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가 뽑은 2009골든라즈베리 연출상 시상이 있겠습니다. 두둥~ 수상에는 고 장자연 씨의 수사를 담당했던 분당경찰서에게 돌아갔습니다. 분당경찰서는 고 장자연 씨의 수사를 담당하면서 이른바 ‘장자연리스트’라고 불리던 대상자의 실명과 혐의를 밝히겠다고 발표했다가 단 8시간 만에 비공개로 말을 바꿨으며, ‘장자연리스트’ 명단에 들어간 유력인사로 거명된 이들에 대한 조사를 이례적으로 ‘방문조사’로 진행했을 뿐 아니라,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의 수사는 뒷전, 리스트를 퍼뜨린 네티즌을 찾는데 골몰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확인해줄 수 없다’, ‘OO일보’라는 대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한 공(?)을 크게 인정해 이 상을 기꺼이 수여합니다”

이거 박수를 쳐야할까요, 말까요?

2009년 인물 중 떠오르는 이가 있다면 바로 ‘장자연’이란 이름일 것이다. 그의 죽음과 동시에 공개된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는 자필에는 명확하게 ‘구타’, ‘잠자리 요구(성상납)’로 괴로웠던 고인의 심경이 녹아 있었다. 가족들이 그의 자필임을 확인해주었고 핸드폰의 음성메시지를 통해서도 이 같은 내용이 사실임이 재차 확인됐다. 명확했다. 그는 누군가로 하여금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방송사PD, 유력일간지 사장 등이 포함돼 있다던 ‘장자연리스트’는 뜨거운 이슈가 됐다.

▲ 경향신문 3월 14일자 8면 기사
이 시점에서 감히 묻는다. “고 장자연 씨의 사건이 어떻게 됐는지 아시는가?”

“김씨와 강요죄 공범 혐의와 관련해 3회 이상 술자리에 동석한 사실이 드러나 경찰이 입건한 증권사 이사, 기업체 대표, 드라마 감독, 금용인 등 5명을 비롯해, 문건에 거론돼 (유족들이 고소한) 언론사 대표 등 3명은 증거가 부족해 무혐의 처분했다. 경찰이 강요죄 등 실체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죄명을 선택한 것은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고인에 대한 동정 여론을 고려해 적극적으로 수사하고자 했던 것에 기인한다”<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부장 김형준)>

참으로 떠들썩했던 것에 비하면 초라하고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결과다. 고 장자연씨에게 술 접대 등을 강요하고 이를 방조 혹은 성상납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아 온 언론사 대표, 금융관계자, 드라마 감독 등 유력인사들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피의자 전 소속사 더컨텐츠 엔터테인먼트 김 대표 역시 불구속 기소됐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기에 사건의 진실은 알 수 없고, 때문에 거론된 인사들 역시 법의 심판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을 정리하면 이렇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고 장자연 사건 수사의 변질, 그 속의 ‘분당경찰서’

그렇다면 이 사건은 왜 이렇게 됐을까? 그 근본 물음을 던진다면 사건수사의 ‘변질’로 볼 수 있다. 이 사건은 분명 장자연이란 배우의 죽음과 그가 남긴 문건에 적힌 이른바 ‘장자연리스트’를 철저하게 수사해서 그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사는 그와는 정반대로 ‘장자연리스트’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명예훼손 여부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 중심에는 분당경찰서가 있었다. 검찰은 “(경찰이) 고인에 대한 동정 여론을 고려해 적극적으로 수사하고자 했다”고 했지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고 장자연 씨의 수사만큼 경찰이 뜸들인 사건도 없다.

때문에 <동아일보>의 기자칼럼 ‘경찰, 장자연 사건 모르쇠 일관…’ 기사를 보면 “분당경찰서 기자실에는 최근 유행어 하나가 생겼다. 기자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물어보면 농담조로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 2009년 4월 14일자 동아일보 기자의 눈
사실 분당경찰서는 사건 초기부터 수사의 허술함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몇몇 언론사를 통해 “억울하다”며 무죄를 주장하던 김 대표는 일본에서 일순간에 사라져버렸다. 그 동안 경찰은 김 대표와 연락도 닿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경찰은 “수사는 사건의 핵심 인물인 장자연 소속사 전 대표 김씨의 신병 확보 후 본격화 될 것”이라며 수사를 중단시켜 버린다.

분당경찰서의 발표도 수시로 바뀌었다. ‘장자연리스트’에 대해 논란이 뜨거웠던 그 때, 리스트의 실명과 그의 혐의를 공개한다고 했던 분당경찰서는 단 8시간 만에 말을 바꿔 공개불가 입장을 밝혔다. 이 때부터이지 않았을까? 수사방향이 변질됐다고 보이는 순간이 말이다. 그 후 분당경찰서는 3월 25일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업체에 공문을 보내 리스트를 유포한 네티즌들의 신원을 확보했다”고 밝힌다. 고 장자연 씨의 문건에 등장한 인물들에 대한 조사 속도와 비교해보면 굉장히 빠른 일처리일 뿐 아니라 그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조선일보>의 68억원 손해배상도 도운 ‘분당경찰서’…그러나

국민들의 관심은 OO일보의 O사장이 경찰서에 출두할까에 쏠렸다. 공공연히 퍼져 있었던 ‘장자연리스트’에 OO일보의 O사장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국회에서,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MBC<100분토론>에서 언급한 이후, 급속도로 관심이 몰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 때 재미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분당경찰서의 ‘방문조사’ 실시였다.

▲ 2009년 4월 25일자 한겨레 1면 기사
분당경찰서는 4월 24일 중간수사 발표에서 OO일보의 O사장에 대해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알려진 바에 의하면 발표 하루 전날인 23일 방문조사를 실시했고, ‘고 장자연 씨를 알지 못한다’, ‘통화기록 조회 결과 김 대표와 통화한 사실이 없다’는 등의 일방적 주장을 받아들여 무혐의 처리한 것이다.

그 와중에 <조선일보>는 이종걸 민주당 의원,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KBS·MBC 소속 기자, 박상주 미디어오늘 논설위원, 박석운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김성균 언소주 대표를 상대로 68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단지 밝혀지지 않은 리스트에 조선일보 경영자가 포함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만으로도 그들은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이 밝혀지지 않은 리스트는 누구의 작품일까? <조선일보>의 소송은 분당경찰서가 8시간 만에 말을 바꿔버리는 데 있어 크게 한 몫했다.

이 정도면 분당경찰서가 이 상을 받는데 추호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헷갈린다. 장자연 씨의 죽음.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그의 죽음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린 사회. 그 속에 ‘나’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 분당경찰서의 2009골든라즈베리 연출상 수상이유를 적고 있는 지금, 단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말로 대신할 수 밖에 없는 괴로운 심경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