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방송계에 스탠드업 코미디(희극 배우가 관객을 마주하는 실시간 희극 형식) 시초를 열었던 KBS <개그콘서트>가 어느덧 900회를 맞았다. 방송국 입장에서도 경사스러운 일인 만큼 지난 14일부터 무려 3주에 걸쳐 900회 특집을 마련했다. 역대 <개그콘서트>를 빛냈던 개그맨들도 오랜만에 모습을 비추고 유재석, 남궁민 등 톱스타들도 무대에 참여해 <개그콘서트>의 900회를 함께 축하했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좋았고 900회 특집은 한동안 주춤했던 <개그콘서트>의 위상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긍정적인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개그콘서트> 900회 특집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이 자신들을 배제한 <개그콘서트>에 쓴소리를 제기하기 시작했고 900회 특집 1부를 무사히 마치는가 싶었던 <개그콘서트>는 며칠 동안 잡음에 시달리게 되었다. 900회 특집에 초대받지 못했던 인물들은 놀랍게도 한때 <개그콘서트>의 레전드라고 불릴 정도로 <개그콘서트>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인 개그맨들이다. 어린 시청자들에게는 기억조차 생소하겠지만, 정종철과 임혁필은 <개그콘서트>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갈갈이 삼형제’, ‘마빡이’, ‘세바스찬’ 등 인기 코너와 캐릭터를 맡으며 <개그콘서트>의 영광을 함께 이끌었던 주역들이다. 그러나 <개그콘서트>를 빛냈던 희극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경사스러운 자리에 정종철과 임혁필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이들은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개그콘서트> 900회 특집에 초대받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고 이 과정에서 임혁필은 유재석을 겨냥한 발언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KBS2 예능프로그램 <개그콘서트>

일련의 잡음 끝에 <개그콘서트> 제작진은 “<개그콘서트>와 영광을 함께 했던 개그맨 분들을 한 분이라도 더 모시지 못해 안타까운 말씀을 전한다.”는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정종철과 임혁필도 자신의 발언에 사과를 했고 <개그콘서트>를 둘러싼 논란도 잠잠해졌다. 그리고 <개그콘서트>는 지난 21일 장동민, 유세윤, 강유미, 박지선, 김현숙 등 과거 <개그콘서트>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개그맨들과 남궁민, 트와이스의 특별 무대로 꾸며진 900회 특집 2부를 예정대로 방영하였다.

<개그콘서트>를 빛냈던 모든 개그맨들이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도 크지만 <개그콘서트>의 역사를 잠깐이나마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특집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21일 시청률은 간만에 10%대를 회복했던 지난 14일 시청률에 비해 1.2% 하락한 8.8%(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개그콘서트>가 배출한 유명 개그맨들과 남궁민, 트와이스 등 스타들이 출연해도 10%의 시청률을 넘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개그콘서트>의 현실이다.

몇 년 전 만해도 20~3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수많은 유행어와 인기 코너를 배출했던 <개그콘서트>는 과거와 달리 많은 유행어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시청률은 한자릿수로 추락한지 오래며 <개그콘서트>를 꾸준히 시청하지 않는 이상 어떤 코너가 방영하는 지 도통 알 수 없다. 그래도 8%대의 시청률을 꾸준히 유지하는 <개그콘서트>는 형편이 좀 나은 편이다. 폐지와 방송 재개가 빈번하게 이어지던 SBS <웃찾사-레전드 매치>는 낮은 시청률 때문에 폐지 위기에 놓였다. 이용식, 정종철, 양상국, 김기리 등 <웃찾사>를 폐지하지 말아달라는 선배 개그맨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웃찾사-레전드 매치>는 오는 31일로 종영한다. 방송국 측에서는 시즌제를 표방한 만큼 종영 이후 새로운 시즌을 선보일 것이라고 개그맨들을 안심시키지만 평일 오후 11시라는 황금 시간대에도 2%의 낮은 시청률을 기록한 <웃찾사>가 새로운 시즌을 재개할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KBS2 예능프로그램 <개그콘서트>

2017년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시청자들은 예전처럼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을 즐겨보지 않는다. 과거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을 사랑했던 시청자들이 <개그콘서트>, <웃찾사>에 등을 돌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들의 주된 의견을 종합해보자면 재미가 없다는 것. 대중이 추구하는 트렌드는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는데 코미디 프로그램의 웃음 코드는 그에 발맞춰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도 부진의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사라진 개그는 약자에 대한 희화화 논란만 남게 되고 그렇게 <개그콘서트>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멀어지는 장수 프로그램이 되었다.

이제 그 어떠한 풍자도 용납하지 않았던 암흑기가 지나고 정치를 개그의 소재로 사용하는 것을 긍정하는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맞아 한동안 주춤했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위상도 회복할 수 있을까. 한번 떠났던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개그콘서트>가 다시 재미있어지면 잠시 떠났던 시청자들도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비록 일련의 잡음에 시달리긴 했지만 900회 특집을 계기로 <개그콘서트>가 다시 살아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그 프로그램이 건강하고 튼튼해야 유능한 개그맨들이 설자리가 많아지고 언제나 예능 인력 부족, 아이디어 고갈에 시달리는 방송계에 신선한 활력소를 제공할 수 있다. <개그콘서트>, 그리고 <웃찾사>의 부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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