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토론이 거듭되면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존재는 토론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갔고, 마침내 4차 토론 이후 그 관심은 지지율로 표출되었다. 역대 진보정당 후보로는 가본 적 없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마침내 10%의 벽까지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런데 마지막 토론에서 심상정 후보는 한 매체의 평가에서 홍준표 후보와 함께 가장 낮은 C평가를 받았다. 왜 그랬을까?

우선 심상정 후보는 이번 토론에서의 전략을 문재인 후보 공격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2차 토론 때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면서 대규모 탈당으로 이어진 반발의 효과는 잊은 채 지지율을 더 빼올 곳은 결국 같은 진보성향인 더민주 지지자들로 판단, 이들을 공략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일견 틀리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미 한 번 호된 부작용을 겪은 바도 있어 다시 들고 나온 전략이 들어맞을지는 미지수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 주관 19대 대통령후보 3차 토론 (SBS 방송화면 갈무리)

그러나 그런 전략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실수가 토론 막바지에 있었다. 그 한 마디로 인해 토론의 전략 모든 것들의 의미가 상실되고, 토론 우등생이었던 심상정 후보의 모든 발언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촛불을 통해 이미 정권교체를 완성했다”는 무리한 발언은 아무리 생각해도 과했고,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만약 이 발언이 실수라면 선거일을 5월 9일이 아닌 12월 9일로 착각한 홍준표 후보의 실수는 비교할 바가 아닌 것이다.

현 상황에서 정권교체가 완성됐다는 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도 좋다는 투로 해석될 수 있다. 물론 이 말을 한 심상정 후보의 뉘앙스에는 이미 문재인 후보가 1강으로 앞서가기 때문에 이제 더 진보적인 자신을 지지해달라는 뜻이겠지만, 설혹 그런 전제를 밝혔더라도 정권교체가 완성됐다는 말은 너무도 이기적이고 자의적인 선언에 불과하다. 심하게 말하자면 촛불을 배신하고, 왜곡한 발언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 주관 19대 대통령후보 3차 토론 (SBS 방송화면 갈무리)

추운 겨울 어린 아이들까지 데리고 나와 광장을 지키고, 촛불을 켠 1600만 시민이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런 말 들으려고 촛불을 들었는지 자괴감이 들을 지경이다. 아무리 이번 대선토론이 막말과 비언어가 난무한 저질토론이라는 성적을 줄 수밖에는 없지만 그래도 토론과 논쟁에 누구보다 앞서고 익숙한 심상정 후보의 막말에는 실망이 더욱 클 수밖에는 없다.

그러나 그 모든 발언과 태도보다는 홍준표 후보가 토론 중간 심 후보에게 기권하지 말고 끝까지 완주해달라는 당부를 하는 상황이 더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심 후보 역시 그 상황에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것도 왠지 적절치 않아 보이기도 했다. 문재인 후보에게는 공격을 하면서 홍준표 후보와는 미소를 나누는 모습의 심상정 후보는 분명 어색한 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런 생각 자체가 한국 정치 구조 속에서의 진보정당에 대한 오해일 수도 있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 주관 19대 대통령후보 3차 토론 (SBS 방송화면 갈무리)

어쨌거나 이제부터는 여론조사 발표가 금지되기 때문에 이 마지막 토론의 결과가 여론조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도 없고, 언급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이 마지막 발언과 이날 토론 내내 문재인 후보를 공격한 태도는 분명 심상정 후보의 지지에 변화를 줄 것으로 보인다. 등락 어느 쪽도 확인할 길은 없지만 만약 떨어진다면 그것은 전에 없이 요동치는 이번 대선의 지지율을 이미 확보한 득표로 착각한 데서 오는 자신감 과잉의 실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한편 심상정 후보의 이런 무리한 발언의 배경에는 최근 벌어진 양당 간의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다. 심상정 후보는 유세 중에 “될 후보에게 표를 찍는 것은 사표”라는 이상한 논리를 주장했고, 더민주 우상호 대표는 “정의당 지지는 다음 선거에 해도 된다”는 발언을 해 정의당으로부터 반발을 사기도 했다. 정의당은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 변화가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을 했지만 정작 마지막 토론에서 문재인 후보를 정조준한 것을 보면 딱히 그런 것은 아니라는 반증을 찾을 수 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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