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학자, 공영방송 이사회 다원화 "대찬성"
[언론학회·방송학회 특별세미나] 윤석민 "'정치권 나눠먹기' 고친다는데 어떤 명분으로 반대하나" 강형철 "'비제도적 관행' 정치적 후견주의 끊는 논의 병행해야"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보수성향 언론학자 윤석민 서울대 교수가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의 방향성에 대해 "대찬성한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집권여당 시절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지 못한 민주당의 사과가 전제돼야 하고, 민주당 법안에 명시된 추천주체가 더욱 다원화 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BS 이사를 역임한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는 정치권의 공영방송 추천이 '비제도적 관행'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며 제도개선만큼이나 관행을 끊어낼 방안을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9일 한국언론학회와 한국방송학회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언론의 자유와 민주적 방송제도 구축을 위한 우리의 과제'라는 주제로 특별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들 학회는 윤석열 정부 들어 언론자유와 공·민영 방송 거버넌스에 대한 논쟁이 심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 학회는 관련 논쟁이 정쟁으로 흐르지 않고 바람직한 제도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정책적 논의를 계속해나간다는 계획이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다원화, 어떤 명분으로 반대할 수 있겠나"
윤석민 교수는 민주당이 발의한 '공영방송 정치적 독립을 위한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큰 방향에서 대찬성"이라고 밝혔다. 윤 교수는 보수성향 언론학자로서 지난해 5월부터 조선일보 칼럼 등을 통해 공영방송 지배구조 추천 주체를 다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공영방송 이사는)공모를 통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심의해 결정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비공식적으로 '정치권력의 나눠먹기식'이 된다는 건 모두가 안다"며 "직능단체, 시청자위원회, 학회, 국회 등 다원화된 방식으로 공영방송 이사회를 추천해 구성하는 방식을 큰 방향에서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정치권력이 나눠먹는 방식을 여러 기구에서 참여해서 다원화시킨다는데 어떤 이유와 명분으로 반대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현재 공영방송 이사 수를 총 21명으로 늘리고, 이사 추천 주체를 다양화 하는 법안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했다. 21명의 공영방송 이사는 ▲국회 5명 ▲공영방송 시청자위원회 4명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 6명 ▲방송기자연합회·한국PD연합회·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각 2인씩 총 6명 등이 추천하게 된다. 그동안 공영방송 이사는 정치권 추천 관행에 의해 여야 7대4(KBS 이사회), 6대3(방송문화진흥회, MBC 최대주주) 구조로 구성돼 왔다.
법안에 따르면 공영방송 사장은 '국민추천위원회'를 구성해 후보를 추리고 이사회가 임명·제청하는 방식으로 선출된다. 성별·연령별·지역 등을 고려해 100명의 '공영방송 사장 국민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사장 후보를 추천한다. 이후 공영방송 이사회는 투표를 실시해 재적이사 3분의 2이상 찬성(특별다수제)을 얻은 후보를 사장으로 임명·제청한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언론노조 공영방송 영구장악법'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법안상 공영방송 이사 추천 주체인 방송·미디어학회, 공영방송 시청자위원회, 직능단체 등을 싸잡아 '친민주당·친언론노조 세력'으로 규정하고, 법안 본회의 통과 시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이 발의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은 정치권 추천을 7대6으로 명문화하는 안이다.
윤 교수는 다만 민주당이 해당 법안을 추진할 때 지난 5년 동안 집권여당으로서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지 못한 데 대한 사과를 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윤 교수는 "민주당은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이전에 공영방송 거버넌스를 바꾸겠다고 약속해왔던 정치집단"이라며 "자기들이 정치권력을 차지하자 완전히 입장을 바꾸지 않았나. 대통령 권력을 상실한 다음 법안을 들고 나오는 걸 보면서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할지라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민주당 법안의 공영방송 이사 추천 주체에 대해 "디테일로 들어가보면 굉장히 숫자계산을 한 듯한 느낌"이라고 꼬집었다. 윤 교수는 "다양한 추천을 받는 공영방송 시청자위원회는 결국 현 집행부가 구성한다"며 "직능단체는 기자·PD·방송기술인으로 특정돼 있는데 제가 아는 직능단체만 10개가 넘는다. 저는 동의하지 않지만 직능단체는 방송사 노조의 2중대라는 얘기도 듣고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방송·미디어학회 추천에 대해서도 "전문성이라는 게 꼭 언론영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담당하는 헌법학회, 미디어경영 문제에 관한 경영관련학회 등이 배제되는 게 타당한가"라며 "세부적인 안에 대해서는 이제부터 논의 시작이다. 논의를 이대로 끝낼 수 없고 지금부터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공영방송 최고의사결정기구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현업단체들은 ▲학회 선정은 방송통신위원장이 아닌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가 한다는 점 ▲시청자위원회는 학부모·소비자·여성·청소년·변호사·학술·소외계층권익대변·문화·과학기술·인권·노동·경제 등의 단체에서 추천한 인사들로 구성된다는 점 ▲각 직능단체의 구성이 비지상파 소속 회원들을 다양하게 포함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국민의힘 주장에 반박하고 있다.
"입법·행정권력 나뉜 지금이 적기"
조항제 부산대 교수는 올해로 공영방송이 50주년을 맞았지만 제도로 안착되지 못했다며 그 배경에 '정치적 후견주의'가 있다고 진단했다. 조 교수는 "정치가 방송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인사권을 매개로 정치권이 후견인이 되고 방송이 피후견인이 되는 관계"라며 "강력한 경로의존, 과거 답습이 이뤄지고 있다. 단절의 계기가 될 수 있었던 촛불탄핵 이후 문재인 정부 역시 고리를 끊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 교수는 "공영방송 체제 개편은 현 집권체제의 양보를 전제로 가능하다.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이 나뉜 지금의 정치구도는 경로의존을 단절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민주당은 정치적 후견주의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안을 내놓았다. 사장 선출 시 특별다수제를 도입했기 때문에 정치를 배제하고 합의를 강제하고 있어 정치적 후견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논의할만한 하나의 방안"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민주당 법안이 국민 대표성이 떨어지지만 미디어 유관성·전문성을 강조한 안이라며 급변하는 미디어환경에 대응하는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고 부연했다.
조 교수는 과거 민주당이 제안하고 현재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여야 7대6 추천안은 한국의 양당정치 구도 속에서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후견주의를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국민적 대표성을 갖는 가장 전형적인 것이 대통령과 의회다. 그런데 정체성 측면에서 공영방송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것을 가지고 오게 된다"며 "정치적 후견주의가 강하게 나타나는 구조다. 국회가 만약 다수 정당으로 구성돼 있고, 유럽처럼 비례대표제가 활성화되어있다면 다원화 가능성은 있지만 한국의 경우 전혀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2010년 이후 나타난 법적·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조 교수는 ▲공영방송 사장의 인사권에 대한 정권의 개입은 부당하다(정연주 전 KBS 사장 해임에 대한 판결) ▲방송의 공정성에 대한 근로조건과 시스템을 요구하는 파업은 정당하다(언론노조 MBC본부의 2012년 파업에 대한 판결) ▲공영방송 보도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불법이다(이정현 전 대통령 홍보수석의 보도 개입 판결) ▲공영방송 사장이 보도 통제로 시청자의 신뢰를 훼손해 해임된 것은 정당하다(길환영 전 KBS 사장 해임에 대한 판결) ▲기본권으로서 언론자유는 존중받아야 한다(언론중재법 개정안 철회) 등의 사례를 언급했다.
"이해관계 얽힌 '비공식적 제도' 정치적 후견주의, 끊어내야"
강형철 교수는 "공식적 제도는 바꿀 수 있지만 비공식적 제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게 역사적 제도주의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라며 공영방송 제도개선 논의 못지않게 정치권 추천 관행을 명확히 인지하고 바꿔내는 논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비공식적 제도가 오래되다보면 경로의존성을 갖게 되는데 이해관계가 합치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빼고 고치려 하면 이해관계의 합이 무너지고, 그래서 변화가 없는 것"이라며 "여기에 우리의 인지, 구상주의가 붙는다. 우리가 그렇다고 인지하면 비공식적 제도가 그렇게 가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비공식적 제도의 변화를 얘기해야 한다. 공영방송 이사 정할 때 7대4, 이런 거 없다"며 "제도 변화를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 관행 속에서 묻혀가지 않을 것인가, 비공식적 관행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얘기가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KBS 이사를 역임한 강 교수는 비공식 제도의 사례로 이사회 내에서 운영되는 '운영이사제'를 거론했다. 국회 상임위원회 여야 간사와 유사한 운영이사회를 구성하고 논의·합의하는 관행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그것을 없애보려고 했지만 이해관계가 쌓여있어 굉장한 어려움이 있었다. 간사에게 또 하나의 권력이 주어지고, 그 간사들이 주고받기를 하면서 이사회가 움직이게 된다"며 "운영이사를 줄이고 마지막에는 폐지했지만 불행하게도 시간이 지나니까 또다시 돌아가 있는 것을 봤다. 이런 관행을 어떻게 깰 것인가에 대해 더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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