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함께 우리는 억제되었던 원전의 위험성을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결국 정부도 탈원전에 속도를 조절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 과연 그래도 좋은지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전라남도 영광에 위치한 한빛원전 4호기에 대단히 심각한 사태가 무려 20년 동안이나 방치되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심지어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이 처음에는 이런 사실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사실까지 겹쳐 가깝게는 영광주민과 멀게는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는 것이다.

JTBC 보도에 의하면 한수원은 최근 한빛4호기의 증기발생기를 1년 먼저 교체할 것을 발표했다. 무려 2천억 원이나 하는 장치를 1년이나 이르게 교체한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문제는 바로 그 증기발생기에 11cm 가량의 망치로 보이는 금속이 20년 동안 방치되었다는 사실이다.

돌연 교체 발표에 "망치 있대" 술렁…은폐·축소 의혹 (JTBC 뉴스룸 보도 영상 갈무리)

원전의 증기발생기는 1mm의 미세한 관 8400개로 구성된 장치다. 그 가는 관에서 물을 끓여 발생한 수증기로 발전기 터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20년 동안 안에 금속 이물질이 방치되었는데 알지도 못했고, 사고도 없었다는 것은 그저 ‘운이 좋았다’라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5천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운에 맡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울 수밖에는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원전 위험에 대한 언론의 집단침묵이다. 불과 며칠 전 대만 원전 직원의 실수로 대규모 정전사태를 탈원전으로 인한 재앙처럼 보도하던 언론들의 호들갑을 생각하면 이 침묵은 더욱 수상하게 다가선다.

그러나 JTBC는 18일에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아니 전날보다 더 자세히 영광 한빛4호기의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 말만 안 했지 거의 단독보도나 다름없는 강제된 특종이었다. 같은 날 전날 JTBC가 힌트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금요일 저녁 모든 TV뉴스에 한빛4호기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원자로(한빛 원전) [연합뉴스TV 캡처]

살충제 계란에 대한 보도는 더욱 강화되었다. 그래서 한빛4호기에 대한 침묵은 더욱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불안에 떨어야 하는 것은 한빛원전 주변 주민들이다. 주민들은 18일 긴급회의를 열고 한수원 측을 고소, 고발을 포함한 강력한 법적 대응을 마련하기에 나설 것임을 JTBC는 전하고 있다.

현재 언론들은 살충제 계란을 실은 열차에 모두 올라탄 상태다. 그만큼 살충제 계란이 시민들에게 준 충격이 크다는 것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밴드웨곤 현상이라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반면 한빛4호기의 문제에 대해서는 안전불감증이 의심될 정도로 무관심하다. 이런 언론의 집단침묵과 밴드웨곤 사이의 온도차는 과연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장충기 문자 파동에 힌트가 있을지 모른다. 그런 의심을 터무니없다고 할 수 없는 분위기이다.

이유가 어디에 있든,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본 우리는 불안하다. 아니 불안해야만 한다. 다른 것과 달리 원전 사고는 말 그대로의 재앙을 뛰어넘는 재앙이 된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수원은 증기발생기 내 금속 이물질을 은폐하다가 인정하는 일이 있었고, 언론은 보도에 소극적이다. 이번 한빛4호기의 이물질 해프닝은 ‘운이 좋았다’가 아니라 ‘원전이 보내는 경고’로 받아들이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이번 살충제 달걀도 작년 10월의 경고를 무시해서 일어났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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