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대선의 격랑에서 비켜가지 못했다. 종일 SNS와 뉴스는 전날 SBS 8시뉴스 보도 한 꼭지로 시끄러웠고, 결국 3일 김성준 앵커는 8분이 넘도록 전날 보도에 대한 해명과 사과를 이어갔다.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일까. 방송사가 보도에 대해서 사과하는 일도 드문 일이지만, 그것도 뉴스를 시작하고 줄곧 8분을 쓰는 일은 더욱 보기 힘든 일이다. 한데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럴 만도 한 것이다.

5월 2일 저녁, 본래 이슈는 마지막 대선토론이어야 했다. 그러나 토론보다는 SBS뉴스가 모든 이슈를 집어삼켜 버렸다. 문재인 후보 측과 해수부가 세월호 인양을 대선 시기에 맞춰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그 근거로 SBS는 음성변조된 인터뷰를 내보냈다. 사실이라면 문재인 후보는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세월호 취재를 오래 해온 조을선 기자의 단독보도여서 무게와 파장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SBS 8 뉴스 보도 영상 갈무리

그러나 해당 보도에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먼저 보도 내용의 중대성에 비해 근거가 너무 빈약했다. 음성이 변조된 해수부 공무원이라는 사람의 인터뷰 외에는 사실을 뒷받침할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민주당의 반론도 담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당장은 보도 자체가 주는 충격이 너무도 컸고, 문재인 후보와 경쟁하는 입장에서는 호재를 만난 듯 반응했다.

그런데 몇 시간 뒤 SBS는 해당 보도를 삭제를 했고, 좀 더 지난 뒤 새벽뉴스에서 해명과 사과를 했다. 그러나 사안의 중대성이 워낙 심각한지라 김성준 보도본부장은 한층 더 진지한 모습으로 사과할 것을 SNS를 통해 알리기도 했다. 결국 뭔가 수상했던 보도는 말만 달리 했을 뿐, 가짜뉴스라는 사실을 SBS 스스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발표된 SBS노조의 입장은 김성준 보도본부장의 사과와 해명을 상당히 무겁게 만들었다. 노조의 발표에 따르면, 이 기사를 보도한 조을선 기자의 초안이 게이트키핑 과정에서 심각하게 왜곡됐다는 것이다. 사과를 내보낸 것처럼 발제된 주제와 전혀 다른 내용과 타이틀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조 기자의 ‘초고 때 담겼던 박근혜 정권 시절 인양지연과 눈치 보기를 지적하는 문장이 통째로 삭제’되었고, 제목도 보도된 것처럼 자극적으로 변경됐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3일 김성준 앵커의 해명에도 포함된 내용이었다.

JTBC 뉴스룸 보도 영상 갈무리

분명 3일 김성준 앵커의 해명과 사과는 최대한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충분하지는 않았다. 데스킹 중에 바뀌었다는 초고, 다시 말해서 초고를 바꾼 부장의 직접 해명과 그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한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의 테러와도 같은 보도참사에 대한 적절한 해명은 되지 못할 것이다. 이대로라면 데스크에 의해 변질(?)된 기사대로 보도한 말단 조을선 기자만 대중의 몰매를 맞을 뿐이다.

논란과 파장이 커지자 선관위도 이 보도를 조사하겠다고 나섰고, 민주당은 선거와 관계없이 수사를 의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누가 보더라도 이 보도가 가진 문제는 흔한 오보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시점도 대단히 민감하게 작용하는 때였고, 결과적으로 문재인 후보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 중대하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2012년 국정원녀 셀프감금 사건의 악몽을 떠올렸다.

SBS노조의 입장 발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2012년의 반면교사로 SNS는 조을선 기자에 대한 비난 대신 이 보도참사의 본질에 집중하는 추세로 바뀌어갔다. SBS 노조의 입장발표도 있거니와 이 보도 참사를 해당 기자의 잘못만으로 몰아가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으며, 더군다나 본질도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아무 모든 책임에서 풀어줄 수는 없겠지만 일단은 더 본질적인 문제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다만 조 기자는 이 보도가 왜곡된 모든 과정을 직접 밝혀야 할 것이다.

3일 김성준 앵커가 밝힌 게이트키핑의 미흡이라는 것은 해명도, 사과도 될 수 없다. 이 보도의 인터뷰 내용과 기사 제목이 너무 선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의도 없이 우연히 실수와 미흡함으로 생긴 결과로 보기에는 불가능에 가깝지 않겠는가. 기사 작성이 미흡했거나 혹은 실수라면 이름이 빠졌거나, 틀린 정도의 결과물이 나올 뿐이지 발제와 전혀 다른 인터뷰가, 그것도 세월호 인양과 관련이 없는 공무원과 인터뷰를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JTBC 뉴스룸 보도 영상 갈무리

또한 조을선 기자는 세월호를 꾸준히 취재한 터라 상대가 세월호 인양에 책임 있는 인터뷰를 할 지위에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다. 인터뷰의 존재가 이 보도의 의도성을 강력하게 증거한다. 따라서 편집과정 중에서 초고를 삭제하고 왜곡한 실체를 밝히지 않고, 그에 대한 조치 또한 언급하지 않은 이상, 아무리 깊이 머리를 숙였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사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기사가 보도된 시점은 대선 일주일 전이자 사전투표 이틀 전이었다. 이제 모든 후보들이 마지막 힘을 쏟는 동시에 불상사가 없도록 살얼음판을 걷는 대단히 예민한 시기이다. 때문에 기사가 삭제가 되고, 사과까지 했지만 지상파발 가짜뉴스는 문재인 후보에게 지속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 또한 국민의당과 자유한국당은 언론탄압이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하게 된다. 피해자인 문재인 후보를 가해자로 몰고 가는 상황은 상당히 익숙한 장면이다. 따라서 SBS와 해당 인터뷰를 한 해수부 공무원에 대한 신속한 수사는 필수라고 할 것이다.

결국 이번 SBS 가짜뉴스 사건은 내부적으로 본다면 보도참사일 수 있겠지만 정작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보도테러일 수밖에는 없는 또 억울한 입장에 놓인 것이다. 특히 2012년 국정원녀 셀프감금 사건을 겪은 당사자라면 더욱 그 충격은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JTBC <뉴스룸>은 이 사건을 상당히 심도 깊게 보도했다. 보통은 동업자의 실수를 덮는 언론계의 습성을 깨는 이례적인 모습이었는데 특히 이날의 엔딩곡이 눈길을 끌었다. <뉴스룸> 이날의 엔딩곡은 마이클 잭슨의 ‘You Are Not Alone'이었다. 다른 때와 달리 제목의 음독에 포인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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