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디로 가야 돼?"
"절단기는 어디있어?"

MB특보 출신 김인규 KBS 신임 사장에 대한 KBS노동조합의 '출근저지 투쟁' 첫날인 24일. 200여명의 조합원들은 오전 7시 30분부터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 모여 "오늘 김인규씨를 막아내느냐 못 막아내느냐에 '공영방송 사수'가 달려있다"며 한껏 결의를 다졌다.

▲ KBS노조 조합원 200여명은 24일 오전 8시,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MB특보 김인규는 물러나라"고 외쳤다. ⓒ곽상아
KBS노조는 24일 오전에 김인규 사장의 출근을 한차례 저지했으나 오후 1시 20분경 김 사장이 KBS본관에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점심시간이라 노조원들이 별로 없었고, 남아있는 노조원들의 숫자로는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노조 집행부도 "오후 2시쯤 김 사장이 출근을 다시 시도할 것"이라는 정보를 잘 알고 있었음을 감안할 때 노조의 대응이 허술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후에도 노조의 행보는 '우왕좌왕' 그 자체였다. 집행부와 조합원들이 대거 본관으로 진입해 취임식이 열리는 TV공개홀 진입을 시도할 때도 이들에게는 아무런 전술이 없어보였다.

이쪽으로 우루루 몰려갔다가 문이 막히면 다시 돌아가고, 그쪽 문이 다시 막히면 돌아가고…또 막히면 그 자리에 몇몇은 앉아있고…나머지는 다른 곳으로 달려가고…하지만 또 막히고….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느냐" "집행부는 동선파악도 못했느냐" "지금와서 뭐하는 거냐" "누구 절단기 가진 사람 없느냐" 등 조합원들의 볼멘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취임식이 진행중이던 오후 2시 15분경, 집행부 가운데 한 사람은 "취임식이 끝난 이후 김인규씨가 사장 집무실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엘리베이터 사수투쟁'을 하자"고 했다가 10분 뒤에는 다시 "김인규씨가 밖으로 나간 게 확인되면 민주광장에서 집회를 열자"고 말하기도 했다.

이같은 '우왕좌왕' 행보는 집행부에게 '김인규 입성 이후의 시나리오'가 없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집행부는 김인규 사장의 KBS본관 입성에 대해 "첫 출근이니까 정문으로 들어올 줄 알았다. 시청자상담실 문으로 들어갈 줄은 정말 몰랐다"(최재훈 부위원장) "사실 오늘 막아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이렇게 뚫릴 줄 몰랐다"(강동구 위원장)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오후 3시, 노조가 민주광장에서 개최한 '정리집회'에서 "집행부는 별로 분노하는 것 같지 않다" "김인규씨가 KBS본관에 들어오면 어떻게 할지 노조가 미리 생각해놓은 게 있을 것 아니냐. 정교한 계획을 밝혀라" "오늘 이걸로 끝내는 것이냐. 이런식으로 투쟁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집행부는 정교한 로드맵을 세워라" 등 조합원들의 항의가 빗발친 것도 이때문이다.

출근저지투쟁 두번째 날인 25일도 마찬가지다. 취재차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오전 7시 30분경. 주차장 앞에는 카메라 기자 몇명과 노조원 10여명이 서있을 뿐이었다. 40분경 강동구 위원장, 최재훈 부위원장을 비롯해 노조원들 몇몇이 더 모였다. 하지만 다 합해도 30여명밖에 되지 않아 보였다.

▲ 25일 오전 7시 40분, 서울 여의도 KBS본관 6층 사장집무실 앞에 앉아있는 최재훈 KBS노조 부위원장(왼쪽)과 강동구 KBS노조위원장(오른쪽). ⓒ곽상아
"이 인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김인규 사장은 7시 10분에 이미 출근했다더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노조는 즉각 집무실 앞에서 집회를 열었고, 강동구 위원장은 "MB특보가 KBS에 한발짝도 못 들어오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해달라"고 조합원들을 독려했다. 하지만 김 사장이 KBS에 발을 내디딘 지 벌써 이틀째다.

"김인규씨가 노조에 당당히 맞서서 8시쯤 출근할 줄 알았다"는 강동구 위원장의 말도 옹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김 사장이 노조의 출근저지 시각에 '맞춰서' 출근해줄 줄 알았다는 말인가.

게다가 기자는 낙하산 사장의 출근을 저지하려는 노조가 오전 7시 30분경에나 조금씩 모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YTN노조는 출근저지투쟁 당시 오전 7시 전에 집결해서 7시부터 집회를 진행하곤 했다. OBS노조는 특보출신 차용규 사장을 막기위해 철야농성을 진행하고, 오전 7시 전에 대오 정비를 끝내놓기도 했다.

그리고 만약 KBS노조가 낙하산 사장을 진정으로 막고자 했다면 사장 선임 이전에 "김인규씨가 사장이 될 경우 바로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며 전 조합원을 상대로 총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했어야 하지 않나?

현재의 총파업 투표 일정에 따르면, 투표 마감(12월 2일)까지는 1주일이 남아 있다. 시간이 갈수록 동력은 떨어질 텐데 과연 총파업이 가결될지, 가결된다 해도 형식적 수준 이상의 파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더구나 그 사이에 업무를 착착 진행해갈 김인규 사장이 그때 돼서 "알겠어. 낙하산인 나는 이만 갈게~"라고 하겠나.

특보출신 낙하산 사장이 착지해도 공영방송사 노조가 이 정도밖에 할 수 없는 것인지 씁쓸하다. "낙하산 사장 저지를 위해 집행부 전원이 구속과 해고를 결의한다" "정의롭고 위대한 투쟁은 반드시 승리한다" "공영방송의 역사를 다시 쓰겠다"는 노조의 말이 공허하게만 들리는 이유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