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선후보가 대선조작사건에 대한 뒤늦은 입장 발표를 했다. 여의도 국민의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안철수 전 후보는 대국민사과를 내놓았고 책임을 지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책임을 지는 행위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아 알맹이 없는 사과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회견문을 모두 읽은 안 전 대표는 흔치 않은 일문일답을 진행했다. 사안에 비해 기자들의 질문은 대단히 느슨해 보였다. 여기저기서 경쟁적으로 손을 들고, 안 전 대표에게 따지듯 묻는 기자들의 모습을 기대했던 시민들은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안 전 대표가 제보조작 사실을 인지한 시점에 대해서는 더 집요하게 질문을 했어야 했다. 5월 5일부터 뚜벅이 유세를 했고, 그걸 본 국민들은 다 알 것이라는 대답은 해명이라고 할 수 없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당 당사에서 '제보조작' 사건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기 앞서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 전 대표는 모든 책임은 대선후보였던 자신에게 있다며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아무도 안 전 대표를 조작에 가담했을 거라 의심하지 않지만 아직은 검찰이 밝힌 ‘확정적 고의’나 추미애 대표가 말한 ‘미필적 고의’에 대해서 아무 것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법적 책임을 미리 제외시킬 이유는 없다. 사과 자리에서 스스로 책임의 경계를 정한 것도 사과의 바른 태도라고 보기 힘들다.

박주선 비대위원장의 사과 때부터 여론은 안철수 전 대표의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었다. 그로부터 보름이나 지난 후에 열리는 늦장 기자회견치고는 너무 빈약한 내용이었다. 결국 오래 뜸들인 입장발표였지만 결국엔 책임지겠다는 구체적, 실질적 내용이 없는 사과였고, 해야 할 질문이 생략된 기자회견이었다.

여론이 바란 것은 정치 은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안철수 전 대표가 현재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거가 이미 끝나 후보직을 사퇴할 수 없고, 의원직도, 당직도 없는 신분이기에 그가 실질적으로 내려놓을 것은 정치인이라는 이름 하나뿐이다. 그러나 안 전 대표는 은퇴에 대해서는 이번에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은퇴라는 결단 대신 안 전 대표가 다시 반복한 것은 “국민의당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현 단계에서 전혀 필요치 않은 의욕뿐이었다. 지난 총선의 3당 구조를 강조하기도 했는데, 국민의당의 존폐가 걸린 엄청난 사건에 사과하는 자리에서 언급하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본거지라 할 수 있는 호남에서의 지지율이 전국지지율보다 낮은 현실을 도외시한, 뜬금없는 자기 과시가 아니었는지 의문이 든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당 당사에서 '제보조작' 사건과 관련해 입장을 밝힌 뒤 당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전 대표의 입장발표를 지켜본 시민들은 하나같이 실망이라는 반응이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가장 크게 실망한 부분은 안 전 대표가 ‘당사자’라는 단어에 숨긴 피해자에 대한 언급이 될 것 같다. 정계은퇴를 천명할 생각이 없었다면 안 전 대표의 기자회견은 단지 사과를 위한 자리이고, 사과라면 그 대상은 문재인 당시 후보와 아들 문준용 씨이다. 그들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고 ‘당사자’라고 목적어를 흐린 것은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최근 들어 국민의당은 사과를 참 여러 차례 했다. 그렇지만 한 번도 시민들에게 인정받는 사과는 없었다. 조건부 사과, 가정법 사과 등 사과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CAT(내용 content, 태도 attitude, 타이밍 timing)을 모두 빗나간 사과로 오히려 빈축을 샀다. 안철수 전 대표의 사과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미흡한 사과였다고 할 수 있다. 책임도 지지 않고, 진정성도 없는 사과로 국민의당을 위한 그의 미래가 허락될지는 의문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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