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현 전 중앙일보 JTBC 회장이 사임한 이후 이른바 ‘대망론’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현실은 씁쓸하다. 언론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대중적 수준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사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홍석현 전 회장의 사임 결정에 ‘대선 출마’ 가능성이 일부라도 작용했다는 해석에 여의도 내외의 대다수 인물들이 공감하고 있다. 꼭 출마를 결심하지는 않았더라도, 그 가능성을 전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굳이 사임을 택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분석이다.

홍석현 전 회장이 대권에 출마한다는 그림은 미디어 생태계라는 차원에서 볼 때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큰 게 사실이다. 당장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나오는 반응을 보면 그렇다. 대표적으로는 이른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의 ‘JTBC 음모론’이다. 홍석현 전 회장이 대권을 잡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시나리오를 꾸몄고, 손석희 보도담당 사장이 야권에 편향된 뉴스 진행으로 ‘행동대장’ 역할을 했으며, 그 결과가 석연찮은 최순실 씨의 태블릿PC 관련 보도라는 거다. 이 음모론의 신봉자들은 홍석현 전 회장의 사임으로 이런 주장이 사실에 가깝다는 게 증명됐다고 새삼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이런 주장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또 홍석현 전 회장이 실제로 대선에 출마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는 목소리가 큰 것도 사실이다. 각 정당이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을 이미 시작한 상태에서 홍석현 전 회장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무소속 후보로 나서는 길 밖에 없는데, 현실적으로 이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캐릭터를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삼성가의 일원이라는 세간의 인식을 떨칠 수 없는 상태인 홍석현 전 회장이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대선 후보를 여론으로 제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려가 되는 것은 앞으로 JTBC 뉴스 프로그램이 대선과 관련한 보도를 할 때마다 이런 논란이 양쪽에서 반복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JTBC가 야권의 대권주자들에 대한 불리한 보도를 할 경우, 이번에는 야권 지지자들이 ‘불공정’ 논란을 제기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대권주자를 ‘검증’하는 게 언론의 책무라는 점을 같이 보면 이런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JTBC가 무엇을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따라 양쪽에서 환호와 야유가 교차하는 상태가 반복될 것이다. 다수의 대중에게 뉴스가 ‘사실’로서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라 ‘해석’으로만 존재하게 되는 셈이다. 언론이 사실을 전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사익’과 연관된 여론 조작에나 몰두하는 존재로 낙인찍히는 순간 뉴스의 생명력은 없어진다.

9일 오후 '2017 학교법인 원광학원 보직자 연수'가 열리는 전북 부안군 대명리조트 강연장으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가운데)이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미디어 생태계를 중심에 놓는 관점에서 이런 상황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좀 더 심층적으로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주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는 논란을 가능케 한 것은 ‘종편’의 태생적 한계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거 종편 반대논리의 한 축은 ‘신방겸영’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방송은 시청자를 감각적으로 포섭할 수 있기 때문에 신문에 비해 더 강한 공공성을 부여해야 하는데, 언론재벌이 방송을 소유하게 함으로써 이런 제한이 존재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지금 시점에 ‘신방겸영’ 자체가 문제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종편인 JTBC가 민감한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언론다운 보도를 이끌었고 오히려 공영방송인 MBC가 ‘애국언론’이 되는 현실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신방겸영’의 문제를 논조의 문제로 본다면 이는 애초의 비판이 예상한 상황이 아님에는 분명하다. JTBC와 MBC의 사례는 정파적으로 편향된 신문업계가 방송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면 ‘기울어진 운동장’의 기울기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논리의 근거를 깨는 사례다.

그러나 홍석현 전 회장의 행보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 이 문제의 핵심이 논조가 아닌 소유에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 관점으로 보자면 대기업과 인척관계인 신문과 방송을 소유한 언론재벌이 정치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려는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 문제다.

이런 일에 성공한 대표적 인물은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르루스코니 전 총리이다. 그는 미디어 재벌 출신으로 축구 구단인 AC밀란을 소유했고 3번이나 총리를 지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재임 시기 이탈리아인들은 아침에 일어나 잠이 들 때까지 베를루스코니의 채널에서 베를루스코니가 등장하는 뉴스와 베를루스코니가 소유한 축구 구단의 경기를 본다며 자조적으로 말해야 하는 처지였다.

불행하게도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우파적 세계관의 소유자이며 그야말로 다종다양한 부패 스캔들에서도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이탈리아인들은 더욱 불행해졌다. 그런데 이런 가정을 해볼 필요도 있다. 만일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진보개혁주의자였고 정치적으로도 아무런 흠잡을 데 없는 인물이었다면 그가 미디어를 완전히 지배하는 상황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얘길 하면 홍석현 전 회장이 사임을 했다는 점을 차이로 거론할 수도 있겠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동일한 질문이 가능하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자기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총리를 했다면 “미디어와 정치를 장악했다”는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이런 질문들에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미디어생태계라는 차원에서 보면 더 그렇다. 저널리즘의 전통적 가치는 공정성과 공공성인데, 뉴미디어 시대를 맞아 다양성이라는 가치 또한 중요하게 여겨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여론이 극과 극을 오가는 시대에 이상적인 저널리즘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가치들에 기반 한 활발하고 수준 높은 비평이 필요하다.

‘가치’를 믿지 않는 세태 속에서 비평은 의미를 잃었다. “결국 누구 편을 들겠다는 것이냐”는 식의 정파적 해석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JTBC의 몇 가지 보도 사례를 두고 보다 나은 저널리즘을 구현해보자는 취지의 논쟁이 일어난 일도 있었지만, 결국 남은 것은 “그래서 결국 JTBC와 손석희를 지지할 것인지 말 것인지”만 묻는 소비자적 태도와 “손석희를 시기하며 그에게 상처를 입히려는 강박적 진보주의자들”이란 냉소적 레떼르 뿐이다.

홍석현 전 회장이 사주 자리를 내놓고 출마를 하겠다는 걸 제도로 금지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 저널리즘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정파적 효과를 배제한 심도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 JTBC라는 방송사의 존재적 문제를 말하는데 “삼성도 비판했으니 된 거 아니냐”고 답하는 비평의 문화로는 이 난제를 풀 수가 없다. 우리 언론이 애초에도 난제였던 문제를 더 꼬아 놓는 데 역할을 해왔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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