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가는 가사가 참 유치하다. 최근 트로트는 그것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지만 지금보다는 상당히 절제된 곡들 역시도 그렇다. 유행가가 피해갈 수 없는 주제가 역시나 사랑인 탓이다. 사랑에 빠진 당사자에게야 세상을 바꿔놓을 혁명 같은 것이지만 곁에서 보기엔 참 유치한 것인 경우가 많다. 당사자라 할지라도 지나고 보면 아픔이거나 회한이거나 혼자서 피식 웃고말 유치한 짓들이 기억을 뚫고 나오기 마련이다.

문주란의 명곡 중 이런 가사가 있다. "처음에 사랑할 때 그이는 씩씩한 남자였죠"로 시작했으나 결국 도착지점의 그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하는 철부지로 변해버린다. 마초의 상징이고, 주방의 파쇼라도 사랑에 빠진 현욱 역시 못나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필연적으로 모성에 대한 숨겨진 욕구, 쉽게 말해서 응석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시도 때도 없이 잘난 척은 빼놓지 않지만 그것도 알고 보면 자기 여자한테나 할 수 있는 응석일 따름이다.

늦은 밤 버스정류장에서 남녀상열지사를 버젓이 치룬 유경과 현욱은 며칠간의 고통에서 벗어나 버스에서 소곤소곤 밀어를 나눈다. 그때 오간 대화는 참 유치하다. 그때 유치하지 않으면 연애가 아닌 탓이다. (그걸 다 아는 작가는 연애하기 무지 힘들 것이다) 현실도 그런 면이 많기도 하지만, 연애가 특별히 달콤해지면 특히 드라마에서는 곧바로 위기가 닥쳐오기 마련이다.

두 사람의 연애사실을 사장에게 고자질해서 현욱을 쫓아낼 거라 신이 났던 설준석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다음날 바로 유경의 전체(에피타이저)에 시비를 걸어 긴장을 고조시킨다. 그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자, 국내파 요리사들에게 해외파들과의 급여 차이를 누설해 주방 내에 반란을 야기 시킨다. 사실 그것은 김산이 아닌 자기 자신이 한 일이었다. 조만간 쓰나미가 몰아닥칠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유경과 현욱은 여전히 손발 오그라드는 연애에 여념이 없다.

연애라고는 처음 해본 유경이 누군가에게 자랑하고픈 마음에 그닥 좋은 사이도 아니지만 아버지에게 두 남자의 이야기를 꺼내고, 당연히 부모입장에서야 김산을 택하라고 한다. 그걸 굳이 또 현욱에게 말하는 철부지 아가씨 유경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 사랑에 빠진 남자는 로비에서 유경을 만나 응석의 끝을 보여준다. 아버지와의 통화내용을 유경이 말하자 술김에도 뜨끔한 현욱은 새삼스럽게 넌 누가 더 좋냐는 투로 묻는다.

유경이 "부모의 반대를 무릎 쓴 말 안 듣는 딸?"하자 "됐다. 그럼"하더니 곧바로 유경에게 "너 효도하면 안 된다"하고 너스레를 떤다. 참 못났다. 라스페라의 버럭 현욱은 대관절 이미 찾아볼 수 없다. 귀엽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사랑에 빠지면 왜 남자는 정말 아기가 되고 마는 것인가.

한편 주방의 반란을 무마하고자 현욱은 김산에게 국내파 요리사들의 급여를 올려달라고 하였으나 사장 김산은 거절한다. 일고의 망설임 없는 의외의 거절이었다. 작가로서는 15회 들어 김산을 급격히 케릭터를 흔들고 있다. 결국 그 바람에 현욱은 주방보조 은수에게 제보 받은 설준석의 고액 급여를 홀서빙 직원들에게 협박하게 만들고, 김산은 그에 굴하지 않고 설준석의 급여를 막내 수준으로 떨어뜨리겠다고 말한다.

아무리 관대해지기로 작정하였지만 여기까지의 진행들이 두 가지 불만을 남기고 있다. 하나는 부드럽고 합리적인 경영자 김산을 주방 내 분란에 대해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인 비정상적인 업주에다가, 급여 삭감 통보에 흥분한 설준석이 바쁜 주방에 들어와 셰프에게 소리치는 장면을 그대로 방관하는 무력하고 일부로 분란을 조장하는 듯한 모습으로 전락시켰다는 점이다. 졸지에 김산은 비호감의 대상이 돼버리고 말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 다음에 이어질 현욱의 짜릿한 고백을 위한 위험한 올인이었다. 두 사람의 키스 장면을 모두에게 까발리고 이어서 모두의 시선이 현욱에게 모아졌을 때, "서유경이 나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나는.... 서유경을 사랑 한다"는 고백이었다. 말이 씨가 된다고, 전날 다 말해버리자고 했던 그대로 된 것이다. 그리고 자격이 없으니 주방을 떠나겠다고 한다.

그 순간, 장례를 끝내고 라스페라를 찾아 엄마와 함께 하지 못했던 파스타를 주문해 먹으면서 흘렸던 공효진의 뜨거운 눈물 연기가 다시 한 번 터져 나왔다. 마치 다큐에서 꽃이 피어나는 장면을 초고속 카메라로 보여주듯이 사람의 눈에서 어떻게 눈물이 고여 흘러나오는지 보여주고자 한 것처럼 생생한 눈물의 생성과정을 보여주었다. 그 순간까지도 자기 혼자 좋아하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던 유경에게 현욱의 고백은 두 가지 감정을 자극했을 것이다.

우선 자신과의 연애로 인해 고립무원의 입장이 된 현욱에 대한 미안한 심정이 컸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당당히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 사랑을 밝힌 현욱에 대한 뜨거운 감동이 치민 것이 아닐까 싶다. 후자에 대해서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러나 모든 남자들에게 후자의 기대감이 크다.

연애하는 모든 사람들은 행복한 상상만 할 것 같지만 사실 남자는 은근히 비련에 대한 유혹을 받기도 한다. 로미오 콤플렉스이거나 혹은 하이네의 시 '아스라'처럼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열망에 의해서 스스로 죽고마는' 상상도 더러 하게 된다. 일상 속 남자는 참 건조하지만 연애에 대해서는 곧잘 문학의 장르를 휘젖고 다니는 탓이다. 현욱 입장에서 유경과의 관계가 드러나는 것이 두렵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아스라'식으로 산화하는 자신의 모습을 실천하는 무모함 또한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런 남자의 연애관은 꼭 섹스피어나 하이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교과서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한용운의 시에서 '사랑도 사랑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는 것 역시 남자이다. 이렇듯 의외로 남자도 비극적 연애의 유혹에 약하다. 연애하는 남자는 이중적이다. 응석을 부리는 아기 같다가도 언제든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목숨 건 사내가 되기도 한다. 15회의 현욱은 그 둘을 다 보여주었다.

여성취향의 드라마인 파스타에 남자라도 폭 빠지게 되는 것은 이렇듯 남의 일처럼 자기 속의 은밀한 연애 이야기를 털어놓게 한다는 점 때문이다. 공효진이 눈부시게 빛나지만 은근히 갈수록 이선균이 근사해진다. 그가 주저 없이 보여주는 한 남자의 두 모습에 많은 여성 시청자들이 열심히 연애교과서를 고칠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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