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선거철이 되면 각 언론의 여론조사 지지율 보도가 춤을 춘다. 1·2위 격차 %p, 고공행진, 대세론, 1강 구도, 2강 구도 등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선거 보도가 쏟아지고 마치 여론조사가 모든 것의 절대적인 기준인양 위력을 떨치는 모습이다.

특히 올해 대선은 여론조사 공표 금지가 선거일전 D-22일에서 D-6일로 완화되면서 여론조사를 통한 보도 기회가 대폭 늘어났다. 따라서 여론조사가 선거 판세에 미칠 영향력과 파괴력이 훨씬 더 복잡다단해질 것이란 전망이 가능하다.

남발되는 '긴급 여론조사', 민심을 제대로 반영할까

그렇지만 언론의 여론조사 보도의 문제점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이슈나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여론조사가 남발되는 것이 큰 문제다. 사건의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기도 전에 실시하는 긴급 여론조사는 또다른 여론의 왜곡을 낳을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여론조사원이 제공한 정보를 듣고 즉자적으로 답변을 내놓을 수 밖에 없는 긴급 여론조사는 가급적 하지 말아야한다는 지적이 매번 나오고 있지만 언론의 경쟁적인 보도 양태는 계속되고 있다. 단발적인 여론조사 지지율로 승패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면 정책과 이슈를 통한 후보자 검증과 자질 논의는 그만큼 약화될 수 밖에 없는데도 언론의 세심한 관심과 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 조선일보 11월 19일자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하고 보도하는 과정에서 자의적인 해석, 과장과 축소 등으로 현상을 왜곡하거나 단정적 판단과 표현으로 민심을 오도하는 문제 역시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우선 여론조사의 추이를 비교할 땐 동일한 조사 결과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야 하지만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19일 <1·2위 후보 격차 13.9%p에서 20.3%p로 벌어져>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여론조사 흐름 비교할 때 '동일표본' '동일조사' 원칙 사라져

"지난 7일 TNS코리아에 의뢰했던 조사에서는 이명박 후보(37.9%)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24%)의 차이가 13.9%포인트였지만 이번 갤럽조사에서는 이명박 후보(38.7%)와 이회창 후보(18.4%)의 차이가 20.3%포인트였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13.9%에서 13.1%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조선일보는 TNS코리아와 한국갤럽이 실시한 두 개의 여론조사를 비교한 결과,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의 격차가 13.9%p에서 20.3%p로 벌어졌다는 내용을 제목으로 뽑았다. 1·2위라는 표현, 그리고 수치적인 변화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는데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과연 서로 다른 조사기관의 결과를 시간차를 두고 비교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가능하다. 여론의 흐름과 추이를 보려면 동일한 조건에서 이뤄진 조사를 비교해야 한다. 동일한 표본을 대상으로 동일한 설문방법을 통해 조사한 것이 아니라면 언론의 자의적인 해석과 그로 인한 과장이나 축소 등의 왜곡을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 밖에 없다.

지난 1일과 2일 MBC <뉴스데스크>도 동일한 오류를 드러내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 11월 1일 MBC <뉴스데스크>
MBC는 지난 1일 "이회창 전 총재를 포함시켜 선호도를 물었더니 이명박 40.3% 이회창 22.4% 정동영 13.1%로 이 전 총재가 2위, 정 후보는 3위로 밀렸다. 이 전 총재는 이 후보에게서 대략 13, 정 후보에게서 3, 문 후보에게서 2, 그리고 무응답층으로부터 4% 포인트 정도를 가져온 것으로 분석됐다"고 보도했다. MBC는 다음날 2일도 "어제 MBC 조사에서 이명박 후보 지지자 중 22.2%가 이 전 총재 지지로 돌아섰고, 정동영 문국현 후보 지지층 일부도 태도를 바꾼 것으로 드러났다"며 "후보 선택을 유보해온 부동층 일부도 이 전 총재 지지로 마음을 정했다. 이명박 후보 지지자 중 이 전 총재 지지로 돌아선 상당수는 경선 당시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했던 사람들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MBC 노조 민실위는 "어느 후보의 지지가 몇% 포인트 이회창 후보 지지로 이동했는지에 대한 분석은 동일한 표본 집단에 대한 추적조사를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며 "지지율 이동 비율은 단순한 산수 계산으로 해서는 안 되는 위험한 추정 행위지만 이 기사는 이 위험한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조사기관의 여론조사를 언론이 필요에 따라 선택해 비교하고, 지지율 이동 비율을 단순한 산수 계산으로 분석하는 것은 과학적이거나 유의미한 보도 가치를 지닌다고 보기 어렵다. 조사대상을 고정시키고 동일질문을 반복 실시하는 '패널조사'를 통해 과학성과 객관성을 담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만 언론은 이러한 기본적인 원칙 조차 무시하고 있다.

하위표본인 지역별 지지율 보도할 때 표본과 오차 밝히지 않아

하위표본을 인용해 후보별 지지율과 응답 경향을 분석하면서 지역별 표본의 수나 표집오차를 밝히지 않는 문제 역시 반복되고 있다.

"이 전 총재는 고향인 대전 충청에서 27.3%를 얻어 상대적으로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중략) 정동영 후보는 호남지역에서 46.7%의 선호도를 기록했지만 10일 조사때(45.7%)와 큰 차이는 없었다."

지난 19일 동아일보 <주요 후보 선호도 큰 변화 없어> 기사 가운데 일부 후보의 지역별 선호도가 언급된 내용이다. 동아일보는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이번 조사는 지역별 성별 연령대별 인구비례에 따른 할당추출법으로 표본(전국 성인남녀 1500명)을 선정해 전화면접을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5%포인트, 응답률은 18.0%였다"고 밝혔으나 지역별 표본오차에 대해서는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 동아일보 11월 19일자
MBC도 지난 18일 <뉴스데스크>에서 "한나라당 강세 지역인 대구경북의 경우 이명박 51.4% 이회창 21.9%, 이회창 후보의 연고지인 대전 충청은 이명박 29.5% 이회창 19.8%로, 이명박 후보의 전 지역 우세가 계속됐다"고 보도했지만 지역별 표본오차를 밝히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MBC와 동아일보의 여론조사는 전국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95% 신뢰수준에서 오차범위 ±2.5%p였지만 지역별 지지율로 가면 당연히 표본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위와 같은 전제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지역별 지지율을 보도하려면 최소한 해당 지역의 표본을 다시 추출해 신뢰수준과 표본오차를 따로 밝혀야 한다.

뿐만 아니라 몇백명 수준의 표본으로 조사된 결과를 %로 따로 뽑아 보도하는 것 자체도 신뢰도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따라서 지역별 지지율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별도의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론조사 결과 해석의 오류, 실수인가 의도인가

여론조사 결과를 잘못 해석해 보도하는 오류도 발생하고 있다. SBS <8뉴스>는 지난 9일 대선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이회창 후보 지지자 가운데 박근혜 전 대표의 선택에 따라 지지를 바꿀 수 있다는 사람이 3분의 1을 넘었다"고 밝혔는데 이러한 분석의 근거가 된 조사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11월 9일 SBS <8뉴스>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 지지자 가운데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다'는 각각 31.9%와 31.1%의 지지자에 대해 어떤 경우 지지를 철회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이명박 후보 지지자는 'BBK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가 63.2%로 가장 많았고, 당선 가능성이 낮을 경우가 16%, 박근혜 전 대표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할 경우는 11.3%였습니다. 이회창 후보 지지자의 경우 박 전 대표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면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답이 36.3%로 가장 많았습니다."

위 내용에 따르면 이회창 후보 지지자 가운데 31.1%가 지지를 철회할 수 있다고 응답했고, 이 가운데 36.6%가 철회 이유로 박 전 대표의 선택을 꼽았다. 그렇다면 이회창 후보 지지가 가운데 박 전 대표의 선택에 따라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사람은 3분의 1이 될 수 없다. 그렇지만 이날 SBS <8뉴스>는 이같은 내용을 앵커멘트로 뽑고 어깨걸이 자막도 '3분의 1'로 소개했다.

이에 대해 지난 17일 SBS 옴부즈맨 프로그램 <열린TV 시청자세상> '성한표 뉴스비평'도 "뉴스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사안"이라고 문제 삼았다. "박 전 대표의 선택에 따라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응답은 이회창 후보 지지자 전체로 보면 3분의 1이 아니라 11.3%가 돼야 맞다"는 지적이다.

특정 후보의 '대세론'을 부추긴다는 고의성을 의심받는 경우도 있다. 지난 19일 조선일보는 1면 <부동층 19.2%로 늘어>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이번 갤럽 조사에서 응답자의 62.9%가 BBK 의혹사건에 '관심있다'고 했다. 'BBK 때문에 정권교체가 안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불안하지 않다'가 57.8%였지만, '불안하다'는 응답도 34.6%나 됐다. 또 '이회창 후보 출마로 정권교체가 안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는가'라는 설문에도 '없다'가 61.4%였고, '있다'는 32.5%였다. 물론 정권교체가 이뤄질 것이라고 보는 응답자가 다수이지만, 'BBK 사건과 이회창씨 출마'에 불안감을 드러낸 응답자도 30%대 초반에 이른 것이다. 대선 막판 부동층 증가에는 이런 불안 심리가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위 보도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두 가지인데 우선 여론조사 질문에 대한 부분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21일 모니터보고서에서 "어떻게 여론조사에서 'BBK 때문에 정권교체가 안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는가' '이회창 후보 출마로 정권교체가 안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는가'라는 등의 질문을 할 수 있는가"라며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염원'인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진 다음 이를 통해 '대한민국=이명박 대세론이 절대 진리'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 조선일보 11월 19일자

두번째는 응답 결과가 전체 대상인지 특정 후보 지지자를 대상으로 한 것인지를 밝히지 않으면서 독자들을 혼선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조사 응답 대상 밝히지 않아 혼선 부추겨

민언련은 "같은 날 6면 <이명박 지지자 중 43.2%, "경제성장 기대" "이회창 출마로 정권교체 안될 수도" 32.6%>를 보면 이 질문은 전체 조사자중 554명인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에게만 조사한 것이었다고 보도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날 조선일보 1면 기사에서는 이점을 전혀 명시하지 않았다. 1면 머리기사만 읽은 독자는 '대부분의 여론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해 한나라당으로의 정권교체를 간절히 원하고 있으며 어떤 변수가 있어도 불안해하지 않는구나'라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의도적인 누락이든 실수이든 '명백한 오보'이며 이명박 대세론을 부추기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잘못된 여론조사 보도라는 것이다.

한편 여론조사의 응답률이 낮은 것도 조사의 신뢰도 측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응답률이 30% 이상은 돼야 여론조사의 신뢰성과 과학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현재 각 언론이 실시하는 여론조사의 대다수는 17~20% 수준을 왔다갔다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정 집전화 환경을 감안하면 무난한 비율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점차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가정주부 비율·거절률 높은 가정 집전화 방식, 변화하는 선거환경 반영 못해

실제로 지난 9~10일 한국통계학회 학술대회에서 고려대 허명회 통계학과 교수는 가정주부 비율(32.1%)과 거절률(47.1%)이 높고 전화번호 등재율이 절반밖에 안되는 '가정집 전화를 이용한 할당추출 방식'은 변화하는 선거 환경을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신뢰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선거 여론조사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것은 지난 1987년 대선 이후 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여론조사 맹신주의'에 대한 비판이 높아질 만큼 여론조사는 그 영향력을 키워왔고 후보 당내 경선과 단일화 방법과 관련해서도 이를 보완하는 주요 수단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만능이 아니다. 여론조사를 활용해 보도하는 언론들은 여론조사가 단순 참고자료일 뿐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불친절·무책임한 여론조사 보도방식 변화 필요

숙명여대 양승찬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여론조사가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반영한다는 시각을 버리고 시민과 유권자 반응을 살피면서 주기적으로 대략적인 흐름과 추이를 보여주는 일부 수단으로 활용돼야 한다"며 "과학성이 담보된 여론조사라고 해도 수치를 보도할 때는 조심해야 하는데 여전히 수치만을 강조하고 단발성 긴급 여론조사 등으로 일희일비하는 보도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불친절하고 무책임한 여론조사 보도 역시 달라져야 한다"며 "국민들이 신뢰수준과 오차범위를 다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다. 보도 말미에 공지하는 것으로 요건을 다 채웠다고 생각하겠지만 여론조사의 중요성과 정치적 의미가 크다면 관련된 용어 역시 쉽게 풀어서 보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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