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만은 안 된다' 국힘, 권한쟁의 카드 만지작

'연이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 부담… "헌재라도 갈 것" 방송법 '법안무덤' 보낸 여당… 본회의 직회부에 "국회법 위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손 놓더니 이제와 '대안 마련' 착수

2023-04-04     송창한 기자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둔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방송법 개정안(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을 헌법재판소로 가져가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민의힘은 방송법 개정안의 본회의 직회부는 절차상 위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공언했던 기존 입장과 차이가 있다. 

국민의힘은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위원장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에서 방송법 개정안을 심사 중이었는데 더불어민주당이 법사위 회부 60일이 지났다는 이유로 본회의 직회부를 강행, 국회법을 위반했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1월 본회의 직회부를 의식해 방송법 개정안을 '법안 무덤'으로 불리는 법사위 법안2소위(소위원장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에 회부했다.

공영방송 3사 사옥 

4일 중앙일보는 기사 <"이건 다르다, 헌재라도 갈 것"…방송법 반격 벼르는 與의 카드>에서 "국민의힘은 이번에는 법안 처리를 사전에 제동 걸겠다며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며 "양곡관리법과 달리 방송법 개정안을 직회부하는 과정에서 '국회법 위반'이 발생했다는 게 국민의힘 주장이다. 이미 여당 법사위원들은 국회법 위반 소지에 대해 자체 법리 검토를 마쳤다"고 보도했다.

법사위 핵심 관계자는 "방송법은 법사위 산하 법안심사 2소위에서 계속 심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법사위에 회부된 지 60일이 지났다는 이유 하나만을 가지고 민주당이 본회의에 직회부를 시켰다"면서 "국회의장을 설득해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는 걸 사전에 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사위 소속 한 여당 의원은 "국회의장 설득이 불발될 경우를 대비해, 당 내부에서 권한쟁의심판 청구도 검토하고 있다"며 "또다시 대통령 거부권을 뽑아들 게 아니라면, 입법 과정의 절차적 하자에 대해 헌재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해 다퉈볼 수 있는데, 이는 지도부의 정무적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방송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2일 상임위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를 통과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지난 1월 16일 김도읍 법사위원장은 방송법 개정안을 비롯한 쟁점법안을 법사위에 직권으로 상정해 법안2소위에 회부했다. 법사위 법안2소위는 '법안 무덤' '법안의 늪'으로 불린다. 민주당 법사위원들은 김도읍 법사위원장의 직권상정·회부는 국회법에 위배된다며 퇴장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국회법 86조 5항 등에 따라 방송법 개정안의 본회의 부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국회법 86조 5항은 '법사위는 회부된 법률안에 대해 체계와 자구의 심사 범위를 벗어나 심사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법사위가 상원 역할을 하는 것을 막자는 차원에서 신설된 조항"이라며 "'체계심사'는 상하위법 간의 충돌문제, '자구심사'는 문구가 맞지 않는 정도를 보는 것이다. 법사위 법안2소위에서 체계·자구로 심사할 만한 것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김도읍 법사위원장은 방송법 개정안 등의 직권상정·회부가 본회의 직회부를 의식한 행위였음을 인정했다. 2021년 7월 여야 원내대표는 21대 국회 후반기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이 맡기로 합의하면서 국회법 제86조 3항을 개정했다. '법사위가 회부된 법안에 대해 이유없이 6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을 경우 소관 상임위원장은 간사와 협의하거나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국회의장에게 본회의 부의를 요구한다'는 내용이다. 

김도읍 법사위원장은 해당 조문의 '이유 없이'에 주목해 쟁점 법안을 법안2소위로 보냈다고 했다. 법안2소위 논의가 이어지면 법안 계류의 '이유'가 있게 된다는 얘기다. 당시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왜 이렇게까지 무리를 할까 생각해보면 결국 방송법·간호법 등 처리해야 할 것까지 2소위로 보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유 없이'를 굉장히 부각시키려고 하는 것 아닌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에 김도읍 법사위원장은 "저는 심도있는 토론을 위해서 2소위 회부하자는 결정을 했다. '이유 없이', 맞다"고 답했다. 

가장 최근의 권한쟁의심판 사례는 '검찰 수사권 조정' 법안이다. 헌재는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에 대해 국회 통과 과정에서 국회의원 권한 침해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법 자체를 무효로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 2009년 '날치기' 논란이 일었던 미디어법에 대해서도 국회의원 권한 침해는 인정되지만 미디어법의 효력에는 문제가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방송법 개정안 본회의 통과 시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던 국민의힘이 권한쟁의심판 카드를 꺼낸 배경으로 연속적인 거부권 행사에 따른 정치적 부담과 내년 총선이 꼽힌다. 중앙일보는 "국민의힘이 방송법 문제에 신경을 바짝 쓰는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방송 환경이 야당에 편향될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4일 기사에서 민주당이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외에도 대통령 거부권이 예고된 방송법, 간호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운 이유에 대해 분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정치적으로 '실보다 득이 크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한국일보는 "거부권은 대통령의 강력한 무기이지만 동시에 자주 쓰면 오만과 독선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양날의 검'"이라며 "3권 분립 등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될수록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건수가 줄어드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설명했다. 한국일보는 "이승만 전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 건수가 45회에 달했지만 박정희(5회), 노태우(7회), 김영삼·김대중(각각 0회), 노무현(6회) 전 대통령 당시엔 크게 줄어들었다"며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건수가 각각 1회, 2회에 그쳤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거부권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국일보는 "여권이 반발하는 법안을 의석수를 앞세워 강행 처리하는 사례가 늘어날수록 '거대 야당의 입법 독주'라는 프레임에 갇힐 우려도 있다"고 했다. 

지난 1월 16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더불어민주당 위원들이 김도읍 위원장에게 항의하며 회의장을 떠나 회의가 반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국민의힘은 방송법 개정안의 절차적 하자를 다투는 것과 별개로 조만간 자체 방송법 개정안 마련에 착수한다. 중앙일보는 "당 정책위원회 산하에 미디어 특위를 별도로 꾸려 방송법 개정 관련 당정 협의를 본격화하겠다는 구상"이라고 전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기존 국민의힘 ICT 미디어진흥특위는 당정 협의 권한이 없으므로, 정책위에 별도 전문 특위를 꾸려 논의에 속도를 뽑을 생각"이라며 "개정 논의를 단순히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국한하지 않고, 방송법 전부 개정안을 방불케 할 대개편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대안없는 반대'를 지속해왔다. 보수성향 언론학자인 황근 선문대 교수는 지난 1월 국민의힘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민주당이 방송법 개정안을 추진하면 여권은 대통령 거부권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민의힘은 정권교체 이후 정치권의 공영방송 이사 추천 관행을 유지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과방위 국민의힘 간사 박성중 의원은 "효율성이나 비용 등을 감안해서 현행 유지(정치권 추천 관행)가 합리적이라고 2008년에 합의된 바 있다"며 "선거라는 대의민주주의로 당선된 여야 교섭단체의 추천이 그래도 민주적인 방식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공영방송 이사회는 정치권 추천 관행에 의해 여야 7대4(KBS 이사회), 6대3(방송문화진흥회, MBC 최대주주) 구조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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