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참사 당일, 그날의 아팠던 기억을 상기시키고 있어 더욱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대목에서 또 다른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세월호의 외양이 일각에서 주장한 ‘외부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믿기는 어려운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에 관한 ‘외부 충돌설’은 그간 일부 인사들에 의해 꾸준히 제기돼왔다. 한 네티즌은 그간의 공개된 자료를 모아 장시간에 걸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호의 침몰 원인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좀 더 정확한 조사가 이뤄져야겠지만, 현재 드러난 모습을 보고 판단할 때 어떤 외부 충돌이 있었던 걸로 생각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반잠수식 선박에 실린 세월호(연합뉴스)

보수언론은 곧바로 이와 관련한 문제제기를 내놓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27일 사설을 통해 “세월호를 둘러싸고 혹세무민해 온 잠수함 괴담, 철근 괴담과 같은 것은 진실이 아니라 그저 우리끼리 물고 뜯고자 만들고 유포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면서 “KAL기 폭파 김현희 조작설, 광우병 괴담, 천안함 괴담, 한·미 FTA 괴담이 모두 그랬다. 세월호 괴담 세력 역시 ‘아니면 말고’ 뒤에 숨거나 또 무슨 트집을 잡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가 예로 든 문제가 대개 야권 지지자들 내에서 유통됐던 것이라는 점을 보면, 조선일보의 의도는 명확하다. 야권 지지자들의 어떤 ‘무책임성’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이런 지적에 아예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야권 지지자들의 어떤 고유한 특성으로 묘사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

‘괴담’의 유포는 보수적 유권자층에서도 일반적 현상이 되었다.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이른바 ‘가짜 뉴스’의 문제가 그렇다. 최근에는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다수가 모인 단체 채팅방에서 유력 대권주자에 대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괴담을 퍼날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 등은 이를 단순한 공무원 중립 의무를 어긴 것을 넘어 사실상 조직적인 여론조작의 일환이 아니었는지까지 의심하고 있다.

이런 세태는 누구도 ‘공론’을 믿지 못하게 된 우리 사회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음모론들도 그렇다. 정부가 애초에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 의지를 명확히 보여줬더라면 이런 음모론들은 설 자리를 잃었을 것이다. 정부가 무언가를 감추려는 듯한 인상을 주고 인양 등의 조치에 대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외부 충돌설’ 같은 것이 대중적 위력을 갖춰나갈 수 있었다는 점을 외면해선 안 된다.

‘공론 조성’을 목표로 하는 언론이 과연 이에 맞는 행태를 보였느냐도 돌아봐야 할 지점이다. 특히 보수언론은 권력의 불성실함에 문제제기를 하기보다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의문 제기를 정치적 모략 정도로 규정해왔다. 이러한 행태는 박근혜 정권의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 소속 인사들에 의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이는 누가 봐도 보수언론과 보수정치가 결탁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해태하려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괴담’은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이런 것들이 대중의 힘을 얻어 다수 여론이 되는 과정에는 필시 사회적 문제가 작용하기 마련이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이 사회적 문제를 발견하고 논하는 것이지 사람들을 꾸짖고 면박 주는 게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보수언론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시작부터 끝까지 모범적인 언론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물론 음모론으로 쉽게 쏠리고야 마는 문제를 우리 스스로 돌아봐야 할 필요는 있다. 세월호 참사는 기성 세대에게 ‘공범의식’을 안겨줬다. 우리 모두가 이 사회의 어떤 부분이 잘못됐다는 걸 이미 알면서도 이를 바꾸는 데 실패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게 우리가 여전히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공범의식’은 문제의 근본을 직시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 책임을 전가하고 싶어하는 관념으로 일부 변화한 것도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외부 충돌설’ 같은 게 대중적 위력을 얻은 이유에는 정부의 불성실과 함께 이런 식의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특히 박근혜 정권이 여러 측면에서 ‘비정상적’이었다는 점은 이런 흐름을 가속화시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이 여전히 ‘뜨거운 감자’라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세월호 7시간은 진상규명을 위해 반드시 밝혀져야 할 문제다. 진상규명은 재발방지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의 주장을 보면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보다는 그 7시간에 이 사건의 원인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 문제에 천착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는 그간 박근혜 정권의 태도로 볼 때 당연한 의문이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음모론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는 문제인 게 사실이다.

이렇게 음모론이 만연한 현실을 보며 혹시 우리가 박근혜 정권이라는 ‘비정상’을 제거함으로써 스스로의 ‘정상성’을 회복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소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는다. 분명한 사실은 그런 방식으로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풀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책임을 낱낱이 밝힌 이후에도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는 걸 막기 위해서는 이 사회의 거의 모든 것들을 근본적 수준에서 뜯어 고치는 개혁이 진행돼야 한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음모론의 악순환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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