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의원이 7일 탈당 의사를 밝힌 이후 정계는 술렁이고 있다. 김종인 의원의 이후 행보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중심의 대권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종인 의원이 스스로 ‘로드맵’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추측을 해보는 수밖에 없다. 대다수 언론은 김종인 의원이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론’을 통해 ‘반(反)문재인 연대’를 구성해 대선에서 1대 1구도를 만드는 것을 유일하게 효과적인 방안으로 예상한다. 김종인 의원이 그간 쌓아온 나름의 ‘내공’으로 이외의 수를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지만 현재로선 이런 행보를 예상해볼 수밖에 없다.

김종인 의원은 탄핵국면이 되기 직전까지 ‘반(反)패권지대’를 언급하며 자신의 정치 구상을 언급해왔다. 반패권지대란 패권세력을 제외한 나머지가 뭉쳐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패권세력이란 여의도 정치가 말하는 ‘친박’과 ‘친문’을 말한다. 누가 집권하든 협치는 불가피하다는 현실 진단도 양념처럼 들어간다.

이를 기초로 해서 김종인 의원의 구상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해보면 이런 식이다. 한국 정치의 위기는 친박 친문의 패권주의가 망쳤고, 이런 일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개헌이 필요하며, 특히 국회선진화법으로 협치가 불가피해진 이상, 이런 구상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이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차기 대선은 새 헌법으로 치러야 하기 때문에 이번에 선출될 대통령의 임기는 3년으로 줄여야 한다.

문제는 개헌 논의가 정치권 내에서 실효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태라는 것이다. 정계개편의 불쏘시개 정도는 될 수 있어도 국민 다수가 호응하는 상황에서 힘을 갖고 추진되는 것은 난망하다. 지금까지 정치권의 개헌 논의는 권력구조 개편에 집중돼왔다. 분권형 대통령제니 내각제니 하는 이야기들이 그렇다.

이 때문에 국민 다수는 개헌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한편 정치권의 개헌 논의를 ‘자기들끼리 이익을 나누는 소리’ 정도로 여기고 있다. 정치권이 계속 개헌론에 군불을 지피지만 본격적인 동력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과연 김종인 의원이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각 정치세력이 놓여있는 처지다. ‘반패권지대’ 구상이 작동하려면 세력의 차원에서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는 더불어민주당에서의 대규모 동반탈당, 둘째는 자유한국당의 분당, 셋째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참여이다.

7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초청 강연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에서 김종인 의원과 당장 운신을 함께할 사람을 찾기는 어려운 것 같다. 각 언론은 3~6명 정도의 탈당 규모를 예측하고 있긴 하지만 탈당 대상으로 꼽힌 의원들은 김종인 의원 탈당의 파급력과 이후 개헌 논의의 진척을 지켜본 후에 결정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터넷 용어로 하면 ‘간을 본다’는 뜻이고, 뒤집어 말하면 별볼일 없는 모양새라면 동반 탈당은 결심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는 김종인 의원 입장에서도 동반 탈당이 없는 상태에서는 실제적인 효과를 내기 쉽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문재인 전 대표가 확정되는 수순에서 이탈하는 조직적 흐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여론도 있으나 정당정치를 강조하는 안희정 충남지사나 ‘과격함’이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그렇게 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경선 불복’이 없고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진 시점에서 정치적 모험을 떠나는 의원이 얼마나 있을지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자유한국당의 분당 여부도 확신하기 어렵다.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 56명은 7일 헌법재판소에 탄핵을 기각시켜 달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56명이 누구인지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자유한국당 전체 의석이 94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절반을 넘기는 숫자의 인원이 여기에 동의한 것이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탄핵 기각 또는 각하를 당론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이들에 속하지 않은 나머지 의원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한 결론을 내릴 때까지 이런 일들은 반복될 것이므로 재현된 계파 갈등 구도 속에서 자유한국당 내에 남아있는 비박계들이 결국 탈당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 게 사실이다. 바른정당은 이를 겨냥해 자유한국당에 남아있는 의원들의 조속한 합류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기성 정치의 국회의원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다음 선거에서 자신이 당선될 수 있을지 여부라는 점을 고려하면 남아있는 비박계 의원들이 쉽게 탈당을 결행할 수 있을지 정장담할 수 없다. 하다못해 백의종군을 선언한 김무성 의원이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재도전을 선언해야 그나마 최소한의 기대라도 생길텐데, 지금 상황에선 그야말로 “나가봐야 시베리아”란 말을 부정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시선을 국민의당으로 옮기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국민의당 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의원과 손학규 전 의원은 경선을 어떤 규칙으로 치를 것인지에 대해 여전히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현장투표 40% 여론조사 30% 공론조사 30%를 주장하고 있고 손학규 전 의원은 현장투표 80%, 숙의배심원제 20%를 주장하고 있다.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손학규 전 의원이 주장하는 현장투표이다. 사전선거인단 모집이 없는 상태에서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현장투표를 진행하는 것은 ‘조직 동원 선거’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안철수 의원 측은 현장투표가 공정하게 진행된다는 점이 담보돼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나 국민의당 지도부는 이를 누구도 보증할 수 없다는 현실을 강조하고 있다.

7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음식점에서 김종인(왼쪽)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 대표와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가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상태라면 어찌어찌 경선룰에 합의해 경선을 진행한다 해도 반드시 이 현장투표 문제로 인한 ‘앙금’이 남을 수밖에 없다. 김종인 의원은 탈당을 선언하고 나서 바로 손학규 전 의원을 만나기도 했는데, 손학규 의원은 경선룰이 합의되지 않을 경우 경선 불참까지 시사하고 있다. 김종인 의원의 행보가 손학규 의원 측의 목소리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국민의당에서 경선룰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김종인-손학규 연대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 위상이 완전히 축소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이런 여러 제약조건에도 불구하고 김종인 의원의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이런 저런 정치세력 간의 조직적 문제가 아니라 어떤 ‘시대정신’을 내세울 것인가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정치인들끼리만 공감하는 ‘패권주의 반대’나 권력구조 개편이 아니라 사회안전망 강화와 분배구조 개선으로 요약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 노선을 분명히 천명한다면 의외의 대중적 지지를 획득할 가능성이 남아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김종인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으로 적을 옮긴 이후 자신의 경제민주화 노선을 몇 가지 법안이나 정책을 통해 일부 보여줬을 뿐 어떤 총론적 방식으로 대중에 호소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김종인 의원이 그간 보여준 태도는 알아들을 사람만 들으라는 식의 엘리트주의에 가까웠다. 이 태도를 극적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할 수도 있는데, 어쨌든 쉽지는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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