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중에 감탄 아닌 감탄이 유행이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살다 살다 정부행사 중계를 다 보고, 심지어 매번 울기까지 한다”는 식이다. 물론 조금의 과장도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다 문재인 대통령 덕분이다. 그리고 격식을 차려야 하는 정부행사이기에 한껏 파격일 수는 없겠지만 기존의 경직된 분위기가 많이 유연해지고, 이벤트가 보강된 것도 사실이다. 한마디로 볼 만 해진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런데 정부 행사에 정말 다른 의미와 재미를 주는 것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연설이다. 한두 번이 아니다. 매번 감동이고, 명연설이다. 대통령의 연설은 남의 써주지만 또 남이 쓴 것이 아닌 묘한 문장들로 구성된다. 이번 연설에는 대통령도 사흘을 매달려 첨삭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공을 들인 만큼 긴 연설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런 중에도 역시나 백미는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 캐릭터로 자리 잡게 된 '명명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열단원이며 몽골의 전염병을 근절시킨 의사 이태준 선생,
간도참변 취재 중 실종된 동아일보 기자 장덕준 선생,
무장독립단체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여사,
과학으로 민족의 힘을 키우고자 했던 과학자 김용관 선생,
독립군 결사대 단원이었던 영화감독 나운규 선생,
임청각의 주인이자 신흥무관학교를 세우신 독립운동가 이상룡 선생까지

8·15광복절과 5·18민주항쟁은 묘하게도 숫자가 앞뒤로 대칭이다. 두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희생자의 이름, 유공자의 이름을 불렀다. 아니 의인들의 이름이라고 통일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조금은 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5·18의 명명을 위로의 의미라면 8·15의 명명은 기억의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물론 위로에도 기억이 있고, 기억에도 기림이 있지만 그 날마다의 의미에 따라 방점의 위치만 달라지는 정도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명명의 수사법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어서 또 어떤 의인이 불리게 될지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한다. 이제 대통령의 연설은 당연히 그래야 하듯이 정부행사의 ‘꽃’이 되었다.

“역사를 잃으면 뿌리를 잃는 것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을 더 이상 잊혀진 영웅으로 남겨두지 말아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독립유공자인 고 조재형 씨 손자 조준희 씨에게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은 온갖 고난과 역경을 딛고 오늘을 맞은 나라이다. 당연히 의인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러나 그들에게 당연히 주어져야 할 훈장은 그동안 권력자 주변들과의 나눠먹기, 셀프 포상 등에 순서를 빼앗겼다. 자연스레 진짜 영웅들을 역사에서 지우려 했다. 심지어 임시정부의 존재조차 부정하려고 할 만큼 무도한 것이다.

때문에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져야 합니다. 국가에 헌신하면 3대까지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겠습니다”라는 대통령의 말과 의지는 단순한 보훈제도의 개선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더 깊은 의미가 담긴 것이다. 그것은 친일청산에 실패한 아픈 역사를 가진 우리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반성이자 최소한의 회복이기도 하다.

아주 작지만 큰 의미를 주는 것도 있었다. 지금까지 국가유공자가 사망했을 때에 유가족이 영구용 태극기를 직접 받아가거나 택배로 보냈던 것을 문재인 대통령은 “정말 면목 없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앞으로는 정부가 “직접 태극기를 전하고, 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높이겠다”고 했다. 미국영화에서나 봤던 정복을 입은 군인이 예의를 다해 유가족에게 국기를 전달하는 엄숙하고 근사한 장면을 이제 이 나라에서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설만 했다 하면 듣는 이들을 행복과 슬픔의 감정적 혼란에 빠뜨리는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많은 이벤트들이 있었지만 대통령의 연설과 함께 가장 감격스러운 장면은 아무래도 대통령 내외와 유공자들 그리고 출연자들이 무대 한가득 적신 태극기 물결일 것이다. 지난겨울 특정 세력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면서 왠지 모르게 꺼려지던 태극기가 비로소 제 빛을 찾아 반짝였다.

3·1운동으로부터 4·19 그리고 5·18까지. 불의에 항거하는 그 장엄과 광복과 이후 국가적으로 기쁜 축제에서는 가슴 벅차게 누렸던 감격까지. 태극기라서 가능했던 밝음이 유공자들에 의해서, 유공자들을 위해서 기꺼이 펄럭이면서 마침내 제 모습을 찾게 된 것도 무엇보다 다행한 일이었다. 광복절은 이처럼 무엇으로부터 되찾는 날이 분명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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