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달라지지 않은 재판부…그러나

[기자수첩]1심과 항소심 사이에 공개된 수사기록 2000쪽에는?

2010-06-01     권순택 기자

서울고법 형사7부(김인욱 부장판사)는 31일 경찰특공대원 1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이충연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 등 2명에게 징역 5년, 김재호 씨 등 5명에게는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이는 1심보다 1년 적은 판결이다. 또 같은 혐의로 기소된 조인한 씨와 김성천 씨에게는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해 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재판부는 용산철거민 몇몇에게는 1심판결보다 1년씩 형량을 줄여 선고하기는 했지만 중형은 중형이다.

검찰의 주장을 또다시 그대로 받아들인 재판부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 화재는 피고인들 및 농성자들이 던진 화염병에 의해 발생했고 이 점에 관해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는 정도의 입증이 이뤄졌다”면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불법적 방법 때문에 우주보다 귀한 인간의 생명이 희생됐으므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경찰 진압을 적법한 공무집행으로 볼 수 없다’는 피고인 측 주장에 대해서는 “진압작전 준비가 다소 미흡한 점이 엿보이기는 하나 그 점만으로는 진압작전이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화재의 원인은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 때문이며 당시 경찰 진압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중형이 유지된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1심재판과 항소심 판결 그 기간 중에 있었던 경찰수사 2000쪽의 공개. 그 내용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인데….

“2000쪽에는 ‘화염병에서 나오는 형태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불길이 처마 틈으로 번졌다’라는 진압 경찰진술이 들어있다”

이 발언은 검찰에 의해 공개되지 않아 논란이 됐었던 용산참사에 대한 수사기록 2000쪽이 서울고법 형사7부에 의해 공개된 이 후 1월 15일 김형태 변호사가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렇게 재판이 진행되면서 피고인 측은 2000쪽에 포함돼 있던 경찰들의 진술을 통해 검찰의 주장을 반박해왔다. 화재의 원인을 화염병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2000쪽의 경찰특공대원들의 증언, “화염병은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당시 망루로 진입했던 경찰특공대의 진술은 어땠을까?

용산참사 당시 화재로 얼굴 등에 화상을 입었던 권 모 대원은 “증인은 화재가 날 당시 화염병을 보지 못하였는가요?”라는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 또한 2차 조사에서도 “2층에 있었는데 위에서 어떻게 불이 났는지 모르고 이따 보니까 1층에서도 불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라며 “1층에서도 어떻게 불이 올라오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진술했다.

정 모 대원은 “화염병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불똥이 떨어지는 것을 봤다”고 했다. 그리고 최 모 대원 역시 “위에서 떨어진 것이 불빛이었나. 아니면 화염병이었냐?”라는 질문에 “불빛으로 판단했다”고 답했다.

또한 석 모 대원은 “2차 진입한 뒤 화염병은 날아오지 않고 갑자기 회오리 같은 불길이 확 났었다”고 진술했으며, 배 모 대원과 조 모 대원은 각각 “망루 안에서 망루 안으로 화염병을 던진 적은 없다”, “망루안에서 화염병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 밖에도 피고인 측에서 공개한 경찰특공대원들이 진술은 이랬다.

“망루 안에서 화염병을 던진 적은 없지요?”- “예”
“증인이 2차 진입시 화염병이 날아오는 것을 본 적이 없고 어떻게 불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고 불이 아래서 위로 순식간에 확 올라왔다는 것이지요?” - “예”<조 모 대원>

“병 깨지는 소리가 나긴 하였으나 불이 붙지 않은 것으로 보아 화염병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안 모 대원>

그리고 이들의 위치는 바로 검찰이 화재가 시작됐다고 주장하는 곳으로부터 불과 2m 거리에 있었다.

재판부는 어떻게 ‘화염병은 보지 못했다’, ‘화염병이 아니라 불빛이 떨어졌다’, ‘화염병이 날아오는 것을 본 적이 없고 어떻게 불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는 경찰특공대원의 증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재는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이라고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일까? 단지 정황상 화재원인은 화염병밖에 없다고 판단해버린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증인들, “중지시켰을 겁니다”…재판부, “준비가 다소 미흡”

진압에 대한 경찰들의 진술 또한 이랬다.

“시설·점거농성관리지침이나 대테러진압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우리 지도부가 상황을 잘 몰랐으므로 조금 역부족이었던 것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이 모 서울경찰청 경비부장>

“제가 결정권자였다면 중지시켰을 것입니다. 저희가 완벽하게 준비를 하여 변수를 만들지 않았어야 하는데 유가족들에게 굉장히 죄스럽게 생각합니다.”<신 모 기동본부장>

그러나 재판부는 ‘준비가 다소 미흡’이라고만 판단했다.

그래서 안타깝다. 2000쪽의 수사기록은 재판부에 어떤 의미였을까? 1심재판과 항소심 사이에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경찰들의 증언이 공개됐으나 재판부의 선고는 달라지지 않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