 고민해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각자도생이 유일한 가치가 된 것처럼 사적 이해관계가 중요한 사회가 된 듯 하지만, 우리사회가 공공성 가치를 포기하면 구성원이 안전하게 살 수 있나"라며 "사적 영역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국가와 사회가 함께 해결해나가는 현대적 공공성 개념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공영방송 수신료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SNS·OTT 등 엄청나게 많은 매체가 생겨났지만 공공성 가치에 따라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했다. 공공성 가치를 위해 공영방송의 존재가 훨씬 중요해진 것"이라며 "수신료 제도를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게 필요한데, 그러려면 공론화 작업, 전문가 중심 위원회 구성 등을 통해 공영방송 공적재원에 대한 종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수신료 제도를 KBS가 제안하고 국회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신료 제도의 사회화가 필요하다"며 "KBS 구성원들과 얘기하면서 수신료 제도를 사회하자고 했을 때 거부하는 분들이 있었다. KBS가 주도해서 실패했다면, 세금이든 분담금이든 공영방송의 공적재원을 사회가 마련해준다는 의미로 의제를 전환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대통령실 국민제안 홈페이지 갈무리 

김희경 미디어미래연구소 박사는 서울시와 서울시의회에 의해 예산이 대폭 삭감된 TBS 사례를 거론하며 공영방송의 재원은 정치적 의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경영진이 물러나서 조례 폐지가 번복되고 예산이 투입됐나"라며 "그 이후 얘기를 아무도 하지 않는데, 정치적 아젠다로 비화하면서 예산상황은 그대로고, 청취율은 떨어졌고, 비정규직은 해고되고, PD와 기자들은 멀티태스킹에 시달린다"고 했다. 김 박사는 "시의회 가서 예산 더 책정해달라고 얘기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아젠다가 되어버린다"며 "한 번 제도가 망가지면 되살아나기 어렵고, 한 번 조직이 와해되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짚었다. 

김 박사는 공영방송은 필수제에 가깝다며 수신료의 조세 전환이라는 새 의제를 던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박사는 "우리가 음료수만 먹고 살 수는 없다. 물을 먹어야 한다"며 "필수제에 가까운 공영방송은 대체제가 없다. 조세제도 도입이 지금 할 수 있는 진화된 의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가장 트렌디하고 가벼운 수단을 가지고 가장 무거운 책임을 공영방송이 조세로 실현하면 된다"며 "(책임이)너무 무거워서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KBS가 온라인 등에서 어떻게 트렌디하게 완수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홍종윤 서울대 연구교수는 KBS가 국민들로부터 애정을 확보하기 위한 자체적인 혁신안을 내놓는 것이 순서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수신료 분리징수 프레임에 말리면 안 된다. 결론은 KBS 자체가 국민들의 애정을 얼마나 담보하는가"라며 "수신료 문제를 포함해 모든 혁신의 출발은 KBS다. KBS 구성원들이 지금 얼마나 구조적인 경직성을 깨려고 하는지, 새로운 제작시스템 화두를 던지는지가 논의되어야 한다"고 했다. 

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KBS공영미디어연구소 주최로 열린 수신료 분리징수 긴급 특별 세미나 (사진=KBS) 

"정순신 보도 아니면 설명 안 돼"

엄경철 KBS 공영미디어연구소 소장은 대통령실이 KBS의 비판 보도 때문에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국민제안은 KBS가 정순신 변호사 아들 학폭사건을 보도한 지 2주일여 만에 나왔다. KBS [단독] 보도로 검찰 출신인 정 변호사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지 하루 만에 자리에서 내려왔다. 

엄 소장은 "정부 국정과제에 공공미디어가 언급돼 있지만 수신료 분리징수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갑자기 3월 9일 국민제안이 튀어나왔다"며 "영국 대처 정부가 포클랜드 전쟁 관련해 BBC의 인권보도 때문에 불편해하면서 민영화, 수신료 선택제 등 액션을 취했었다. 부정적 보도의 여파가 아니라면 이 국민제안이 왜 나왔을까 이해를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대통령실이 KBS가 정 변호사 임명사실을 기다렸다가 보도한 거 아니냐고 오해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기자는 5년 전 보도를 했었는데 정순신이라는 이름이 너무 특이해서 기억했고, 취재물을 꺼내 보도를 하게 된 것"이라며 "방송에서 충분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대통령실이 달성하고 싶은 목적과 공익이 무엇인가. 헌재는 유료플랫폼 TV를 보는 국민들이 이중부담을 진다는 주장에 대해 명쾌하게 이중부담이 아니라고 결정했고, 서울행정법원은 방송내용에 대한 불만으로 수신료 납부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며 "수신료 분리징수가 현실화되면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다양성과 소수자를 보호하는 KBS의 공적 기능이 약화될 우려가 명백하다"고 말했다. 

정준희 한양대 교수는 KBS가 할 수 있는 현실적 대응은 법적대응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기존 헌재 결정과 행정법원 결정을 바탕으로 법이 규정하고 있는 공영방송의 재정안정성의 침해라는 것을 다퉈야 한다. 법원이든 헌재든 (법적대응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법적대응을 할 수 있다고)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수신료 분리징수는 논의하고 싶지 않다. 시위를 해야 할 문제"라며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SNS 한 줄로 '여성가족부 폐지' 썼을 때 여성학자, 행정학자들이 느꼈을 자괴감을 느낀다. 나쁜 포퓰리즘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대중이 가지고 있는 공영방송에 대한 불만을 털어주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문제는 지나치게 복잡한 현실을 아주 단순하게 바꿔 현수막을 걸고 대중을 자극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온당한가. KBS가 사람들 쫓아다니면서 돈 걷으러 다니는 것이 맞나"라고 따져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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