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EBS <세계명작드라마>의 한장면이다.

9시 뉴스가 지긋지긋한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있다. 혹은 <인순이는 예쁘다>, <태왕사신기>, <로비스트>를 보기 위해 집으로 빨리 들어온 사람들에게 선물이 도착했다. 바로 EBS <세계명작드라마> '크리스마스 살인'이다. 저녁 8시 50분에 시작해 9시 40분에 끝난다. 채널을 돌려두고 화장실 다녀오면 딱이다.

'크리스마스 살인'은 애거사 크리스티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프랑스2 텔레비전이 2006년에 만든 TV시리즈물이다. EBS가 11월 28일부터 방송중이다.

처음에는 좀 낯설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끈 추리물들은 대부분 형사에 초점이 있다. 범인을 잡고자 하는 형사들의 강한 의지, 사소해 보이던 증거물들이 아귀가 맞춰지며 범인의 베일을 벗길때의 쾌감이 크다. 여기에 살인자들의 속사정이 그럴듯하게 배합되면 최고다. 미국은 C.S.I, 한국에는 별순검이 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살인'은 감상포인트가 조금 다르다.

얘기는 이렇다. 프랑스의 부자 사업가 시몬 르 테스쿠의 사망 사건이 드라마의 소재다. 생전에 그는 아주 잔인하고 포악한 성격이었다. 사건 당일 자신의 일흔살 생일을 맞아 가족들을 불러들였다. 그렇게 가족들이 모두 모여있을 때 시몬 르 테쿠스의 방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모두들 달려갔지만 그는 이미 죽은 뒤였다. 형사 라호지에흐와 랑피옹이 사건을 맡았다. 다음주부터는 누가 범인인지를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할 예정이다.

'크리스마스 살인'의 재미는 살아남은 가족들의 욕망을 읽는데 있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이들을 뭉치는 것은 오직 돈 때문이다. 세명의 아들은 모두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의 재산이 자신들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구차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아들들은 어떤 모욕도 참아가며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또한 아들들은 서로가 경쟁자이다. 그 싸움을 들여다보는 것도 드라마를 즐기는 좋은 방법일듯하다.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크리스마스 살인'의 시대배경은 1939년이다. 1부에서는 흑인남성과 백인여성이 투표권 문제를 놓고 작은 언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왔다. 당시는 흑인과 여성에게 투표권이 보장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어쩌면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해야할 사이였지만 오히려 적이되는 광경이 벌어진다. '흑인'과 '여성'이라는 같은 마이너리티로의 동지의식이 없었다. 반대로 '백인 대 흑인', '남성 대 여성'이라는 우월감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따분할 것이라는 걱정은 안해도 된다. 가족들은 기본이고 하인들까지 모두가 '저 사람이 범인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게끔하는 연출들이 촘촘히 배열되어 있다. 그걸 따라잡느라 눈과 머리가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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