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빨랐다. 그리고 생각보다 더 떨렸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이정미 재판관의 말을 듣기까지 세 번 실망의 순간도 있었다. 세 번의 "그러나"에 철렁했던 마음들은 결국 마지막 선고에 달랠 수 있었다. 한 명의 이견도 없는 전원일치의 파면 선고였다.

마침내 그토록 오래, 절실하게 바라던 광장의 기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박근혜 없는 봄의 온전함, 그 봄의 자유로움. 그 봄의 환희와 감격. 이제 비로소 봄이 봄인 것이다.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10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결정문을 읽기 위해 마이크를 잡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판결과는 별도로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심지어 해외통신에도 언급된 해프닝이 있었다. 10일 헌법재판관들은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했다. 워낙에 엄중한 날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출근하는 이정미 재판관을 따라가는 카메라에 뭔가 이상한 것이 포착됐다. 이정미 재판관의 머리에 헤어롤 두 개가 달려 있었던 것이다.

재판관들 중 유일한 여성인 이정미 재판관은 특히 재판소장 대행으로서 판결문을 낭독해야 하기에 외모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서야 했기에 머리를 단장할 시간이 부족해 아마도 출근하는 시간을 활용하기로 한 것 같다. 그러다가 깜빡 잊고 그냥 내린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실수라고 그냥 넘겨 버리기에는 뭔가 상징의 뉘앙스가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8인의 전원찬성을 미리 알린 것이라고도 봤고, 누군가는 인용의 초성을 스포한 것이라고도 했다. 이렇게 해석이 넘치는 가운데 가수 윤종신은 SNS를 통해 “상식과 모두를 위한 아름다운 실수”라며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렇듯 이정미 재판관의 헤어롤에 대해서 대중의 관심이 모아진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정미 재판관이 읽어간 선고문에 세월호 7시간은 탄핵사유가 되지 못했다. 김이수, 김진성 재판관의 보충의견으로 대통령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남기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304명의 희생자가 나온 세월호 참사가 탄핵사유에 빠진 것은 너무도 아쉽고 억울하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인 10일 오전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로 출근하고 있다. 이날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출근한 이 재판관은 긴장된 상황을 반영하듯 머리카락에 미용도구(헤어 롤)를 그대로 꽂은 채 청사로 들어갔다. Ⓒ연합뉴스

이정미 재판관의 헤어롤에서 풍자의 의미를 읽은 결정적 배경일 것이다. 세월호 7시간에도 미용사에게 머리 손질을 받았던 누군가와 달리 이정미 재판관은 직접 머리를 손질하다가 벌어진 실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누군가에 대한 따끔한 꾸짖음이었다는 것이다. 또 그 꾸짖음을 통해서 탄핵사유로 인용하지 못한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재판관이 아닌 시민 이정미의 마음을 전한 것이라는 선한 해석도 나온 것이다. 모든 것이 세월호 7시간이 탄핵사유가 되지 못한 것을 애써 부정하고픈 마음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 내막은 이정미 재판관만이 알겠지만 시민들이 헤어롤 해프닝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 것은 최순실 게이트 이전에 세월호 참사가 이 탄핵의 시작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AP통신도 이정미 재판관 헤어롤 해프닝을 전했는데 “한국의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투영된 한순간이었다”면서 “사람들은 헤어롤 해프닝을 이 권한대행이 판결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보여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라는 의미도 더했다. 외신의 해석이 이런 정도라면 시민들의 반응도 충분히 개연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파면당한 전직 대통령 박근혜는 헌재 판결 이후 아무런 반응 없이 삼성동 사저의 보일러 고장 등을 이유로 법적 권리 없이 청와대 관저에 머물고 있다. 또한 판결 후 친박단체들의 시위 상황에서 2명의 시민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일어났음에도 자제할 것에 대한 당부도, 승복 선언도 없이 침묵시위 중인 것이다. 그 침묵은 탄핵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도 거두게 하는 이기적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까지 대통령에는 참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사실만 확인시켜줄 뿐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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